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Cover Story] [고액 기부자 3인의 기부 철학을 듣다] ① “기부자, 그들의 가치를 평가해주세요”

[Cover Story] 고액 기부자 3인의 기부 철학을 듣다 (1) 일레인 차오 前 유나이티드웨이 회장

전 세계 고액 기부자 수십 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 10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5 UWW 자선 라운드테이블 서울 대회’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허동수)와 유나이티드웨이 월드와이드(UWW)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전 세계 고액 기부자 50여 명과 국내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 유치를 주도한 최신원 SKC 회장은 회원 수 882명의 아너소사이어티 총대표이자 UWW리더십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과거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지구촌 나눔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이번 회의를 통해 나눔의 리더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눔’이라는 행복한 동행의 주춧돌을 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나은미래’는 이 행사에 초청된 고액 기부자 중 3인을 만나 기부 철학을 엿들었다. 일레인 차오(Elaine L.Chao·사진) 전 유나이티드웨이 회장이자 미국 24대 노동부 장관, 마이클 헤이드(Michael K.Hayde) 웨스턴 내셔널그룹 CEO, 빌 오다우드(Bill O’dowd) 돌핀 디지털미디어 CEO가 그들이다. 편집자 주


 

사진: 이한나 작가 / 장소 협찬: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사진: 이한나 작가 / 장소 협찬: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오래 지낸 노동부 장관, 미국 부시 행정부 초기 내각 중 유일하게 8년간 근무(2001~2009),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최초로 대통령 내각에 임명, 회계 부정으로 위기에 빠진 유나이티드웨이를 구한 CEO,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아내…. 일레인 차오씨를 설명하는 이력이다. 중국인 부모를 따라 8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그녀가 이뤄낸 성취는 끝이 없을 정도다. 그녀는 최근 또 하나 이력을 더했다. 차오가족재단(Chao Family Foundations)의 회장 역할이다. 부모 이름을 딴 이 재단은 하버드대에 400억원을 기부했고, 2016년 6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아시아인 이름을 딴 최초 건물인 ‘루스물란 추차오 센터’를 연다. 그녀는 “기부와 나눔에 대한 모든 걸 자수성가한 부모님에게 배웠다”고 했다. “검소한 기독교인인 부모님은 자신들이 잘나서 성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무런 배경도 없던 이민 초기 우리 가족은 무척 어렵게 살았는데, 이때의 경험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여섯 딸에게 기부를 몸소 가르쳤습니다. 1984년 중국 최초의 자선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중국이 개방된 게 1979년이었으니, 재단 설립에만 5년이나 걸린 셈입니다. 재단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 재단을 통해 중국 학생 1만명을 지원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친 일레인 전 장관은 시티그룹, 뱅크 오브 아메리카 캐피털 등 기업에서 일하다 미 평화봉사단, 유나이티드웨이 등 비영리단체와 공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또한 부모 영향이라고 했다. 1992년 유나이티드웨이가 회계 부정 사태로 명성에 크나큰 타격을 입을 당시, 그녀는 회장을 맡았다. 신임 회장 선출을 위해 전국에서 600명 넘게 인터뷰한 끝에 낙점됐다고 한다.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습니다. 제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기부자들과 소통을 늘렸으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더 많은 봉사자가 거버넌스(governance)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어요. 회장 취임 당시 이사회 정원은 18명이었는데, 36명으로 확대했습니다. 이사회 총회는 기껏해야 1년에 2번, 2시간 정도 형식적으로 치르는 행사에 불과했는데 이것도 실질적으로 바꿨습니다. 또 회계, 배분, 윤리, 자원 개발, 봉사활동, 지역사회 등을 담당하는 6개 신규 위원회를 설립했어요. 20명씩 새로운 위원을 선발해 대거 유나이티드웨이로 끌어들이고, 이들이 우리 조직을 모니터링하도록 했어요. 단돈 1달러라도 기부된 이후에 어떻게 쓰이는지 회계 내역을 모두 공개해 기부자들과 언론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미상_사진_기부_일레인차오2_2015 기자회견과 방송, 1년에 한 번 있는 유나이티드웨이 봉사자 대표 콘퍼런스 등 시시때때로 재정 운용 결과를 보고했다고 한다. 