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토)

우리가 직접 말하는 4人4色 자립 이야기

매년 약 2000명의 청년이 만 18세가 되면 아동보호시설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부른다. 서울시 ‘2022 서울청년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들의 예상 독립 나이는 평균 30.6세.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은 보호자가 있는 청년층의 자립 시기보다 12년이나 이른 셈이다.

최근 기업 사회공헌의 화두는 ‘자립준비청년’이다. 비극적이지만 청년들의 희생이 거름이 된 탓이다. 지난 2022년 광주에서 20대 자립준비청년 2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고, 작년 6월과 7월 충남 천안에서도 2명의 보육원 출신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14주년 특집으로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4인을 한자리에 모아 ‘자립의 성공 요건과 바람직한 지원책’에 대해 물었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 아름다운재단 ‘열여덟어른 캠페이너’로 알려진 박강빈(26)씨, 전(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자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 SOL 대표인 윤도현(22)씨, 한예종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아대책 음악특기생인 이석원(30)씨가 참여했으며, 좌담회는 모유진씨가 경기도 성남에서 운영하는 아라보다 카페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9일, 경기 성남에서 진행된 좌담회에 참석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모유진 씨, 박강빈 씨, 이석원 씨, 윤도현 씨. /성남=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각자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캠페이너’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모유진=2년 전,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 ‘숨김없는 말들’을 출간했습니다. 2021년부터 기아대책 ‘마이리얼멘토’로 활동하며 멘티들과 소통하고 있어요(성악을 전공한 모씨는 여러 장의 음반도 발표했다).  

박강빈=봉앤설이니셔티브에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이주배경청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박씨는 2022년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해 자립준비청년의 고충을 알렸다).

이석원=바이올리니스트 이석원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UIM(United In Music) 콰르텟의 리더입니다(이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를 졸업하고,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에서 유학 중인 인재다. UIM은 올해로 창단 9년째를 맞은 자립준비청년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 그룹으로, 지난 3월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첫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윤도현=자립준비청년과 후원자를 잇는 단체 SOL(Shine On Light)을 운영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자립준비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치 현장에 알리는 일을 했어요(윤씨는 유한대학교 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2021년에는 자립활동가 13명과 함께 자립 준비 경험을 담은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는 지도가 없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지난달 9일, 경기 성남에서 진행된 좌담회에 참석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윤도현 씨, 이석원 씨, 모유진 씨, 박강빈 씨. /성남=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청소년기를 돌아봤을 때, 나의 자립과 성장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나 사람을 꼽아본다면 무엇일까요. 

모유진=아마 석원님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 누군가 공연을 맡겨주거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작은 성취 속에 돈도 벌고, 열정도 커졌어요. 어렸을 때 음악학원을 다니다가 위탁가정에서 못 다니게 했는데, 원장님이 “유진이 학원만 보내주시면 가르쳐주겠다”고 하셨어요. 교통비도 선뜻 지원해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지인분이 무료로 과외도 해주셨어요. 제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 좋은 어른이 있어서 진로를 찾아갈 수 있었어요.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력이 됩니다. 지금도 원장님과 연락하며 지내요(웃음).

이석원=보육원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어요. 음악도 배우고, 축구도 했죠. 제가 생활한 시설은 예전부터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어요. 제가 악기를 처음 잡은 것은 4~5살 때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합주단에 들어갔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취직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릴 때부터 재능과 특기를 찾아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윤도현=중학생 때 학교 적응이 어려웠어요. 초등학교가 보육원 안에 있어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5학년 때 전학을 갔더니 다른 세상이었어요. 놀림 대상도 되고, 친구 사귀는 게 어려웠어요. 그러다 시설에서 뮤지컬 수업을 받았는데, ‘몸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만난 멘토분에게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했는데, 툴툴 털어내니 그 힘들었던 시간이 괜찮아지는 거예요. ‘나의 상처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학과로 전공을 정했습니다.

박강빈=돈 많이 주는 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첫 회사를 대기업으로 갔어요. 3년을 못 넘기고 퇴사를 하고, 카카오 자회사 중 장애인 표준시설 사업장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 장애인 접근성 개선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는 팀의 리더가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분에게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는데, “당사자가 느끼는 어려움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당사자성이 곧 전문성”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가진 당사자성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사회공헌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직업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지난달 9일, 경기 성남에서 진행된 좌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모유진 씨, 이석원 씨, 박강빈 씨, 윤도현 씨. /성남=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보호대상아동 및 가정위탁청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특히 돌봄과 관심이 필요한 시기를 꼽아본다면 언제일까요.

모유진=골든타임을 꼽아보자면 2차 성징이 오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폭력을 겪고, 위탁 가정에서도 학대를 당했어요. 붙박이장에 숨어지낼 정도로 힘들었는데, 시청, 주민센터에 이야기를 해도 음료수 한 잔 주고 끝이었어요. “나는 성인이 되기까지 이 시기를 홀로 버텨야 한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것에 무기력함이 컸어요.

이석원=사춘기와 같이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시설에서 공부를 해서) 부모가 없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빈자리를 크게 느꼈습니다.

박강빈=느린학습자 비율이 높은 보육원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요. 이곳에서 생활한 아이는 15번이나 선생님이 바뀌었대요. 유대 관계가 쌓이기도 전에 보호자가 바뀌는 거죠.  ADHD 등 문제 행동이 나타나면 영유아기 때 케어를 해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보육원은 다대일 돌봄이라 한 아이에게 집중하기 어렵죠. 사회복지사 처우도 상향 평준화되어 보호자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지난달 9일, 경기 성남에서 진행된 좌담회에 참석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윤도현 씨, 이석원 씨, 모유진 씨, 박강빈 씨. /성남=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정부나 지자체, 기업 사회공헌 등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책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지원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모유진=나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로서 역할을 하면서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어요. 일반 청년들 중에서도 부모님과 이별하는 그 순간이 가장 어렵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도록 당사자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강빈=목적에 따른 패키지형 사업이 유효할 것 같아요. 만약 취업지원 패키지 사업이라면 취업지원-실무자 멘토링-취업성공수당 지원 등의 트랙으로 이어지는 구조인 거죠. 단, 너무 한 가지 사업군으로 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사회공헌 자원과 결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중앙사회서비스원이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사업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건강검진은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하기 어렵잖아요. 보호자가 없다 보니 소외되기 쉬운데, 이런 영역을 기업에서 메워주면 좋겠어요. 원가정이 없는 친구들은 유전병에 대한 정보도 없거든요. 민간에서 메워주면 좋을 만한 사업 영역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윤도현=당사자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기여하고 싶은 인식 개선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든지, 스스로 배우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각자의 니즈가 반영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마이리얼멘토단으로 활동하면서 보육원을 방문했는데, 아이들 대상 교육을 제가 직접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을 통해서 저도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석원=경제적 혜택보다도 청년들이 봉사활동을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2014년에 성당을 통해서 아프리카 잠비아에 가서 집도 지어주고, 공연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하면서 ‘난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진행=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
정리=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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