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12가지 핵심과제] ⑫여성 “가족 공동체 살아나면 사회문제 저절로 해결되죠”

경제·정치적 성장 불구, 여성격차지수는 하위권
가족 역할 붕괴가 원인… 남성의 육아휴직 늘리기, 이웃 아이들 돌봐주기 등 확대된 가족 정서 필요
고정관념 정착하지 않게 여성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전후 60년만에 폐허였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됐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세계적인 기업이 배출됐고, 반기문 UN사무총장·김용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수장도 탄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꼴찌수준인 분야도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발표에서 우리나라의 여성격차지수는 135개국 중 107위였다. 최근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아시아 10대 국가의 상장기업 744개를 조사한 결과, 한국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낮았다. 1%였다. 유럽(17%)과 미국(15%)은 물론, 같은 아시아권임에도 중국(8%)이나 말레이시아(6%), 일본(2%)보다 낮았다.

성평등 사회를 위한 대안은 뭘까. ‘딸들에게 희망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1999년 출범한, 여성을 위한 유일한 민간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 조형(69) 이사장을 만났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조 이사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또하나의 문화’를 결성해 여성문화운동을 전개했고, 한국여성학회장, 이화여대 ‘이화리더십개발원’ 초대원장 등을 역임했다.

―향후 10년 우리 사회 업그레이드를 위한 12가지 핵심과제를 취재해보니, 결국 문제의 핵심은 ‘가족’이었다. 가족해체, 공동체 붕괴로 인한 비용이 너무 크다.

“모든 사회문제를 가족해체나 공동체 붕괴의 문제로 볼 수는 없겠지만, 공동체적 정서의 회복은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문화가족, 재혼가족,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족, 한부모 가족이나 단독가구가 많아지는 등 가족의 형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확대가족이 했던 역할을 대체할 가치나 규범이 없다. 핵가족 중심의 가족이기주의 대신, ‘확대된 가족’ 정서가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마음이 이웃과 공동체로 확대되면, 학교폭력·왕따 문제,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 가정폭력, 고독사 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가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양육의 불안이 해소되면 출산율도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숙한 시민사회는 자연히 만들어진다.”

―다른 분야에 비해, 성 격차 해소나 여성권익 보호 등 여성문제 진전은 왜 이리 더딘가.

“소위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만 아니라, 여성가족부가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정책을 만들어도 다른 부처들이 적극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예산편성·정책편성에서 남녀 차별이 없도록 하는 ‘성인지 예산’ 제도는 중앙의 모든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뿌리깊은 고정관념도 문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 권력과 명예, 돈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희소자원들을 일차적으로 남성이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져야 한다.결국 폐지되기는 했지만, 가족법 개정 과정에서’호주제’가 가장 끝까지 버텼다. 기업뿐 아니라 국회, 정부 부처 등에서도 아직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직은 남성들이 나누어 맡고 있다. 고위직이나 임원 승진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여성을 우선 배제시킨다. 여성들도 쉽게 포기하고 그늘로 숨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여성재단은 ‘딸들에게 희망을’캠페인을 통해 여성공익단체 지원사업, 소외여성 자립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한국여성재단은 ‘딸들에게 희망을’캠페인을 통해 여성공익단체 지원사업, 소외여성 자립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여성 관련 정책이나 시스템이 좀더 업그레이드 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

“여성가족부를 부총리 부처로 승격시키면 안될까. 여성정책은 결코 여성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여성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남성들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성폭력 사건만 해도, CCTV 확대나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의 정책에서 좀 더 나아가,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방과 후 혼자 있는 아이를 돌보는 등 아이와 여성을 보호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의 모든 정책도 남성적 시각에서 결정된 지금까지의 정책과는 달리, 여성의 눈으로 정책을 바라보고,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복원의 좋은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한국여성재단과 미래포럼이 지원한 곳인데, 부산에 있는 ‘맨발동무 도서관’ 사례가 훌륭하다. 여기는 도서관 자체가 하나의 돌봄공동체이고 동네의 중심이다. 엄마들이 ‘몇 시간만 봐주세요’ 하고 아이들을 데려다 놓기도 하고, 아이들은 도서관을 동네 사랑방처럼 오고간다. 자원봉사자, 도서관장, 사서도 동네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보살핀다. 이 도서관이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던 날, 그 동네 아이들이 보자기에 책을 싸서 머리에 이고 줄지어 걸어서 직접 날랐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꿈을 키우는 이 동네에는 셋째 아이를 낳는 가정이 늘고 인근 아파트로 이사오려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규격화된 어린이집이나 도서관보다는, 그 지역에서 필요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유연한 센터들이 동네를 변화시킨다. 일상적인 삶의 현장이 움직이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DNA도 변화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경쟁DNA를 순화시키고 보살핌DNA를 활성화하는 일, 이것이 앞으로 여성운동의 과제라고 본다.”

미상_사진_여성_여성들_2012―한국여성재단은 여성을 위한 유일한 민간공익재단으로 13년째 활동해오고 있다. 어떤 역할과 비전으로 향후 10년을 준비하고 있나.

“전국에서 정책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찾아 활동하거나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여성공익단체를 지원하고, 활동가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에는 결혼이주여성과 자녀, 미혼모,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이 스스로 경제적·사회적 주체로 자립할 수 있도록 힘주기(empowerment)하는 사업 지원이 많아졌다. 앞으로,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성평등을 현실화하고 여성인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우리 사회가 ‘돌봄사회’로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역에서 조용히 불고 있는 혁신의 바람, 일상적 삶의 양식과 조건의 변화운동에 리더십을 지원하는 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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