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목)

자립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면 크레이터(Crater)가 생겨요. 그걸 억지로 메우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 들죠. 하지만 크레이터에 물이 고이면, 주위 동식물을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샘이 돼요. 자립준비청년은 크레이터를 가졌지만 그만큼 먼저 ‘샘’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청년이에요”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가 지난달 그가 운영 중인 카페 ‘아라보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강의를 나가면 꼭 해주는 이야기”라며 전한 말이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가 지난달 9일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모유진 씨는 2022년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숨김없는 말들’을 출간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이었다. 열한 살 때 위탁 가정에 보내진 그가 ‘자립’을 하게 된 건 스무 살. 위탁 가정에서 학대를 받아 야반도주를 했다. 중학생부터 꿈꿔온 자립의 날. 모두가 잠든 밤에 편지 한 장을 두고 나와 점퍼를 덮고 잤다. 

모유진 씨의 에세이 ‘숨김없는 말들’. /yes24 갈무리

열세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천 원을 받기도 했던 그는 현재 카페이자 공방인 ‘아라보다’를 운영하고 있다. 공간 이름인 ‘아라보다’는 ‘경작하다, 항해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arare’에서 따왔다. 경작하듯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고르고, 항해하듯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라보다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경험을 먼저 나누며 위로와 용기를 전할 때 살아있는 기분”이라는 모유진 씨에게 자립의 성공 요인 세 가지를 물었다. 

2022년 4월 ‘마이리얼멘토’ 토크 콘서트에 참여한 모유진 씨. /기아대책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멘토”다. 학원비와 교통비를 지원해 꿈을 꿀 기회를 마련해준 음악학원 원장님부터 식대를 지원해 준 과외 선생님까지. 그에게는 울타리가 되어 지켜준 ‘멘토’가 있었다. 2021년부터 기아대책 ‘마이리얼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립준비청년은 당장 지낼 곳이 없고 먹을 곳이 없다 보니 어떠한 목적이 있어 접근하는 걸 알면서도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국가가 아닌 개인이 자립준비청년을 도우려고 하면 개인적인 욕망 혹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국가가 중간다리 역할을 해서 돕고자 하는 분들을 ‘사회적 멘토’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 요인으로는 “장학 지원 프로그램”을 답했다. 그는 후배에게서 듣는 고민에는 어떤 것이 있냐는 질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진로 찾아가는 친구들 중에서는 학업비를 대출 받는 경우도 많다”며 “기본적으로 생활비 자체가 부족하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고 전했다. 보통 돈이 들어오면 휴대폰 요금 등 급한 지출이 우선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지원이 후순위로 밀린다는것. “시설 혹은 위탁 가정에서 말 못 할 억압을 받고 있더라도, 경제권이 있으면 숨 쉴만하다”고 장학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달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유진 씨.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마지막으로 그가 답한 자립의 성공 요인은 “실패에 대한 용인”이었다. 그는 “미디어에서 고아와 자립준비청년은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캔디같은 이미지로 투영되고 있어 힘들어도 씩씩하고 밝아야한다는 압박이 컸다”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용인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립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으로는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을 꼽았다. “가정이란 울타리가 없다 보니, 내가 무너지면 그 대가를 내가 온전히 치러야 한다”며 “그게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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