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 [커버스토리]

국내 대표 아동NGO 6곳이 말하는 ‘아동의 미래’

아동이 줄고 있다. 속도는 더 걷잡을 수 없다.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 정부, 기업, 언론 등 사회 모든 주체가 저출생 해법을 찾고자 분주하다. 아동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저출생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국내 대표 아동 NGO 6곳에 ‘아동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나의 아동·청소년기가 행복하지 않았는데 ‘내가 낳은 아이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했다. ‘아동이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라는 것. 이들은 “아동의 성장 환경에 따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픽=김의균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저출생 해법

한국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통계청의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19년 2.1명, 2020년 2.5명, 2021년 2.7명으로 2015년 이후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다른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2021년 말 한국방정환재단이 공개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OECD 22국 중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가 22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도 한국 아동의 삶의 질은 35국 중 31위에 그쳤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비교적 균질한 환경에서 제공되던 공교육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게 됐다”면서 “지역에 따른 불균형, 가정 형태에 따른 불균형 등 다른 국가와 비교해 한국은 어떤 영역에서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 NGO는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저출생 해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유니세프는 2013년부터 ‘아동 친화 도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동 친화 도시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정신을 실천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아동 친화 도시로 인증을 받으려면 협약에서 제시하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와 전담 조직 등 10가지 구성 요소를 갖춰야 한다. 현재 인증을 받은 지자체는 93개다. 2022년 기준 243개 지자체 중 127곳이 아동전담조직을 설치해 운영 중이고, 아동참여기구를 운영하는 지자체는 103곳에 달한다.

‘유니세프아동친화학교’ 충주 달천초의 ‘아동권리 Zone’의 모습. /유니세프

정병수 유니세프 아동권리본부장은 “인천서구청에서 한 아동이 구청 화장실 가방걸이 위치가 높아서 가방을 바닥에 둘 수밖에 없어 속상하다고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면서 “아동 정책 전담 조직에서 민원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허리 위치에 가방걸이를 추가로 설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에서는 별도의 건물을 만들어 1층에 아동 전용 민원실을 만들어 아동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다.

기관별로 집중하는 아동 대상에 따라 조직 개편을 하거나, 사업 전략 체계를 정비한 곳도 있다. 초록우산은 올해부터 자립 역량 강화, 교육 기회 보장 등 기존 어젠다별 사업 구조에서 중점 대상별 사업으로 체계를 정비했다. 김미경 초록우산 복지사업본부장은 “연구 자료와 미디어 이슈 분석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을 짚어내 보호 대상 아동, 자립 준비 청년, 가족 돌봄 아동, 저소득 인재, 위기 영아, 이주 배경 아동, 소아 의료 체계 등 7대 중점 대상을 설정했다”면서 “올해는 복지 사업뿐 아니라 연구, 옹호 사업까지 통합해 각 대상이 겪고 있는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굿네이버스는 올해 아동학대예방옹호팀을 신설해 아동들이 학대를 경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의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기아대책은 2023년 다문화사업본부를 신설해 다문화 아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024년 주목하는 대상은 다문화 아동, 가족 돌봄 청년

상당수 NGO가 올해 주목하고 있는 대상으로 ‘다문화 아동’을 꼽았다. 이유는 명백한 인구 구조 변화다. 전체 아동은 줄고 있지만, 다문화 아동은 늘고 있다. ‘2023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은 전체의 3.5%인 18만1178명이다. 다문화 학생 비율은 2012년 조사 시행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높아지고 있다.

강창훈 기아대책 다문화사업본부장은 “현장에서는 지금 다문화 아동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게토(ghetto)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면서 “이제는 복지 대상이 아니라 시민 교육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아대책은 작년에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지원 사업인 ‘있지만 없는 아이들’ 캠페인을 펼쳤는데 ‘왜 외국인 아이를 도와야 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현재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한국의 미등록 이주 배경 아동은 약 2만명으로 추산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아파도 제때 치료받기가 어렵다.

기아대책의 미등록 이주배경아동 지원 사업인 ‘있지만 없는 아이들’ 캠페인. /기아대책 홈페이지 캡처

한국 사회 내 다문화 아동이 증가하면서 지원 프로그램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다문화 아동이 한국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한글 교육이 주된 사업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통합하는 관점이 중요해졌다. 초록우산이 2021년 경기도 시흥시에 문을 연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는 이주 배경과 비이주 배경 아동이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썼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역사회 내 아동 120명에게 하고 싶은 놀이를 물어보고 의견을 반영해 팝업 놀이터를 여는 등 언어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말부터 삼성과 함께 다문화 청소년의 자신감과 사회성을 높이는 ‘삼성 다문화 청소년 스포츠 클래스’ 사업을 시작하며, 다문화 아동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했다. 현장에서는 다문화 아동을 위한 맞춤형 자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해졌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경험한 아동이기에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아동의 양육자와 소통하기 위해 여섯 나라 말로 자료를 번역해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돌봄 아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가족 돌봄 아동은 질병이나 장애 등을 가진 가족을 직접 돌보는 청소년(청소년기본법상 9~24세)을 통칭하는 용어로, ‘영케어러’라고도 한다. 이는 2014년 영국의 ‘아동가족법’에서 최초로 등장한 언어로 국내에서는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월드비전, 초록우산 등 아동 NGO들의 주요 사업 대상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가족 돌봄 아동에 대한 인식”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본다.

