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목)

“수어와 구어의 공존, 무대 위에서 다양한 언어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정정윤 핸드스피크 대표

“연기나 춤에 재능 있는 농인들이 많지만 무대에 설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초반에는 연습실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이들의 재능을 발굴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농인 배우를 육성하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핸드스피크’의 정정윤 대표는 “농인과 청인이 동등하게 무대에 서려면 기획, 제작단계부터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수어(手語)가 제 1언어인 사람을 농인, 한국어가 제 1언어인 사람을 청인이라고 부른다.

정정윤 핸드스피크 대표는 2018년 농인 아티스트 3명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 현재 20명 넘는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핸드스피크
정정윤 핸드스피크 대표는 2018년 농인 아티스트 3명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 현재 20명 넘는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핸드스피크

핸드스피크는 2018년 설립 당시 농인 아티스트 3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20명 넘는 단체로 성장했다. 농인 아티스트가 선보이는 연극, 뮤지컬, 수어랩·노래 등의 콘텐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즐길 수 있다. 2020년 무대에 오른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은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 대사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브라이언임팩트에서 사회혁신 조직을 지원하는 ‘임팩트그라운드 2기’에 선발돼 3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들은 이번 지원으로 농인 예술가 50명을 육성하고 창작품 10개를 무대에 올리면서 농문화 맞춤형의 농예술 제작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달 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대표는 “우리 아티스트들을 흔히 ‘농인 예술가’라고 부르지만 장애 구분 없이 그냥 예술가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핸드스피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15년 전이다. 공연기획사에서 일할 때 춤을 사랑하는 농인 청소년 3명을 만났고, 이들의 담당자가 됐다. 정말 재능 있는 친구들인데 연습과 노력의 결과와는 다르게 무대에 설 기회가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 김지연, 김희화, 이혜진이 핸드스피크 창단 멤버다. 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보다는 친동생 같은 친구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돕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했다.”

-농인 극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선 생소하다.

“해외에서 열리는 여러 축제 현장을 다니면서 가능성을 봤다. 물론 재정적 어려움은 있지만 농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 있었고, 아티스트가 활동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없다는 점을 오히려 해결해야 할 과제로 봤다.”

-단원 선발 과정이 궁금하다.

“매년 상반기에 아티스트 오디션을 본다. 설립 초창기에 농인 아티스트들의 실력을 보는데 준비된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연기나 춤을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걸 더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실력을 평가해 단원을 선발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핸드스피크 단원들의 모습. /핸드스피크
핸드스피크 단원들의 모습. /핸드스피크

-농인과 청인 배우가 함께하는 연극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이라고 하면 보통 청인 배우의 대사를 무대 옆이나 아래에서 수어통역사가 대사를 전달하거나 별도의 화면에 자막을 띄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별도의 인력이나 장치의 도움 없이 농인 아티스트들이 꾸미는 무대와 농인과 청인이 동등하게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각자의 캐릭터가 존재하며, 수어와 음성 언어가 공존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고,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모두 극찬을 보낸다.”

-임팩트그라운드 2기로 선정돼 큰 지원을 받게 됐는데.

“대규모 지원은 처음이다. 그전까지는 연습할 때마다 공간을 대여해야 했다. 농인 아티스트들은 바닥의 울림이 중요한데, 대여한 대부분의 연습실은 바닥 울림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바닥 공사를 하려면 비용이 꽤 드는데, 이번 지원 덕분에 우리만의 연습실을 갖게 됐다. 선정 과정에서 아티스트, 수어통역사, 기획, 운영지원팀 등 핸드스피크 멤버들의 역할이 컸다. 혼자 발표를 준비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이야기했다. 우리들의 간절함을 알아준 것 같아 감사하다.”

-운영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올해로 운영 5년째다. 활동이 넓어지면서 외부 기관과 협업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농인을 자연스럽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한 조직들을 많이 만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상자들을 고려하고 필요성을 인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목표는?

“농인 아티스트들이 기획, 진행, 홍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외부로 나가는 모든 콘텐츠에 농문화가 담겼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핸드스피크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핸드스피크는 아티스트들이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하고 활동의 기회를 끊임없이 찾아나갈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설립때부터 염두하고 준비한 것은 핸드스피크를 농인 대표가 맡았으면 한다. 더하여 농인 아티스트들이 예술을 할 기회와 활동이 더 많아지면 일반 기업에서도 농인 리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예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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