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화)

[진실의 방] 누가 먼저 넷째를 낳을까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병원에 다니고 시술을 받아도 번번이 실패했다. 원인 불명 난임으로 고생하던 배정란씨는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게 스무 살 때. 서울서 대학 다니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다. 부부 둘 다 야근과 술자리가 많은 직업을 가진 탓에 평일에는 서로 얼굴 보기도 어려웠고 주말에는 피로에 절어 무기력했다. ‘우리가 원한 삶이 이런 것이었나?’ 부부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인 경북 청도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사과 밭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귀촌 6개월 만에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다. 자연 임신이었다. 연년생으로 둘째도 태어났다.

작년 가을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배정란씨는 마이크를 잡고 들뜬 목소리로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도 지역 여성들과 함께 ‘노는엄마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멤버로 참여한 엄마가 8명인데 아이는 23명이라고 했다. 자녀가 평균 3명씩 있는 셈이다.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알려진 청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청도에는 소아과와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 학원도 적고 돌봄 시설도 부족하다. 초등학생이 갈 수 있는 돌봄센터가 두 곳 있는데 20명씩 총 40명이 이용할 수 있다. 대기자가 많아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노는엄마들’은 육아와 돌봄 인프라가 부족한 청도에 직접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 최근 주력하는 건 협동조합 형식의 돌봄센터를 설립하는 일이다. 일단 돌봄이 해결돼야 엄마들이 일하든 놀든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멤버는 작년보다 셋 늘어 11명이 됐다. 장난식으로 이런 내기를 한 적도 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넷째를 낳을까. 그런데 최근 멤버 중 하나가 넷째를 임신했다. 배정란씨도 올여름 셋째를 낳는다. 내년에는 엄마 열한 명에 아이가 서른 명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곤두박질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 언론과 미디어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2030세대, 아이 낳지 않겠다는 청년들을 ‘사회문제’처럼 다룬다. 하지만 출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정부는 청년들의 생각을 돌려놓을 저출산 대책을 찾기 위해 ‘어떻게 아이를 낳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소아과도 산부인과도 없는 마을에서, 혹은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서울에서, 둘째 낳고 셋째 낳으며 행복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김시원 편집국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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