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 ③ 달라지고 싶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다시 절망하는 아이들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 ③ 비행 청소년
국내 소년범 약 8만3000명 보호관찰 후 사회 복귀해도 변하지 않는 환경에 재탈선
3명 중 1명 재범 저지르고 2057명은 전과 9범 넘기도
비행 초기 즉각 대응하는 협의체 간 핫라인 갖추고
가족 관계 회복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마련해야

진명철(가명·15·서울 서대문구)군은 작년 5월 처음 집을 나왔다. 틈만 나면 때리는 아빠가 싫어서였다. 첫 가출은 하루짜리였지만 곧 한 달이 되고, 6개월이 됐다. 또래와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훔쳐 팔아 생활했다. 계속된 절도 행각 끝에 경찰에 붙잡혔고, 4호 처분(단기보호관찰 명령)을 받았다. 보호관찰 중이던 진군은 5개월 만에 학교와 사법 테두리를 벗어나 거리로 나섰고, 결국 ‘보호관찰 위반’으로 다시 판사 앞에 섰다. 진군은 현재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사회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법원 소년부에서 6호 처분(아동복지시설 및 소년보호시설 위탁 명령)을 받은 아이들이 6개월 동안 거주하는 시설이다. 진군은 “이제 바뀌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백준식 살레시오 청소년센터 센터장은 “아이들이 이 안에서 학교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다지지만, 정작 상당수의 아이는 다시 (시설로) 되돌아오거나, 소년원 등 더 센 처분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이후 소년 범죄자 재범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은 많은데 거리에서 활개치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DB
2008년 이후 소년 범죄자 재범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은 많은데 거리에서 활개치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DB

◇거리의 아이들, 브레이크 없는 비행의 길로…

국내의 소년(10~18세) 인구는 약 582만명. 이 중 약 8만3000명이 소년범으로 분류된다(2012, 통계청·대검찰청). 이는 사법 체계를 거친 아이들의 통계일 뿐, 발각된 적이 없거나, 비행 잠재력이 높은 아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두 배 이상 높아진다. 소년범의 40% 이상이 절도, 장물 등 재산 관련 범죄다. 2012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최근 3년간 소년 범죄 재범률은 35%로, 3명 중 한 명 이상은 재비행에 나선다. 국회 안전행정위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까지 전과 9범 이상 청소년만 해도 2057명이나 됐다. 이형섭 법무부 서울북부보호관찰소장은 “청소년 비행은 공통적으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부 갈등으로 인한 폭력, 부모의 음주 등 일탈로 인한 가출이 제1차 원인이 된다”며 “학교를 그만두면서, 또래가 함께 뭉치거나 이성 교제를 하면서 경제적인 수요가 생기면 비행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폭행, 본드 사범 등으로 현재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김정은(18·서울 도봉구)양은 “주위에 소년원에 갔다 온 사람들은 대부분 ‘난 이제 나쁜 짓 안 한다’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다시 소년원에 가 있다”며 “나와도 할 게 마땅치 않고, 개선 의지도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비행 사이클에 접어든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구현지 서울북부보호관찰소 소년과 계장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대상 아이들을 맡긴 경우가 있었는데 예산·인력 등의 문제로 상담 횟수가 최대 20회를 넘지 않게 돼 있더라”며 “아이들의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했다. 부천 지역 위기청소년 공동체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대표는 “한 아이가 비행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행을 했던 기간만큼이 요구된다”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담당 실무자에게도 버림받게 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져 아이들을 장기간 지역사회에서 지켜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개입 가능한 ‘핫라인’이 부족하다

청소년 비행의 심각성이 커짐에 따라 국가와 사회 차원의 안전망도 갖춰져 왔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청소년쉼터(이하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센터나 청소년수련관(이하 보건복지부), ‘위(Wee)클래스’나 ‘위(Wee) 스쿨'(이하 교육부), 소년원, 청소년비행예방센터, 보호관찰소(이하 법무부) 등 부처별로 보호, 복지, 교정 시설들이 다양하다. 이 자원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시스템도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 사업이 대표적이다. 조규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학업중단대응 TF팀장은 “전국 196개소가 설치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중심으로 1·2·3차 안전망들이 연계된 것”이라며 “위기 아이를 발굴·상담한 후 필요에 따라 쉼터, 직업훈련원, 병원 등으로 연결해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촘촘한 그물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행 초기에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한 ‘핫라인’이 필요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담당할 채널을 명확히 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현정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년과 계장은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상담조사와 교육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필요한 복지 지원을 위해 관련 기관으로 연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네트워크를 기관 대 기관이 개별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 여성가족부 등 각각이 주체가 된 협의체는 이뤄져 있으나, 실질적으로 통합 접근할 수 있는 핫라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대응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이상인 중랑경찰서 청소년계 경위는 “여학생들이 가출해서 성매매에 이르는 시간이 보통 만 하루 정도인데, 이 문제로 전문기관에 성상담을 의뢰할 경우, 공문이 오가고 열흘 후에 상담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게 현재의 구조”라고 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비행하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시간은 관련 공무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라며 “위기 아이들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현장 전문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동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소장은 “가출 청소년 수를 최대 20만명까지 추정하는 상황이지만, 쉼터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은 연간 3만명이 넘지 않는다”며 “현장이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지도·감독 방식을 벗어나 시설을 기피하는 거리의 아이들까지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정 역할 대신해 손잡아줄 존재 절실

축구 꿈나무였던 김진호(가명·17)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새로 부임한 감독에게 노골적인 무시를 당한 후 운동과 학교를 뒤로한 채 거리로 나왔다. 다른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일진’ 무리를 만들어 절도나 폭력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김군의 비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단둘이 사는 할머니의 존재 덕분이다. 김군은 “내가 망가지는 걸 보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그저 절 믿어주셨다”고 했다. 김군은 스스로 모임을 해체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친구를 멀리했다. 지금은 “철없을 때 한 문신 때문에 목욕탕 가는 것도 창피하다”고 말할 정도. 김군은 현재 보호관찰 중으로 올해 말 종료된다.

전문가들은 비행 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형섭 소장은 “청소년 비행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감성적이고 선정적인 접근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두 번의 실수에 너무 강경한 대응을 하거나 무거운 낙인을 찍으면, 변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청소년이 정말 괴물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비행의 원인이 대부분 가정에 있는 만큼, 가족의 회복을 위한 교정·교화 프로그램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현정 계장은 “비행청소년만큼, 보호자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며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서도 청소년과 보호자가 함께하는 ‘가족 솔루션’ 캠프 등을 진행하는데, 이런 캠프를 통해 큰 변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명성진 대표는 “가출 후 심각한 본드 중독에 빠졌던 아이가 우리와 함께 살면서 학교로 복귀해 개근상을 탈 정도까지 개선된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소년원에 있던 친구들이 한꺼번에 나오자 이전보다 심하게 무너지는 것도 봤다”며 “아이를 믿고, 믿음에 배신당하고, 다시 믿어주는 과정을 지루하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철이 드는 때가 온다”고 했다.

정익중 교수는 “아무리 부어도 들어차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형성되고,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라며 “밑 빠진 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위에서 열매가 자라고 있는 ‘콩나물시루’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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