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그린굿스, 라오스 소농과 동반성장… 동남아 양계시장 독점 깬다

[인터뷰] 이재원 그린굿스 대표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한국 스타트업 ‘그린굿스’에 50만 달러(약 6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그린굿스는 라오스 소규모 농가에 병아리를 제공하고, 농민들이 사육한 닭을 약속한 가격에 구매해 유통한다. 이른바 ‘양계 구독 서비스’로 소농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동남아 양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동남아 닭고기 시장은 태국의 CP그룹이 독점하고 있다. CP그룹은 공장식 양계장에서 기른 닭을 대량 공급한다. 사육 환경은 좋지 않다. 더운 나라에서 밀집 사육을 하려면 항생제나 살충제 같은 화학 약품을 필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린굿스는 라오스 전역에 약 40개 마을, 83개 농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친환경, 무항생제 방식을 고수해 중국과 동남아의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 22일 사업 확장을 위해 라오스에 머물고 있는 이 대표를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으로 만났다.

이재원 그린굿스 대표는 “양계산업은 소규모 농가가 빠르게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진입장벽이 높았다”며 “그린굿스는 소농을 위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린굿스
이재원 그린굿스 대표는 “양계산업은 소규모 농가가 빠르게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진입장벽이 높았다”며 “그린굿스는 소농을 위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린굿스

-양계 구독 서비스의 구조가 궁금하다.

“소농들에게 품질이 보증된 병아리를 시장가 절반에 판다. 소농들은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75일 동안 잘 키우면 된다. 그럼 그린굿스가 약속된 가격에 수매해서 프리미엄 브랜드에 납품한다. 키우는 과정도 지원한다. 닭에게 문제가 있으면 바로 채팅방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된다. 그린굿스 소속 수의사가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75일 동안 정기검진도 2번 받을 수 있다. 휴경기에는 무료로 양계장 방역을 해준다. 사료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소농들이 양계업하기 어려운 환경인가.

“그렇다. 우선 초기 자본이 많이 든다. 라오스 양계시장은 태국의 CP그룹이 독점하고 있는데, 대규모 밀집 사육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최소 4만 달러(약 5300만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지역 유지 정도는 돼야 양계업을 할 수 있다. 그린굿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최소 1500달러(약 200만원)만 있으면 된다. 150마리를 키우는 데 드는 초기투자 비용이다. 그럼 그린굿스가 병아리 250마리와 사료를 먼저 제공하고, 닭을 판매한 후에 나머지를 정산한다. 만약 1500달러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NGO와 연계해 펀딩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라오스에는 현금이나 담보가 없으면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신용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니까 참여하는 농민이 빠르게 늘었다. 현재 전국 40개 마을에서 60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한 마을에서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23개 농가가 참여 중이다.”

-친환경 사육을 할 수 있나?

“오히려 소규모 농가가 친환경 사육을 하기에 더 적합한 환경이다. 소농들은 집 주변에 양계장을 짓는다. 그린굿스에서는 32㎡(9.7평)에서 200~250마리를 키우게 한다. 닭들이 뛰어놀 수 있는 ‘닭 놀이터’ 공간도 32㎡ 규모로 추가 확보하게 한다. 대규모 밀집 사육보다 한 마리당 4~8배 정도 더 넓은 면적을 쓰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굳이 항생제나 살충제 같은 화학약품을 쓸 필요가 없다.”

-소농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얼마나 되나.

“75일 동안 닭을 키우고 250달러(약 33만원) 정도를 가져간다. 월 100달러 정도 버는 셈이다. 라오스 공무원 초임이 80달러 수준인 걸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소득도 정기적으로 얻을 수 있다. 라오스 농가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 보통 2모작을 하니까 1년에 목돈이 들어오는 건 2번이다. 양계를 하면 1년에 5번 추가 수익이 들어오는 거다. 닭이 알을 낳으면 달걀을 팔기도 한다.”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고.