그녀는 “비영리 단체가 신뢰를 한번 잃으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몇 배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뢰를 잃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영리 단체의 공시와 관련해 논란이 많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금을 위해 사용된 돈을 사업비로 보아야 하는지, 사업을 위해 필요한 인건비를 사업비로 볼지 인건비로 볼지에 대한 논란을 들려주었다. “기부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기부금 중 얼마나 펀드 레이징 비용에 쓰이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꼭 몇 %에 쓰는지 그 규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무 회계 공시를 할 때 어떤 정보를 담아야 하는지, 한국 기부자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은 매우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토론 과정이니 당황하지 마세요. 미국 사례는 미국에 맞는 것일 뿐입니다. 한국의 비영리 리더들과 기부자들은 인내심을 갖고 이런 논의의 장을 통해 스스로 결정해나가야 합니다.” 기업, 비영리 단체, 공공 조직까지 미국을 움직이는 세 분야를 모두 경험한 이색 경력 덕분일까. 그녀는 민-관 파트너십에 대한 이해 폭이 넓었다. “세 분야는 모두 다른 언어로 일을 합니다. 정부가 예산을 쥐고 있지만, 민간 영역이나 비영리 단체가 없다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소외 계층에게 직접 돈을 준다면, 그들은 굳이 자립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나오니까요. 하지만 비영리 단체는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지요. 미국에서도 비영리 단체는 정부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사회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 비영리 단체 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각각 3분의 1씩 균형을 맞춰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요.”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갖춘 그녀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양에서 기부라는 싹이 튼 것 못지않게, 아시아의 오랜 전통 안에도 나눔과 기부 정신이 많다”고 강조했다. 미상_사진_기부_일레인차오3_2015 “아시아인들은 겸손을 강조하고, 교육을 중시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등 문화적 공통점이 있어요. 중국에서도 집안에서 한 명이 부자가 되면 어려운 친·인척을 다 돕는 문화가 있어요. 한국에서 ‘아너소사이어티’의 엄청난 성공을 보면서 그걸 느꼈어요. 우리 부모님은 무작정 부유해지는 걸 좇지 않았어요.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여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세계적인 선박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이죠. 후손과 자녀를 위해 어떤 세상을 그릴지 꿈을 꾸다 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선뜻 돈을 기부할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에게도 사회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어요.” 1887년 미국에서 설립된 UWW는 41개국에 1800개 지부를 두고 있다. 한국에선 2010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2013년부터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지난해엔 영국 런던, 올해엔 서울에서 자선 라운드테이블을 열어 세계 고액 기부자들과 네트워킹 행사를 연다. “미국처럼 빌게이츠와 같은 고액 기부자가 많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127년의 유나이티드웨이 역사 중 고액 기부(major giving)는 1980년대에야 시작됐을 정도로 아직 역사가 짧다”고 답했다. “미국도 예전에는 한국공동모금회처럼 기업 기부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개인 기부와 고액 기부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고액 기부가 ‘개미 기부’보다 더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1달러를 기부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백만달러를 기부할 수도 있죠. 모금의 기본 원칙은 ‘요청(asking)’하는 겁니다. 소액을 기부했다 하더라도 기부자들의 가치를 평가해 주세요. 기부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도움을 주기를 원합니다. 이런 고액 기부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유나이티드웨이(UWW) 자선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됐다. 미국·영국·중국·가나 등 8개국 고액 기부자 50여명과 국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부자의 역할을 논의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지난 10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유나이티드웨이(UWW) 자선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됐다. 미국·영국·중국·가나 등 8개국 고액 기부자 50여명과 국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부자의 역할을 논의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일레인 차오는 누구? ―차오가족재단(Chao Family Foundations) 회장 ―부시 행정부 당시 24대 미국 노동부 장관(2001~2009) ―미 유나이티드웨이 회장 ―미 평화봉사단장 ―미 운수부 부장관, 미 해사연방위원회 위원장, 백악관 펠로 등 ―마운트홀리요크대 경제학, 하버드 경영대 MBA ―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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