2024년 5월 21일(화)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⑤ 장애 청소년

1주일에 1시간, 봉투 접는 직업교육… 장애 청소년은 꿈을 접어 버렸다
高校 3학년에 몰린 취업 교육 이수해도 회사선 사용 못해 2년 근속은 꿈에 나올 얘기
장애인 개별 특성 고려없는 일반적 재취업 교육도 문제
중학교 때부터 직업 실습하고 고용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저희가 도와드릴 부분은 없으니, 다른 부서에 전화해보세요.”

지난 3년간 조성진(23·가명)군의 어머니 박정숙(가명·49)씨가 취업 연결을 부탁할 때마다 시청 사회복지과로부터 나온 답변이다. 시청 내 다른 부서나 해당 지역 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조군은 지적장애 1급 발달장애인이다. 3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에 수차례 실패해왔다. 2011년 우여곡절 끝에 한 공장에 취직했지만, 선임 작업자는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속도가 느리다’ ‘시킨 업무를 곧바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언을 일삼았다. 망치를 들고 “당장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3개월 후, 회사가 ‘생산성을 맞출 수 없어 더 이상 장애인 고용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조군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받지 못한 발달장애인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복지관을 전전한다. /문상호 기자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받지 못한 발달장애인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복지관을 전전한다. /문상호 기자

조군은 고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년에 1~2회 정도 지역 카페나 작은 공장을 견학하는 현장학습 정도만 있었다. 어머니 박씨가 학교에 진로 상담과 취업 연결을 요청했지만, 담당 교사는 “우리가 알아봐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3년 동안 자비를 들여 조군을 컴퓨터 학원에 보냈지만, 자격증 2개를 따는 데 그쳤고, 이 역시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 조군은 경기도 한 복지관에서 매월 교육비 7만5000원을 내고 부품 조립과 포장 업무를 배우고 있다. “3년이 지나면 복지관에서 나가야 합니다. 한 복지관에 5년 이상 다닐 수 없거든요. 제가 죽고 나면 스스로 살아야 하는데, 그 전까지 취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어머니 박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체계적·맞춤형 직업교육이 부재한 특수교육현장

국내의 등록 발달장애인 수가 18만명을 넘어섰다. 발달장애인 청소년(10~19세 이하) 약 4만5000명 중 매년 약 3541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2011년 12월 기준·서울대 산학협력단). 하지만 이 중 다수가 졸업 후 진로를 마련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12만9517명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2만7953명으로, 21%에 불과하다. 특히 자폐성 장애인은 2.19%에 그친다(2011·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의 취업을 확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수교육법은 교육기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을 진행할 것을 명시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직업교육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적장애 1급 고3 딸을 둔 정옥임(가명·50)씨는 “학교에서 하는 직업교육이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남짓”이라며 “그마저도 양말 포장, 봉투 접기, 칫솔 집어넣기 정도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정씨는 6년 전부터 딸을 지역 복지관으로 데려가 진로교육을 따로 받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이 고등학교 졸업 시기에 집중된 점도 문제다.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특수교육-복지 연계형 일자리 사업’을 비롯한 대부분 발달장애인 직업체험 교육이 고등학교 3학년생만을 대상으로 약 1년간 진행된다. 일부는 졸업 후 특수교육기관에서 운영하는 직업교육과정 ‘전공과’를 1~2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한다. 직업 평가 체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우리 아이가 직업 평가를 받았는데 또래 친구 중 능력이 제일 떨어진대요.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물어보니까 1시간 동안 작은 기계를 다루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1시간만으로 아이의 강점을 평가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요.” 자폐성 1급 아들을 둔 이연주(가명·51)씨가 말했다.

보건복지부_그래픽_장애청소년_발달장애인취업자비율_2013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 결국 복지관 전전해

최정수(가명·23)군은 작년 12월 한 보호 작업장에 실습을 나갔다. 3개월 동안 현장 실습을 받았지만, 취업에는 실패했다. “작업장 소장님이 ‘아드님은 여기서 일하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보호 작업장에서조차 자폐성 장애인을 쓰기 꺼려할 줄은 몰랐어요.” 정수군의 어머니 이은선(가명·49)씨가 말했다.

학교를 떠난 발달장애인들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2011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약 40%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실업자가 된다. 자폐성 장애인의 실업률은 무려 78.3%에 이른다. 지적장애 3급의 윤정연(가명·31)양은 2006년 전선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다닌 회사가 3군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계약 기간을 1년 이상 넘기지 못한 채 복지관을 전전하고 있다.

재취업을 위해 복지관이나 직업재활센터 문을 두드리는 것도 쉽지 않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실습교육을 받기 위해 무려 5년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체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다 보니 발달장애인들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시설에 들어가도 포장, 조립, 제과·제빵, 세탁, 용역 등을 배우다 보니 학교 직업교육과 차별성이 없다. 최복천 한국장애인개발원 중앙장애아동지원센터 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강점을 살린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작 복지 현장에서도 한정된 업무만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장기간 교육·지속적인 고용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장기적인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977년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도움을 주고자 ‘리저널 센터'(Regional Center)를 설립했다. 총 21개 센터에서 개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계획을 세우고 관련 서비스를 평생 지원한다. 특히 학교를 마치고 성인기로 전환할 때, 서비스 코디네이터가 개별전환계획(Individual Transition Plan·ITP)을 수립하고 지역 내 그룹홈이나 직업재활 기관을 연결해준다.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약 20여만명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변경희 한신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한국의 직업교육은 공교육 이수 등의 문제로 현장 실습 교육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중학교 때부터 사회와 연계해 활동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취업을 더 확대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계윤 전국장애아동보육제공기관협의회 고문은 “현재 진행 중인 장애인 지원고용·파견고용 사업들은 시범사업의 성격이 강하며, 그마저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고용 환경 구축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 청소년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 및 취업 지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발달장애인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해당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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