“양계업을 하기에는 집에 오래 있는 사람이 적합하다. 여성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다가 양계장에 틈틈이 가는 거다. 하루 30분만 투자하면 된다. 또 닭을 꾸준히 키우려면 병아리를 살 때 쓸 돈을 항상 모아놔야 한다. 남성은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돈이 들어오면 바로 다른 데 쓴다.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꾸리니까 돈이 생기면 차곡차곡 모아놓고 일부는 살림에 보탠다. 여성에게 양계를 맡기는 게 사업 취지에도 맞고,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웬만하면 여성이 주도적으로 양계를 하도록 유도한다.”

지난해 10월 이재원 그린굿스 대표가 라오스 시엥쿠앙주 캄군 포시마을 마을사무소에서 주민들에게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린굿스
지난해 10월 이재원 그린굿스 대표가 라오스 시엥쿠앙주 캄군 포시마을 마을사무소에서 주민들에게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린굿스

-왜 라오스를 택했나.

“라오스는 지리적으로 동남아 중심에 있다. 라오스 인구는 700만명이지만 위아래로 16억 인구가 있다. 중국 인구가 14억, 베트남이 9900만명, 태국이 7200만명이다. 우선 중국부터 공략하려고 한다. 중국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국 남부와 라오스 사이에 고속철도가 연결돼 전망이 좋다. 라오스는 주변국에 이미지도 좋다.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항상 푸르고 깨끗한 이미지다. 친환경 제품에 ‘메이드 인 라오스(Made in Laos)’ 브랜드를 달면 수출에 유리하다.”

-프리미엄 닭 시장을 공략한다고.

“우리나라에서는 건강기능식품, 건강보조식품으로 건강을 챙긴다. 개도국은 약품 규제나 인증 제도가 미비해서 대부분 음식으로 영양분을 채운다. 하지만 친환경, 무항생제를 보증하는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태국 CP사에서 대량생산한 획일화된 상품만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2014년에 코이카가 지원하는 ODA 인턴을 하면서 라오스 현지 NGO로 파견됐다. 그때 라오스 축산업에 가능성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울대학교 농경제대학원에 진학해서 농가에 지속가능한 지원을 할 방법을 고민했다. NGO를 설립할까, 생각도 했는데 위기가 터지면 후원자를 한 명씩 설득하면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소농이 일방적인 지원을 받기보다는, 동등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정당하게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부터 준비를 해서 2021년 6월 정식으로 그린굿스를 설립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러 국가의 시장을 공략하는데 리스크는 없나.

“중국만 두고 보면 라오스에 대해 매우 열려 있다. 같은 사회주의 체제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라오스와 중국을 잇는 철도도 중국이 깔아줬다. 물론 라오스에서는 중국이 땅을 빼앗아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철도로 보낸 컨테이너에 물건을 꽉꽉 채워서 들여오고 싶어한다. ‘메이드 인 라오스’는 중국 국경을 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행정적인 부분만 잘 챙기면 이른 시일 안에 수출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중고 농기계 기부 사업, 농가 대상 건강검진 등 현지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다. 정관에도 수익의 30%는 사회에 환원한다고 적혀 있다. 좋은 일을 하려면 빨리 성장해야 한다. 앞으로 보건이나 교육 쪽 지원을 더 하려고 한다. 게다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직원이 많아져서 회사가 더 잘돼야 한다(웃음). 직원이 지금 27명인데 직원을 100명까지 늘리고 싶다. 단기적으로는 라오스에서 가장 좋은 병아리 부화장과 종란을 보관하는 종란장을 갖춘 양계 시설을 갖추려고 한다. 중국 시장에는 2~3년 안에 진출하는 게 목표지만 더 빨리 이룰 수도 있다고 본다. ADB 투자를 받는 것도 5년으로 목표를 잡았는데, 2년 만에 이뤄졌다. 큰 시장으로 진출해 좋은 실적을 내고 싶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