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저출산 원인이 연애를 못해서?… 성남시의 ‘이상한 미팅’ 행사

저출산대책팀 ‘청춘만남 사업’ 추진
단체 미팅에 예산 총 2억4500만원
청년 당사자들 “시대착오적 예산 낭비”

성남시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미혼 남녀 미팅 행사를 주최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성남시 정책기획과 저출산대책팀은 오는 7월 고급 호텔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녀 각 100명씩 총 200명의 만남을 주선한다. 행사에서는 연애코칭과 커플 게임, 1대1 로테이션 대화 등이 진행된다. 이에 대해 “성남시가 저출산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세금을 낭비하는 근시안적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성남시 '청춘남녀 만남 행사 Solo Mon(솔로몬)의 선택' 포스터. /성남시
성남시 ‘청춘남녀 만남 행사 Solo Mon(솔로몬)의 선택’ 포스터. /성남시

행사의 정식 명칭은 ‘청춘남녀 만남 행사 Solo Mon(솔로몬)의 선택’이다. 신청 자격은 성남시에 주민등록을 두거나, 성남시 소재 기업체에 다니는 27세 이상 39세 이하(1985~1997년생) 미혼 직장인이다. 참가 신청을 하려면 사진이 부착된 지원서와 주민등록초본, 혼인관계증명서,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혼인 이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없다. 성남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혼 남녀에게 자연스러운 만남과 지속적인 관계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확산하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성남시는 IT기업 직장인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에 행사 포스터와 전단을 배부, 부착해 참가자를 집중적으로 모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벤트 업체 선정을 위해 시가 작성한 ‘용역 과업지시서’에는 “신청자의 나이와 직업, 직급, 소속기관 등을 감안해 진행 조를 정한다”는 계획도 나와있다. 특히 ‘잔잔한 음악을 틀어 어색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음악과 함께 남녀 간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에 들었던 이성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 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같은 운영 계획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성남시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총 2억4500만원이다. 장소 대관과 행사 전문 MC 섭외, 연애코칭 전문 강사 섭외, 와인스탠딩 파티 등에 쓰인다. 또 만남이 성사된 커플에게는 기념품 또는 1회 만남 지원비를 제공한다.

청년 당사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판교 소재 게임회사에 다니는 33세 남성 한모씨는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정책이 고작 ‘주선’이라니, 오히려 청년들을 연애를 못해 결혼도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이어 “집값이나 자녀 교육비를 생각하면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단순히 ‘청년에게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이 생기면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틀린 접근”이라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 현장. /대구 달서구
대구 달서구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 현장. /대구 달서구청

지자체 주최의 청춘만남 사업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결혼 적령기 청년끼리 만남을 갖기 어려운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주로 열렸다. 최근에는 대규모 도시에서도 이 같은 행사를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년 1인 가구가 모여 소통하는 ‘서울팅’ ‘청년 사랑 프로젝트’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대구 달서구 등도 비슷한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는 당사자들의 만남뿐 아니라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끼리 만나 직접 자녀의 짝을 찾는 ‘내 자녀 천생연분 찾는데이’까지 운영한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동호회, 사내 모임 등 남녀가 만날 기회는 이미 널려 있다”며 “억지로 만남을 종용하는 듯한 정부 정책은 오히려 청년의 냉소와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는 저출산 원인을 똑바로 진단하고 공공만이 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성남시에서 아이를 낳으면 누구든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언제든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이 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성남시는 올해 안에 1000명을 미팅 행사에 참가시킨다는 계획이다. 다음 달에 시범사업으로 2회 진행하고, 하반기에 1~5회를 추가로 진행한다. 시범사업에서는 회당 100명씩 모집하지만, 하반기에는 회당 최대 200명까지 매칭을 시도한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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