2022년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돌봄 청소년에 대한 국가별 인식과 정책적 대응 수준을 1∼7단계로 나눴을 때 한국은 가장 낮은 7단계 국가로 분류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보고서에서 “(가족 돌봄 청소년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놓인 효자·효녀로 호명되고 칭찬이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겨졌을 뿐 별다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차 가늠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초록우산은 지난해 11월, 숨어있는 가족 돌봄 아동을 찾아내기 위해 대한약사회와 함께 ‘돌봄 약 봉투’ 캠페인을 시작했다. 초록우산은 약 봉투에 가족 돌봄 아동이 겪는 어려움을 그린 캐리커처를 입혀 특수 제작해 전국 약국 400여 곳에 배포했다.

초록우산은 지난해 11월, 숨어있는 가족 돌봄 아동을 찾아내기 위해 대한약사회와 함께 ‘돌봄 약 봉투’ 캠페인을 펼쳤다. /초록우산 홈페이지 캡처

월드비전은 2022년부터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함께 가족 돌봄 아동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암 투병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 딸,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아동 등 가족 돌봄 아동이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다”면서 “의료비, 간병비, 주거비, 교육비 등 각자의 필요에 따라 지원 항목을 직접 선택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2000명의 가족 돌봄 아동을 발굴해 지지체계를 만들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그래픽=김의균

더 나빠지는 아동의 심리적 건강, 지지 체계와 회복 탄력성에 주목해야

아동의 심리적 건강은 NGO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사회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아동들의 마음이 더 힘들어지고, 부정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아동·청소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우울증 환자(0세부터 18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3만3536명에서 2021년 3만9870명으로 2년 만에 18.9% 증가했다.

유니세프는 2021년부터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아동의 마음 건강 문해력 증진을 위한 교육 자료를 개발해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육 자료는 감정과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타인과 갈등을 관리하는 방법 등 아동이 사회·정서적 기술을 강화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월드비전의 ‘제5회 꿈꾸는아이들 HO! 국토대장정’ 현장. /월드비전

아동·청소년의 자립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이 ‘심리적 건강’이라는 사실도 증명되고 있다. 월드비전은 2011년부터 빈곤 아동 청소년을 위한 ‘꿈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1∼24세 아동·청소년 및 청년 20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미래세대 꿈 실태 조사’ 양적 조사의 결론은 ‘구체적으로 꿈을 꾸는 아동·청소년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긍정적으로 발달한다는 것. 김순이 본부장은 “나만이 가진 내적 역량을 발견하고 지역사회에 지지 체계가 있을 때 마음의 근력이 성장했다”면서 “다만 학대 등 아동 시기에 겪은 부정적 경험 강도가 높은 아이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발견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장소영 기아대책 국내사업본부장은 “빈곤 가정 아동, 가정 밖 청소년 등 이 시대 위기 아동들은 공통적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다”면서 “아동 주위에 ‘좋은 어른’ 역할을 해줄 사회적 지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마음톡톡’ 활동 현장.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자립 준비 청년에 대한 지원도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아동들이 시설을 퇴소할 때 자립 정착금을 주지만 사회적 지지 체계와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서 “시설에 보호됐을 때부터 심리 정서적 지원을 통해 회복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굿네이버스는 2013년부터 GS칼텍스와 함께 위기 가정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을 지원하는 ‘마음톡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이나 연극, 만들기 등 예술 활동을 접목해 심리적 건강 수준을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2021~2022년 마음톡톡 프로그램 효과성 연구에 따르면, 프로그램 참여 전후로 아동의 자아 존중감, 자기 표현 등 심리적 건강 영역이 모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후 아동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후 위기와 디지털 활용 방안 고민해야

10년 후 아동들이 더 심각하게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문제는 ‘기후 위기’와 ‘디지털 활용’이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은 “아동이 직면하는 위기 상황 중 범지구적으로 심각한 것이 바로 기후 위기”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23년부터 지구의 기후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알리는 아동·청소년들의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Earthemble)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 진행한 공식 출범 행사에서는 지구기후팬클럽 창단 멤버 20인 아동이 주축이 되어 기후 위기 문제를 글과 그림, 사진·영상, 조형물 등으로 알렸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더 환경 이슈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한 아동이 ‘10년 후에 숨을 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공부가 왜 중요하냐’고 반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활동 현장. /세이브더칠드런

디지털 활용 문제 또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꼽혔다. 정병수 유니세프 아동권리본부장은 “AI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아동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모든 기술이 발전 과정에서 미리 아동친화적으로 설계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월드비전은 아동의 성장 환경에 따른 디지털 활용 격차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현재 아동들은 디지털 원주민”이라면서 “갈수록 기술은 더 발전할 텐데 가정 환경의 격차와 상관없이 디지털 도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기후 위기’와 ‘디지털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일 뿐, 결국 기존 위기가 재현되고 있다”며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격차없이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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