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발달장애인 게임대장과 함께하는 최고의 경험

청년기자와 모두다 게임대장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박창현사진작가)
정한솔 청년기자(사진 왼쪽 뒷줄)와 ‘모두다’의 게임대장들이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있다. /박창현 사진작가

“모두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는 보드게임 대장 키(key)에요.”

서교동사거리 인근, 번화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드게임카페 ‘모두다 홍대점’에 들어서자마자 게임대장 ‘키’가 기자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해왔다. ‘짝’ 소리 나게 손바닥을 마주치자마자 또 다른 게임대장 준(june)이 다가와 기자를 게임 테이블로 이끌었다.

테이블에 준과 함께 앉으니 키가 보드게임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모두다만의 독특한 규칙 ‘웜업(warm-up)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손님과 게임대장이 친밀감을 쌓고,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예열작업’인 셈이다. 게임 이름은 ‘도블’. 처음 보는 게임에 당황한 기자에게 키가 규칙을 설명했다. “가운데 놓인 공유 카드 그림 중 자기가 가진 카드의 그림과 같은 걸 찾아서 먼저 외치면 돼요.” 준이 ‘얼음!’을 외치고 공유카드를 자기 앞에 가져가는 순간, 제대로 불이 붙었다. 승부욕이 발동한 기자가 용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용가리!’라고 소리를 지르자 테이블 위로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발달장애인을 ‘게임대장’으로…모두다의 시작

모두다의 직원 9명 중 4명은 게임대장으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손님들에게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건네고, 모두다에 구비된 보드게임의 룰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틀을 벗어나, 편견 없이 상대를 대하기 위해 직원 모두 본명 대신 닉네임을 사용한다. 모두다 홍대점의 책임자인 영(young) 이사는 “각자 잘 할 수 있는 게임이 다를 뿐 게임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게임은 ‘모두가 이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 하나만 이기면 재미가 없잖아요. 게임에서 이기려면 규칙을 잘 알아야 하니 게임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가이드가 있어야 하고,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게임을 돌려줄 사람이 필요해요. 모두다에서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게임대장’이죠.”

모두다가 발달장애인 게임대장과 함께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설립자인 박비 대표가 게임 회사에 재직 중이던 시절, 임직원봉사로 발달장애인 복지관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봉사 중 쉬는 시간에 잠시 모바일게임을 하던 박 대표의 주변으로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고, 그 일을 계기로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게임 자체를 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놀이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박대표는 섬세한 조작 없이 함께 놀 수 있는 키넥트(모션인식게임기)를 가지고 장애인 복지관을 돌아다니며 ‘찾아가는 게임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장애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게임으로 놀 수 있는 공간에서 가능성을 본 이들의 협력이 이어졌다. 여기에 공감하는 많은 게임인, 기관과 관심의 도움,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올해 4월 지금의 모두다 홍대점을 개장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대장들은 엄연히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두다의 직원이다. 함께 놀며 장애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다에 있는 100여종의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대장들은 손님이 없는 동안 대사처럼 게임 소개를 주고받으며 연습을 한다. “저랑 같이 웜업 게임 해보실래요? 스플렌더는 저희 게임방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전략게임이에요. 카드마다 점수가 쓰여 있는데 15점을 먼저 모으는 사람이 이겨요. 자기 턴에 서로 보석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모은 보석으로 카드를 살 수도 있어요.” 게임대장 키는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게임대장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모두다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즐거움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게임대장들에 대해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방문 시 함께 게임했던 게임대장을 찾는 손님도 있다. 특히 어린 손님들의 반응이 좋다. 기자 역시 준과 함께 스키게임을 하는 동안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게임방법을 전혀 모르는 기자가 첫 번째 게임에서 게임대장인 준을 이긴 것. 알고 보니 게임에 흥미를 느끼게 하려는 준의 배려였다. “함께 놀면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준은 “스키 게임 중에서도 맵이 좀 더 어렵고, 볼거리가 많은 버전이 있는데, 익숙해지면 다음에 같이 해보자”면서 게임을 권해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모두다 게임대장 제임스(좌측)와 키(우측)(사진제공=박창현사진작가)
‘모두다’의 게임대장 제임스(좌)와 키. /박창현 사진작가

◇개성에 맞는 역할로 성공…‘최고의 게임경험’ 나누고파

모두다의 테이블은 저녁이면 대기표를 받아야 할 만큼 가득 찬다. 월 매출은 10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모두다가 처음부터 승승장구 한 것은 아니다. 4월 모두다 홍대점을 열고 2개월 동안은 관리비를 낼 만큼의 수익도 나지 않았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불을 꺼놓고 있기도 했다.

“가게를 열어도 손님이 적으니까 일이 많지 않았어요. 청소를 하고 남는 시간엔 직원들이 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서로 특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죠. 그러면서 알게 됐어요. ‘아 이 친구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어휘력이 좋구나’ ‘이 친구는 말수는 적지만, 전략은 정말 잘 짜는구나’ 개성을 아니까 역량이 보이고, 일을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 알게 됐죠. 경영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이 같이 있는 ‘모두다 게임’만의 가치를 만들어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네 명의 게임대장 중 가장 사회성이 뛰어난 제임스(james)는 가장 중요한 ‘하이파이브’를 담당하고 있다. 모두다를 처음 찾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어주고, 간식을 권유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키는 카드뉴스를 직접 제작해 모두다의 SNS 홍보를 담당한다. 하나의 카드뉴스를 만들기 위해 직접 보드게임 규칙을 연구하고 게임말을 세워 사진을 찍으며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동욱은 키와 함께 보드게임을 설명하는 카드뉴스를 만들고, 모두다의 SNS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직원들끼리 사용하는 단체 메신저방에 발달장애와 관련된 이슈나 기사를 찾아 공유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웃긴 영상이나 사진은 덤이다.

모두다는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문화 알리기에 주력하기 위해 모두다 홍대점 성공을 발판삼아 매장 수를 늘릴 계획이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에게도 게임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회 전반에 좋은 게임 경험을 주자는 게 모두다의 지향점이 됐다.

“게임을 검색엔진에 치면 연관검색어가 ‘중독’이에요. 사회문제, 특히 청소년 비행 문제의 원인으로 게임이 뭇매를 맞고 있는데 게임이 ‘착한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모두다가 장애인 게임대장과 함께하고 있는 것 처럼요. 게임은 재밌잖아요. 재미를 추구한다는 건 마음에 여유를 한 번 더 주는 거거든요. 정말로 깊이 있는 게임을 경험하고 나면, 힐링이 돼요. 모두다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관계없이 더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게임 경험’을 주기 위해 이 곳에 있어요.”

영 이사의 눈빛에서 모두다가 ‘게임이 착한 일을 한다’의 선도 기업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볼 수 있었다.

정한솔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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