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판결, 그 후 남겨진 과제는?

[이슈 현장] 기후 헌법소원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
“이제는 승소를 넘어 대응의 시간”

“헌법소원 판결은 기후대응의 최선이 아닌 더 이상 사회가 물러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입니다. 후퇴만 계속하던 국가에 선이 정해진 것은 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0월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후 헌법소원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후 이 의미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10월 16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언젠가 오고야 말 행복’을 뜻하는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채예빈 기자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로 줄이겠다는 시행령을 정했다. 문제는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헌재는 “2031~2049년까지 구체적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과소보호금지 원칙(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보호 조치)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2026년 2월 28일까지 해당 법을 개정해야 한다.

토론회는 기후소송 판결의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세계 최초로 기후소송에서 승소를 얻어낸 네덜란드의 데니스 반 베르켈 변호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기후변화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과 정부는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최고법원의 판결로 인정받았다”며 “한국의 성공은 전 세계 여러 국가 법원에 중요한 선례가 된다”고 말했다.

스위스, 대만, 일본 기후 활동가들도 축하의 말을 보냈다. 아사오카 미에 변호사는 올해 8월 일본에서는 한국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에 감명을 받아, 청소년 16명이 10대 화력발전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을 외쳤던 헌법소원 당사자들은 더 커진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힘껏 “이제는 승소를 넘어 대응의 시간”을 외쳤다. 기후소송 판결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기후위기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윤세종 기후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변호사가 기후헌법소원 판결을 기반으로 정부와 국회의 과제를 설명하며 본격적인 토론을 열었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법적 원칙에 기반하고, 한국의 역량과 경제적 수준, 인구를 모두 고려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야 한다. 윤세종 변호사는 “2050년까지의 감축 경로를 하루아침에 정할 수 없는 만큼, 시나리오 도출과 사회적 합의, 의견 수렴이 모두 필요하다”며 “정부에게는 내년 유엔에 제출할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중요한 과제다”고 짚었다.

10월 16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패널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채예빈 기자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강화’가 잘못된 수단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식에서 핵발전을 제외하고, 탈석탄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지역과 노동자를 고려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황인철 위원장은 에너지 수요감축 정책과 함께 이를 고려한 산업정책이 적절하다고 언급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법안을 만들 때 공공의 자리에 다양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청소년기후행동은 어떤 법안이 필요한지, 법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소송단과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원탁회의를 만들어 정치권에 선제적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기후소송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을 ‘기적적인 결정’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안정적인 기후에서 생활할 권리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정부의 기후대응이 미래세대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환경권 침해’로 뭉뚱그려 판단을 피한 것이 유감이다”고 밝혔다.

주선영 기후미디어허브 전략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이번 판결에서 언론 또한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지난 4월 공개 변론에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을 두고,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이를 반영해 심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주선영 담당은 “언론이 사회적 관심을 가늠하는 척도인 만큼, 기후 분야 소식이 꾸준히 보도되도록 언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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