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1일(수)

“문학이 우리를 구원하진 못해도” [2023 미래지식 포럼]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3>
“기후위기 돌파할 힘과 희망은 문학에 있다”

인류가 자초한 기후위기. 지구 생태계 파괴와 인류 멸종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28일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는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호모사피엔스, 기후위기를 말하다’라는 대주제로 물리학, 심리학, 국문학, 환경공학, 건축학, 지리학 등 여섯 분야 학자들의 강연이 진행됐다.

“과학실험으로 만들어진 괴물에 대한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의 발단이 이상기후인 걸 아시나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는 1816년 여름 유명한 시인 퍼시 셸리와 함께 스위스로 밀월여행을 떠납니다. 당시 퍼시는 24세의 유부남, 메리는 19세의 싱글이었죠. 남들의 시선을 피해 밀월을 즐기려던 메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행 내내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람에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대낮에도 촛불을 밝혀야 할 정도로 어둡고 추웠죠.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여름 날씨로 숙소에만 머물러야 했던 이들은 지루한 시간을 날려버리기 위해 밤마다 기괴한 기담을 하나씩 만듭니다. 이때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가 탄생했죠.”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28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열린 ‘2023 미래지식 포럼’에서 문학 작품을 통해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날 세 번째 연사로 나선 정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2017)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2020) 등을 출간하며 이름을 알렸다.

28일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에서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세계 문학 속에 등장하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28일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에서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세계 문학 속에 등장하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포럼에서 정 교수는 1816년 유럽에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설명했다. “그해 여름 끔찍한 연휴를 보낸 건 메리 셸리 일행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연구에 따르면 1816년에만 지구 평균 기온이 0.4~0.7도 떨어졌죠. 특히 1766~2000년 새 가장 추웠던 여름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1816년이 ‘여름을 잃어버린 해(Year without a Summer)’로 불리는 이유죠. 시인 바이런의 ‘암흑’, 화가 존 컨스터블의 ‘웨이머스 베이’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에 당시 기후가 담겼습니다.”

1816년 지구 평균 기온이 급감한 이유는 전년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에 위치한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면서다. 지난 2000년 이래 규모가 가장 컸던 화산으로, 9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을 가져온 백두산 화산보다도 2배나 강력한 초대형 화산으로 기록된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 분출물과 가스가 성층권을 덮으며 햇빛을 차단했고, 기온이 1도가량 급락한 것이다. 기온 급강하로 흉작이 만연했고 곡물 가격이 급등했으며 식량을 구하지 못한 유럽 농민과 도시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폭동을 일으켰다.

정재찬 교수는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정재찬 교수는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정재찬 교수는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길런 다시 우드·2017)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신동원·2004) 등의 서적을 통해 탐보라 화산이 어떤 이상기후를 초래했는지, 이는 어떤 형태의 사회재난을 불러일으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문학 작품은 과거의 기록을 전달하고 현재 삶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나 재앙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인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파이(Cli-Fi·기후 소설)’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2021), 정세랑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2020) 등이 클라이파이 장르에 해당한다.

정 교수는 기후위기를 돌파할 힘과 희망을 문학작품이 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의 예시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읊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어릴 적 야산에 나무를 심으면서 ‘나 하나 나무를 심는다고 뭐가 바뀔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심었던 나무를 잊고 살다가 30년 후에 야산을 다시 방문했죠. 울창한 숲이 돼 있더라고요. 개개인의 노력과 마음이 모여 수백, 수천명의 임팩트를 만들고 이는 결국 기후위기의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는 있습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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