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복지 사각지대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한부모 가정 일·양육 어려움 가중

“모든 걸 홀로 감당해야 하는데 생활력이 없으면 어떡해요.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목소리를 내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지 않습니까.”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유진(52·가명)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씨는 중국에서 낳은 24살 아들과 18살 딸을 홀로 키우는 탈북민 가정의 가장이다. 전씨가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8년간의 군 생활에서 전역한 뒤 1990년대말 ‘고난의 행군’ 시기에 급격히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중국으로 넘어가 일자리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중국에서 가정을 꾸린 전씨는 곧바로 일터로 나갔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누군가의 신고로 몸을 숨겨야 했다. 중국 공안에 잡히면 강제북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어에 능숙하지 않아 본인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전씨가 한국에 온 건 2010년이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틈틈이 보냈다. 그러다 한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야 했다. 낯선 땅에서 아이들과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하지만 제3국 출생 자녀를 홀로 키워야 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북한이탈주민 대상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정부 지원이 부족한 탓에 탈북민 한부모의 양육은 끝나지 않는 ‘서바이벌 게임’ 같다”고 말했다.

/어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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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미션, ‘돌봄과 일’ 두 마리 토끼 잡기

제3국 출생 자녀를 둔 가정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북한이탈주민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은 국내 탈북민 정착 제도에 따라 양육비·정착기본금·주거지원 등을 받는데, 현행법상 북한에서 태어나고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야만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된다. 문제는 탈북민의 상당수가 수년간 타국에서 은신하다가 입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중국, 동남아 등 제3국을 거친다. 이 기간 제3국에서 태어난 자녀는 북한 출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양육 지원 서비스 대상에서 배제된다. 중국에서 아들과 딸을 낳은 전씨도 양육비 450만원을 제외하고 정착기본금과 주거지원은 받지 못했다.

이러한 탓에 전씨는 11년째 직업 세 개를 병행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탓이다. 전씨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된다. 그는 5시간가량 환자 옆에서 식사부터 거동까지 돕는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오전에 요양보호사 업무를 마치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다음 일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보험설계사로서 보험 상담·영업을 수행한다. 업무 시간이 자유로워 틈틈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일을 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늦은 저녁에는 편의점 작업복을 갈아입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넘는다. 전 씨는 “쓰리잡을 주 5일씩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반복하다 보면 온몸이 쑤신다”며 “최근에는 미흡한 건강관리로 부정맥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상황이 이보다 안 좋았다. 전씨는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이 없어 육아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며 “급여 수준을 낮춰가며 육아와 병행 가능한 시간제나 단기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로 중화요리 식당에서 설거지했어요. 처음에는 아는 중국어를 간신히 구사하며 조선족인 척했죠. 남한 사람들은 탈북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단기 일자리로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컴퓨터 자격증, 심리 상담사 자격증,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당시 공부를 한다고 아이들이 주말 내내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그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아직도 마음 한편 남아있습니다.”

북한여성인권 운동가로 활동 중인 김정아 통일맘연합회 대표는 “제3국 출생 아이는 엄마와 한번 떨어졌던 과거 경험으로 인해 더욱 심한 분리불안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맘협회 소속 회원 중 한명은 자녀가 부모와 떨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해 화상통화를 틀어놓고 다녔을 정도”라며 “결국 그 회원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미션, 제3국 출생 자녀 학교에 보내기

탈북민 자녀의 학업 공백도 문제다. 제3국에서 생활하다 온 탈북청소년들은 언어, 문화적 차이로 학업을 포기한다. 사교육에 의존한 치열한 성적 경쟁에도 튕겨져나간다. 전씨는 “첫째 아들은 한국어를 잘 못해서 학교 다닐 때 애를 먹었는데, 그래도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서도 “내후년이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둘째 딸의 입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교육 관련 정보를 얻을 네트워크가 없다”고 토로했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탈북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반면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은 정원 외 대학 특례입학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입학문이 더 넓다. 지난 2019년부터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도 특례입학 제도 적용 대상이 됐지만, 정원 ‘내’ 특례입학만 허용했다. 이 또한 강제성이 없어 정원 내 탈북청소년 특례입학 제도를 도입한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춘흥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가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제2조에 단서 조항을 두고 ‘제3국에서 출생한 탈북민 자녀’를 포함하는 것을 입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학급에서 만나는 개별 탈북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탈북민 한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보다는 ‘자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탈북민이 더 안정적으로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장 참여라는 단기적 처방과 함께 자산 형성이라는 장기적인 해법이 요구됩니다. 정부는 탈북민이 개인의 생애 주기 안에서 국가의 공적 사회보장 혜택과 사적 금융 제도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정예림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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