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 ① 아이 키우려면 일해야 하는데… 생활도 취업도 힘들기만 하네요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 ①미혼모 청소년
2005년부터 5년 새 미혼모 수 26.6% 증가
月 15만원 양육비마저도 만 24세 이하만 지원받아
상처받은 청소년 미혼모 정서적 자립부터 돕고 제대로 된 진료 받도록 의료 제도도 개선해야

지난 8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아산나눔재단은 복합 장벽을 지닌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과 자립, 기여를 목표로 공동 기획 포럼인 ‘아산미래포럼’을 출범했다. 아산미래포럼은 오는 12월까지 탈북·장애·미혼모·비행·가정 외 보호 청소년 등 5개 분과별로 시급한 해결 과제 및 정책 제언, 민간 재원을 통한 사업 발굴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더나은미래는 5회에 걸쳐 분과별 핵심 과제에 대한 기획 시리즈를 보도한다. 그 첫 회는 ‘미혼모 청소년’ 문제다. 편집자 주


 

한국의 혼외 출생자가 약 1만명을 넘어섰다. 그중 미혼모 청소년(25세 이하)은 약 5500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2012년 통계청). 그러나 이들 중 취업 경험이 있는 미혼모 청소년은 25%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미혼모 청소년의 자립을 막는 사회의 장벽 때문이다.

미상_그래픽_청소년미혼모_연령증감지원현황_2013

◇양육·생계·취업…삼중고에 시달려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키우는 ‘양육 미혼모’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05년 1968명이였던 양육 미혼모의 숫자는 2009년 2491명으로 5년 새 26.6% 증가했다. 미혼모 청소년들은 학업 중단, 자녀 양육 때문에 직업을 가지기 어렵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직업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미혼모 청소년의 숫자는 34.5%에 불과했고, 이 중 42%가 아이를 돌보느라 직업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혼모의 자녀를 돌봐주고 직업 훈련을 병행하는 지원책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동 양육비는 최저생계비 150% 이하인 미혼모 청소년(만 24세 이하)에게 지원되는 월 15만원(12세 미만 자녀 1인당)이 전부다. 반면 입양 가정엔 소득 상관없이 월 15만원이 지급된다. 허난영 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미혼모가 되는 순간 부모와 친구, 사회로부터 단절됨에도 함께 살지도 않는 부모가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미혼모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지 못한다”며 “미혼모 청소년에 한해서라도 부양 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지 않으면 미혼모들의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미혼모에게 매달 약 100만원의 생활비와 학교 교육비를 전액 무료로 지원하고, 스웨덴은 최대 67만원까지 주거비를 지급하고 있다.

취업의 벽은 더욱 높다. 자녀 돌봄 지원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 김경희(가명·18)씨는 최근 K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숍에 바리스타로 취직했으나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퇴사를 고민 중이다. 현재 미혼모 단체 직원 2명이 보수도 받지 않은 채 김씨 대신 수시로 커피숍에 출퇴근하고 있다. 김씨는 “미안한 마음에 퇴사를 고려하고 있지만 또다시 아무런 수입 없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고 했다. 다섯 살 딸을 가진 양주희(가명·20)씨는 “최근 딸이 분리불안 증세를 보여 직장을 관뒀다”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일대일로 가정을 방문해 살림 노하우는 물론 한국 문화 전반을 코칭해주는 ‘다문화 생활지도사’ 제도처럼 미혼모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면서 “교육-훈련-고용을 연계한 영국의 ’20 슈어 스타트 플러스(20 Sure Start Plus)’ 프로그램처럼, 세밀한 자립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서 및 심리 지원 필요해

“근래 아들한테 짜증을 많이 내요. 저도 모르게 몸이 아프고 지치다 보니까, 안 그래야 하는 것 알면서도….”

이지수(가명·32)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이내 눈물을 쏟았다. 긴 원탁 테이블 위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그녀는 “화나면 욕하던 아버지 모습과 같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한테 부모는 규범이야. 어제는 화내고, 오늘은 사랑한다고 하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 아이가 눈치를 보다 보면 자존감이 클 수가 없어.” 장보연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학교대학원 상담학 교수)가 조언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도곡역 굿패밀리상담센터에서 열린 부모 교육 자조 모임 ‘건강한 엄마 되기’ 현장. 에스더의집을 퇴소한 7명의 양육 미혼모들이 아이를 양육하며 겪는 고민을 쏟아냈다. 강원도·인천·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양육 미혼모들이 모였다. 6년째 매주 에스더의집을 방문해 심리 상담을 하는 장보연 교수는 “미혼모 청소년들은 애착이 불안정하고 상처가 많아 최소 3년간 전문적인 치료와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우울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는 미혼모 청소년은 41.4%로 일반 청소년의 5배에 달했고, 스트레스 지수도 일반 청소년보다 20% 이상 높다(여성가족부 2011). 여성가족부와 서울시가 2010년부터 상담 및 치료지원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설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설을 나와 있는 약 70%의 미혼모 청소년이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승희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한 양육 지원도 확대해야 하지만 자조 모임과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미혼모 청소년의 정서적 자립을 돕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의 수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선일보 DB
과거에 비해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의 수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선일보 DB

◇미혼모 의료 지원 시급

김진수(가명·21)씨는 열여섯 살에 엄마가 됐다. 어렵게 낳은 그녀의 딸은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신장·소화 기관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자 보호 시설에서 지원금을 보태주긴 했지만, 병원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기에게 꼭 필요한 예방 접종도 챙겨주질 못했다. 김씨는 “딸이 천식을 앓고 있는데, 아기 때 폐렴구균 감염증 예방 접종을 안 해서 그렇다더라”면서 “예방 접종 비용만 60만원이라 엄두를 못 냈는데, 아이가 기침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이던 딸의 갑작스러운 출산 사실에 부모는 “가문의 수치”라며 김씨를 내쫓았다. 학교에서도 자퇴를 권유했다. 버림받은 김씨는 홀로 아이를 간호했다. 김씨의 건강도 문제였다. 이른 나이에 준비 없이 아이를 낳느라 출산 전후 진료와 관리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 그녀는 “나는 괜찮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100%가 규칙적인 산전 관리를 받고 평균 13.3회의 산전 진료를 받고 있는 반면 규칙적인 산전 관리를 받는 미혼모 청소년은 59%에 불과했다(2011). 진료 횟수도 1.7회로 일반인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산후 진료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72.3%로 일반인에 비해 20% 이상 낮았다. 저체중아 출산 비율도 일반 산모의 4배에 달했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입양 가정은 의료보호 1종 대상자이지만, 미혼모는 의료보호 2종으로 지원받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엄마와 아이가 건강해야 자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하기 어렵다면 민간 차원에서라도 미혼모 예방 접종과 저체중·미숙아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이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모가 동성애자 다음으로 차별받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미정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가 있음에도 사회적 편견이 미혼모의 자립을 막아 복지 혜택에 기대게 한다”면서 “사회적 편견이 가져오는 비용과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