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고액 기부자 3인을 만나다] ③ “기부 요청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고액 기부의 조건”

[고액 기부자 3인을 만나다] (3) 마이클 헤이드 웨스턴 내셔널그룹 회장

3년간 세계 돌며 고액 기부자 50명 발굴
얼마나 많은 사람 도왔는지 성과 측정해
기부자들에게 전달… 신뢰 쌓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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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서 지역으로, 옆 나라에서 전 세계로 시야가 넓어졌다. 작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게 됐다.”

마이클 헤이드(Michael K. Hayde·사진) 회장은 고액 기부자가 된 이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3조 규모, 직원 2만5000명을 거느린 미국 부동산 개발 회사 ‘웨스턴 내셔널그룹(Western National Group)’ CEO이자, 유나이티드웨이 리더십위원회 위원장이다. 헤이드 회장이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총 708억원. 44년간 아파트·주택 3만여 채를 개발 및 건축해온 이 투자 전문가는 고액 기부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빈다. 지난 15일, 한국 고액 기부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첫 기부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

“1985년에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뜸 ‘쉽게 갈래, 어렵게 갈래?’ 묻더니, 1만달러(약 1200만원)를 기부하라더라. 우리 동네에서 고액 기부자 모임을 하려고 하는데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거였다. ‘어렵게 가는 건 뭐냐’고 물으니 ‘기부할 때까지 사무실에 와서 죽치고 앉아있겠다’고 하더라. 고민할 새도 없이 그렇게 1만달러를 기부하게 됐다. 막상 내고 보니, 큰돈을 너무 고민 없이 기부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고액 기부자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지갑이 더 열리더라(웃음).”

―기부를 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관계성’이다. 내가 얼마나 믿고 존경하는 사람이 나에게 기부를 권하느냐 여부가 고액 기부를 좌우하더라. 그런 사람이 추천하는 단체라면 믿고 기부할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웨이가 고액 기부자들 모임을 통해 그들 가족 및 지인들을 계속 기부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원동력도 바로 이런 관계성에서 비롯된다.”

―기부금 708억원은 어떤 곳에 쓰이고 있는가.

“어린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지역의 많은 이웃들이 우리 가정을 도와준 덕분에 대학에도 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남에게 얼마나 베푸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처칠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내가 어렵게 공부한 만큼 기부금도 가난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태어났을 때 만났던 아이들이 벌써 성인이 됐으니, 지금까지 어림잡아 약 9000명의 아동·청소년 교육을 지원해왔다. 나눔은 물 속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돌멩이가 물속 어디에 자리잡았는지 알 수 없어도 멀리까지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한 명의 인생이 바뀌면 그 사람뿐 아니라 그와 접점에 있는 많은 이가 함께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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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웨이 리더십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고액 기부자를 발굴했나.

“3년 전 유나이티드웨이 CEO인 브라이언 갤러거, 스티븐 밴 그로닝겐 현 리더십위원회 부위원장를 만났을 때였다. ‘유나이티드웨이 고액 기부자 모임을 서포트하는 구조화된 위원회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그럼 네가 해보라’며 즉석 제안을 받았다. 그 후 전 세계 많은 분을 만나 후원을 부탁했고, 지금까지 약 50명을 고액 기부자로 인도했다(웃음). 런던, 독일로 가서 리더십위원회를 설립했다.”

―유나이티드웨이는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기부해야 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할 수 있지만, 한국엔 현재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아너소사이어티)만 있다. 향후 미국처럼 초고액 기부자를 많이 발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사회의 챔피언들을 찾아서 고액 기부자로 만들어라. 나 역시 처음에 1만달러를 기부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1만달러를 선뜻 기부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뭐라고 못 하겠다고 하겠느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랬더니 바로 유나이티드웨이가 그럼 이제 5만달러(약 60억) 기부를 권유하더라. 이렇게 기부자의 타이밍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웃음).”

―한국엔 아직도 고액 기부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문화가 많다. 무엇이 고액 기부를 방해할까.

“미국도 마찬가지다. 고액 기부자들은 항상 걱정 속에 산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익명으로 기부하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나로 인해서 기부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날 수 있다면, 익명 기부자에서 벗어나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꼼꼼한 피드백도 중요하다. 유나이티드웨이는 성과를 다각도로 측정해서 고액 기부자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얼마나 많은 아이를 도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멘토가 됐는지, 아이들이 계속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는지’ 등 3가지 측정 도구에 맞춰 매년 피드백을 준다.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다.”

―향후 고액 기부의 트렌드를 짚는다면.

“캐나다 사람이 인도·아프리카에 고액을 기부하거나 자신과 먼 곳에 사는 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돕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 전 세계 고액 기부자들이 함께 교류하고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다양한 섹터가 협력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고액 기부자 사이에서 화두인 이유다. 모일 때마다 각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찾는다. 각자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고액 기부자들은 그러한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안다. 나눔의 시너지는 협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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