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시각장애인의 ‘목소리 친구’ 돼보세요”… 낭독활동가 교육 현장을 가다

양질의 오디오북 제작 위해 목소리 훈련
“누구나 따뜻하고 푸근한 소리 낼 수 있어”

“하늘 높이 떠서도 뽐내지 않고 / 소리 없이 빛을 뿜어내는 / 한 점 별처럼 / 나도 누구에게나 빛을 건네주는 / 별 마음 밝은 마음으로 /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 ‘꽃마음 별마음’을 마이크에 대고 낭독한 수강생 권분조(74)씨가 눈가를 손으로 훔쳤다. 한 자 한 자 글귀를 읽어내리다 나온 권 씨의 눈물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난달 12일 서울 양재동의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열린 낭독활동가 교육 현장에서다.

낭독활동가 교육은 글을 소리 내 읽는 법과 나만의 목소리 재능을 만들어 가는 수업으로, 대부분 낭독봉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낭독봉사란 시각장애인을 위해 글이나 책을 면대면으로 읽어주거나 오디오북을 제작해 지원하는 활동을 뜻한다. 시각장애인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 등에서 이따금 낭독봉사자를 모집한다.

지난달 12일 서울 양재동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된 낭독활동가 교육 현장에서 수강생 이정은(59)씨가 오디오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감정을 실어 자연스럽게 말하는 낭독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효 청년기자
지난달 12일 서울 양재동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된 낭독활동가 교육 현장에서 수강생 이정은(59)씨가 오디오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감정을 실어 자연스럽게 말하는 낭독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효 청년기자

권씨는 딸의 추천으로 낭독활동가 교육을 신청했다. 치매 환자인 남편이 주간 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에 머무는 시간에 짬을 내 교육장을 찾는다. 평소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고, 남편 병간호에 치여 기회가 없었던 그에게 우연히 마주하게 된 수업이었다. 권씨는 경상도 억양을 가진 70대 노인도 수강할 수 있다는 말에 얼른 수강 신청을 했다.

“낭독봉사라는 새로운 일을 하면서 마음에 활력소가 생겨요. 평소에도 집에서 혼자 소리 내 책을 읽곤 했는데, 여기서는 선생님들이 지도도 해주시고 글의 내용도 ‘탁’ 마음에 와닿고 좋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여기 오라고 이야기 해줘야겠다 싶어요.”

수강생 연령대는 30대에서 70대까지 폭넓다.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낭독할 때 조금은 쑥스러워할지라도,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다. 수강생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라는 이름으로 수업에 참여하지만 동시에 봉사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 수는 25만76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점자도서 이용이 가능한 인구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각장애인 10명 중 8명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 시각장애인인데, 이들이 새로운 언어인 점자를 배우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오디오북을 찾는다. 점자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오디오북 이용률은 80%일 정도로 수요가 높은 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TTS(텍스트 음성 변환)를 활용해 정보를 접한다.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는 있지만, 기계음을 빠른 속도로 오래 듣다 보면 귀에 피로도가 쌓인다. 청각 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람의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를 찾게 되는 이유다. 문제는 오디오의 품질이다. 여러 기관에서 이벤트성으로 봉사자를 모집해 체계적인 교육 없이 제작하면 오디오 질이 고르지 못하다.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들이 오래 들어도 편안한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의 장영재(왼쪽) 대표와 보조강사를 맡고 있는 문하연 회원. /김지효 청년기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의 장영재(왼쪽) 대표와 보조강사를 맡고 있는 문하연 회원. /김지효 청년기자

“누구나 따뜻하고 푸근하고 친절한 소리를 갖고 있어요. 그 소리를 성격이나 성향 때문에 잘 꺼내지 못했을 수 있을 뿐이죠. 이제 연습해야죠. 누굴 위해서? 듣는 사람을 위해서.”

낭독 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책읽사)를 이끄는 장영재 대표가 말했다. 그는 경력 20년의 프리랜서 성우다. 지난 2013년부터 10년째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100명이 넘는 책읽사 회원들과 매달 오디오북을 제작해 장애인단체와 기관에 기증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자료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을 포함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으로 전해져 5000여 명의 시각장애인과 만났다.

장 대표가 단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시각장애인 관점’이다. 마이크 앞에 앉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본인이 편한 대로 빠르게, 혹은 너무 느리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장 대표는 “듣는 사람이 편한 오디오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분석의 과정과 읽기 연습이 필수”라며 “국내에 낭독봉사자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강사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기증한 오디오를 시각장애인들이 쉬고 싶을 때 듣는 음악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오디오를 편하게 열람할 수 있을지, 클라우드 등 플랫폼 활용을 고민 중이다. 목소리 재능을 키워 누군가의 ‘쉼’이 될 수 있는 보람찬 활동. 이것이 낭독이 가진 매력이자, 순기능이다.

김지효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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