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잘 먹고 잘 논다, 보여주고 싶었죠”…비건페스티벌 기획자 강소양 인터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돼 있으니 비건(Vegan · 우유, 버터, 달걀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을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 정말 잘 먹거든요.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 테마도 ‘1일 9식’이에요. 우리 되게 잘 놀고, 우리 되게 잘 먹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함께 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 (비건 페스티벌 기획자, 강소양 카페 ‘달냥’ 대표·사진)

청세담촬영_비건페스티벌기획자_강소양_달냥_2016

지난 1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제2회 비건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올해 5월 첫 비건 페스티벌을 연 후, 입소문을 탔는지 이날 현장에만 30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제법 큰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비건 페스티벌의 기획자는 단 3명이다.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채식 카페 ‘달냥’의 강소양(39)·최서연(35)대표와 비동물성 소재 의류브랜드 ‘비건타이거’의 양윤아(34)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세 명의 채식주의자 친구가 ‘사서 고생’하며 이렇게까지 큰 행사를 개최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페스티벌이 막바지에 접어든 오후, 현장에서 강소양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짧은 질문에도 단문으로 답하는 법이 없었다. ‘비건’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딱히 사명감을 갖고 채식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영향이 컸죠. 그러다 고3 때,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진정한 영웅들>을 봤어요. 예전에 농가에서 키우던 소를 생각할 게 아니더라고요. (사육과 도축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이뤄지는 걸 본 이후로 동물권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에게 채식이 갖는 의미를 알리고 싶었지만, 그가 비건이라고 밝힐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낯선 삶의 방식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강 대표가 고심끝에 선택한 수단은 ‘맛’이었다. 맛있는 채식 요리를 접할 때 사람들의 눈빛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연스레 요리에 흥미를 붙이게 된 그는 아예 비건 음식 전문 카페(달냥)까지 차렸다. 

“카페를 차린 이후에도 사람들이 동물권 보호와 환경 문제 해결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어요. 특히 여성으로서, 채식주의자로서 택할 수 있는 부드럽고 비폭력적인 방식은 없을까 고민했죠. 저와 달냥을 함께 꾸려가고 있는 최서연 대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고, 동아리 친구인 양윤아 대표는 옷을 만들 수 있으니 있는 재주를 활용해보자 싶어서 프리마켓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지인 8명과 양재동에서 소규모로 개최한 ‘비건 프리마켓’은 100명 정도의 방문객을 모았다. 채식 이슈가 지금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성공적인 숫자였다. 수익금으로는 내의를 구매해 노숙인들에게 전달했다. 플리마켓 방문자가 4회차만에 400명을 돌파하자 ‘장소를 빌려 제대로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올해 1월 개최된 ‘비건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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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비건페스티벌 현장.

“영국의 채식주의 축제 ‘베지페스트’는 페스코(어패류와 유제품,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부터 비건까지 채식주의자 전반을 대상으로 해요. 그러다보니 저 같은 비건은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계속 자기검열을 해야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비건을 기준으로 잡으면 행사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건 음식은 페스코도 일반인도 모두 먹을 수 있으니까요.” 

페스티벌의 기준을 완전 채식으로 설정하고 나니 참가 부스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했다. 비건 요리의 주 재료인 두유나 음료에 첨가될 사이다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갈렸다. 동물성 재료에 대한 고민은 음식 뿐만 아니라 의류나 생필품 등에도 번졌다. 축제 안에 ‘진정한 비건’을 담아내기 위한 검열과 논의는 비건 생활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강 대표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가 됐다. 

“1회 행사에는 70개 팀이 판매자로 참여했고, 강원도, 안동, 부산 등 전국 각지 1500명 이상의 시민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오늘 2회에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방문객이 참가했고요. 생각보다도 훨씬 성공한 거죠. 사실 철저하게 비건 생활을 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00% 직접 요리를 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할 경우, 비건을 지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그런 것들이 페스티벌을 통해 터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력이 되는 한, 올해처럼 일 년에 두 번씩 진행할 예정이에요. 사회를 완전히 뒤집고, 제도를 만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문화를 통해 비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처럼요.” 

강 대표는 강요 대신, 부담스럽지 않은 ‘스며듦’의 가치를 역설했다. 비건 페스티벌을 통한 ‘힘주지 않은 보여주기’는 그 어떤 ‘설득’보다 확실한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형민·정한솔·조은지 더나은미래 기자 (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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