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돼 있으니 비건(Vegan · 우유, 버터, 달걀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을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 정말 잘 먹거든요.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 테마도 ‘1일 9식’이에요. 우리 되게 잘 놀고, 우리 되게 잘 먹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함께 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 (비건 페스티벌 기획자, 강소양 카페 ‘달냥’ 대표·사진)
지난 1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제2회 비건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올해 5월 첫 비건 페스티벌을 연 후, 입소문을 탔는지 이날 현장에만 30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제법 큰 규모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비건 페스티벌의 기획자는 단 3명이다.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채식 카페 ‘달냥’의 강소양(39)·최서연(35)대표와 비동물성 소재 의류브랜드 ‘비건타이거’의 양윤아(34)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세 명의 채식주의자 친구가 ‘사서 고생’하며 이렇게까지 큰 행사를 개최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페스티벌이 막바지에 접어든 오후, 현장에서 강소양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짧은 질문에도 단문으로 답하는 법이 없었다. ‘비건’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딱히 사명감을 갖고 채식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영향이 컸죠. 그러다 고3 때,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진정한 영웅들>을 봤어요. 예전에 농가에서 키우던 소를 생각할 게 아니더라고요. (사육과 도축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이뤄지는 걸 본 이후로 동물권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에게 채식이 갖는 의미를 알리고 싶었지만, 그가 비건이라고 밝힐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낯선 삶의 방식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강 대표가 고심끝에 선택한 수단은 ‘맛’이었다. 맛있는 채식 요리를 접할 때 사람들의 눈빛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연스레 요리에 흥미를 붙이게 된 그는 아예 비건 음식 전문 카페(달냥)까지 차렸다.
“카페를 차린 이후에도 사람들이 동물권 보호와 환경 문제 해결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어요. 특히 여성으로서, 채식주의자로서 택할 수 있는 부드럽고 비폭력적인 방식은 없을까 고민했죠. 저와 달냥을 함께 꾸려가고 있는 최서연 대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고, 동아리 친구인 양윤아 대표는 옷을 만들 수 있으니 있는 재주를 활용해보자 싶어서 프리마켓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지인 8명과 양재동에서 소규모로 개최한 ‘비건 프리마켓’은 100명 정도의 방문객을 모았다. 채식 이슈가 지금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성공적인 숫자였다. 수익금으로는 내의를 구매해 노숙인들에게 전달했다. 플리마켓 방문자가 4회차만에 400명을 돌파하자 ‘장소를 빌려 제대로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올해 1월 개최된 ‘비건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영국의 채식주의 축제 ‘베지페스트’는 페스코(어패류와 유제품,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부터 비건까지 채식주의자 전반을 대상으로 해요. 그러다보니 저 같은 비건은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계속 자기검열을 해야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비건을 기준으로 잡으면 행사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건 음식은 페스코도 일반인도 모두 먹을 수 있으니까요.”
페스티벌의 기준을 완전 채식으로 설정하고 나니 참가 부스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했다. 비건 요리의 주 재료인 두유나 음료에 첨가될 사이다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갈렸다. 동물성 재료에 대한 고민은 음식 뿐만 아니라 의류나 생필품 등에도 번졌다. 축제 안에 ‘진정한 비건’을 담아내기 위한 검열과 논의는 비건 생활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강 대표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가 됐다.
“1회 행사에는 70개 팀이 판매자로 참여했고, 강원도, 안동, 부산 등 전국 각지 1500명 이상의 시민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오늘 2회에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방문객이 참가했고요. 생각보다도 훨씬 성공한 거죠. 사실 철저하게 비건 생활을 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100% 직접 요리를 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할 경우, 비건을 지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그런 것들이 페스티벌을 통해 터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력이 되는 한, 올해처럼 일 년에 두 번씩 진행할 예정이에요. 사회를 완전히 뒤집고, 제도를 만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문화를 통해 비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처럼요.”
강 대표는 강요 대신, 부담스럽지 않은 ‘스며듦’의 가치를 역설했다. 비건 페스티벌을 통한 ‘힘주지 않은 보여주기’는 그 어떤 ‘설득’보다 확실한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형민·정한솔·조은지 더나은미래 기자 (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