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토)

“처음 만나는 세상 ‘인류세’가 온다” [2023 미래지식 포럼]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7>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인간중심주의’ 확립해야

인류가 자초한 기후위기. 지구 생태계 파괴와 인류 멸종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28일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는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호모사피엔스, 기후위기를 말하다’라는 대주제로 물리학, 심리학, 국문학, 환경공학, 건축학, 지리학 등 여섯 분야 학자들의 강연이 진행됐다.

“‘인류세’라고 들어보셨나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자주 회자될 용어인데요.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기 시작한 지질시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지질시대를 나눌 때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큰 격변이 있었을 때, 예를 들면 종 다양성이 크게 감소했거나 증가한 경우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지금 이 시기를 인류세라고 부른다는 건, 현재 지구 생태계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아일랜드에서 열린 ‘2023 미래지식 포럼’ 2부 ‘인류가 쓰는 새로운 연대기’의 마지막 연사로 나섰다. 박 교수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부터 소개했다.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의 마지막 연사로 나선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분석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의 마지막 연사로 나선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분석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환경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 지질학적 시기를 뜻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구가 빙하기와 간빙기, 신생대 등 자연적인 지질시대인 ‘홀로세’를 거쳐 인류세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인류세는 2000년 네덜란드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인 파울 크루첸이 처음 제안했다.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IGC 2024)에서 과학자들은 현시기를 인류세로 공식 선포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인류세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 약 20년 동안 학계에서는 이를 과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논의가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인류세 시작 시점을 두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1950년이 적당하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가 이뤄졌습니다. 왜 1950년일까요? 사회경제적 상황이나 지구 시스템이 이때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 이후 세계 인구와 실질GDP, 에너지 사용량, 물 소비량, 운송량 등 사회경제적 여건이 급격히 변화했다. 지구 시스템 측면에서는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 등 3대 온실가스의 대기 중 농도가 급속히 짙어졌다. 경작지 면적, 바닷고기 포획량, 열대림 손실 면적도 빠르게 확대됐다. 박 교수는 “이 시기를 ‘대가속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이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고, 인간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간이 일으킨 모든 환경 문제를 포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인류는 기온 상승에만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만 막으면 환경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기온 상승 외에도 종 다양성 감소, 수질·토양 오염, 미세먼지 심화 등 다양한 환경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는 생태계 변화까지 좀 더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나무 등 식생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위기를 막겠다고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간이 일으킨 모든 환경 문제를 포괄한다”며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만 막으면 환경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간이 일으킨 모든 환경 문제를 포괄한다”며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만 막으면 환경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박 교수는 효율과 형평의 균형을 강조했다. 환경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효율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성급하게 정책을 펴다가 개발도상국, 취약계층, 눈에 띄지 않는 생물종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대응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획기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지구공학적 방법’을 구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구공학적 방법의 예로는 성층권에 이산화황을 뿌리면 이산화황이 에어로졸로 바뀌면서 태양으로부터 들어오는 복사열을 반사하고, 지구 기온이 떨어질 것이라는 구상이 있습니다. 이미 기술도 준비돼 있고, 많은 과학자가 실험에 매달리고 있죠. 거대 자본도 투입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방법은 한 번 쓰면 다시 이전의 지구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기후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또 경각심을 잃겠죠. 그리고 비슷한 문제가 또 반복될 겁니다. 이산화탄소 농도도, 지구 온도도 오르고 결국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구공학적 방법은 최후의 순간에 사용해야 합니다. 인간이 부작용까지 관리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사용 전에 매우 면밀한 검토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박 교수는 인류세 시기의 인간은 중세 이후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고, 변화시키고, 이로 인한 부작용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최근 등장한 포스트휴머니즘에서는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행위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이제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탈인간중심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겸허한 태도,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인간이 일으킨 환경 위기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간중심주의’를 확립할 때입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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