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홀로 사회 나와보니… 힘든 현실 실감나

쉼터 출신 정선민씨

“아는 오빠가 소년원에 있다가 퇴소하고 혼자 일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하루는 술을 잔뜩 먹고 있는 대로 때려 부수면서 그랬다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으니까, 제발 소년원으로 다시 보내 달라’고요. ‘먹고, 자게만 해달라’고요. 쉼터를 나와 생활하는 동안 그 말이 참 공감이 갔어요.”

정선민(가명·23)씨의 첫인상은 지쳐 보였다. 어린 시절 집을 나와 쉼터 생활과 자립을 거치며 쌓인 피곤함이다.

정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손에 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 사정이 크게 어려워졌다. 사정을 알게 된 담임교사는 정씨에게 쉼터를 소개했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외동딸로 자라 낯을 가리는 데다, 견제와 텃세도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쉼터는 편한 곳이 돼 있었다. “친구와 선생님도 좋았고, 여행을 자주 갈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정씨는 당시 쉼터에서 진행됐던 프로그램을 통해 독도, 울릉도, 베트남 등을 다녀왔다.

정씨가 쉼터를 나온 것은 17세 때였다.

“원래 놀기 좋아하고 사고도 많이 쳤는데, 허구한 날 사고를 치니까 민망해지더라고요. 민폐 끼치는 것 같았어요. 소장님은 계속 다시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미안해서 못 들어갔어요. 사실은 계속 있고 싶었지만요.”

쉼터를 나온 정씨는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는 옥탑방에서 살았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집이었다. 그나마 지역의 한 후원자가 보증금을 마련해줘 얻은 방이었다. 혼자가 되자 막막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적당히 나쁜 짓 해가며 편하게 살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했다. 아버지가 혼자 계셨지만, 같이 살지 않았다. “술 먹고 주정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악착같이 일만 했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정씨는 “제대로 쓰지도, 먹지도 않았다”며 “샴푸 하나 사는 데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서빙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옷가게와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간호조무사로 일하기도 했다. 밤이 되면 바에서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 700만원으로 고시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게 작은 월세 방도 마련해줬다.

그녀는 오는 27일 호주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이곳 생활을 훌훌 털고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간다”고 했다. 정씨는 아직도 가끔 쉼터를 찾아간다. 친정 엄마 같은 쉼터 소장을 찾는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쉼터엔 입을 옷이 없어서 언니들 것을 돌려 입던 기억이 많이 났어요. 지금은 옷 사면 유행 지나기 전에 쉼터 애들에게 갖다 줘요. 아이들도 분명 예쁜 것 입고 싶을 테니까요. 갖다 주면 거들떠도 안 보는 척해요. 나중에 소장님이 일러줘요. 제가 가고 나면 애들이 무척 신이 나면서 입어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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