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더나은미래 논단] 실리콘밸리에선 고액 자선도 투자처럼

권오용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애플의 최고 경영자(CEO) 팀 쿡이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뽑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5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 잡지 포천(Fortune)이 발표한 자료다. 포천지는 매년 정치 지도자는 물론 CEO, 비정부기구 대표, 성직자, 스포츠맨,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고 지도자를 조사해 발표해 왔다. 팀 쿡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등극한 것은 애플의 뛰어난 실적과 무관치 않다. 2011년 쿡이 경영을 맡을 당시 54달러였던 애플의 주가는 3년 반 동안 2.5배나 올랐다. 사상 첫 시가총액 1조달러 기업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다. ‘잡스 없는 애플’은 기우로 남게 됐다. 그런데 이런 숫자적 성과만으로 팀 쿡의 저력을 평가하기엔 이른 사건이 터졌다. 그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재산은 8억달러(약 8800억원)로 평가된다. 쿡은 “10세인 조카의 대학 학비를 대주고 나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미 소리 소문 없이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플리커(flickr) 제공
플리커(flickr) 제공

팀 쿡<사진> 이전에 페이스북으로 수퍼 리치의 반열에 오른 마크 저커버그는 2013년 1월에 10억달러를 기부해 20대의 나이로는 처음으로 고액 기부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의 고액 기부자 10위 안에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벤처기업가가 4명이나 포진했다.

그렇다면 소위 첨단을 달리는 실리콘밸리의 고액 기부자들은 과거의 기부자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에게 자선사업은 기업 투자와 다를 바 없다. 벤처 자본을 연상시키는 ‘벤처 자선사업’이라는 용어는 자선가가 직접 사업을 선택하고 참여하며 확실한 근거가 있는 목표 중심의 자선사업 방식을 옹호한다. 또한 벤처 자선이 기존의 자선 활동에 자극을 주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행동한다.

우선, 미국 실리콘밸리의 젊은 고액 기부자들은 그들의 자선을 사회 투자로 표현하며, 자선 투자에 대한 결과를 세심하게 추적하며 관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부금을 벤처 자본으로 취급하고 그에 상응하는 룰(Rule)을 적용한다. 그들이 말하는 룰이란, 현실 자선사업의 측정 가능한 목표, 명확한 결과 그리고 지속적인 조직의 성장이다. 즉 경영의 룰이 자선에 적용된다.

둘째, 사회 투자는 자선뿐 아니라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둔다. 투자에 대한 예상 실적을 내지 못하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기부를 전략적 플랜에 근거하여 제공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으며, 자신이 원했던 핵심적인 가치와 일치하는 곳에 자신의 기부금이 사용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고 실리콘밸리 소셜 벤처 기금단체(Silicon valley Social Venture Fund)의 상무이사인 젠 라타이(Jen Ratay)가 말한 바 있다. 쿡은 이미 “애플이란 회사는 지금까지 돈을 버는 것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둬 왔다”며 “인도주의 실천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셋째, 그들이 말하는 파트너십은 단지 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인적 자산, 전문 기술 그리고 투자받는 자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 능력을 갖춰나갈 수 있는 기술적 지원도 제공한다. 한마디로 벤처 자선은 좋은 일에 그저 수표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들 사이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정점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기부하기를 원한다. 최근 젊은 기부자 사이에서 기부는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세일즈포스재단의 설립을 도왔던 수잔 디비안카(Suzanne DiBianca)는 산업 리더들을 육성하는 스탠퍼드 대학의 한 강의에서 “자선은 인생에 있어서 성공해서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다. 자선은 사업이 막 성장하기 시작했을 때, 기업을 상장했을 때, 또는 기부할 돈이 있을 때 그때가 적기이다. 지금 당장 하는 것(Do it now)이다”라고 젊은 시기의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대에 고액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저커버그의 사례는 젊은 기부자들에게 많은 임팩트를 주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상징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를 창출한 기업가들은 첨단 기술 지식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자신의 기업관을 자선사업에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 그들은 사회문제 해결에서 혁신적인 지식으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발전된 해결 방안들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에 맞추어 많은 자선 단체가 사업에 더욱 집중하고 낭비 요소들을 줄이기 위해 전문화된 단위로 조직을 분할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자선 단체의 조직이 과거보다 더 많이 잘게 쪼개질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자선사업도 민첩하고 네트워크화된 소기업의 장점을 살리는 길을 따라갈 것이다.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는 벤처 자선을 실천하기 위한 젊은 사업가들의 열기가 뜨겁다. 그리고 과정의 투명성, 행동의 효율성 그리고 성과의 평가 같이 일반적 투자에 적용되는 방식은 자선사업 수행에서도 그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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