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꿈으로 여는 메달] ④ 수영 세계新… 스스로 ‘희망’이 되고 싶어요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꿈으로 여는 메달] ④ 수영선수 조기성군
뇌병변 2급 장애 갖고 태어나 초등학교 짝꿍 여자애가 같이 앉기 싫다고 해 충격
수영대회서 메달 받고 자신감… 하루 1만m 수영 맹훈련 “나도 똑같은 사람인 걸 알았다”

손끝이 ‘터치패드’에 닿았다. 조기성(17·광주고2·뇌병변2급)군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전광판 쪽을 향했다. ’40초11’. 자신의 종전 기록, 그리고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우크라이나의 비노라데츠 선수가 작성한 세계기록(42초60)을 2초 이상 앞선 결과다. 그 순간 방송이 흘러나왔다. “조기성 선수가 한국신기록 겸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고. 지난 9월 30일부터 대구에서 실시된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의 첫째날, 수영 남자 50m 자유형 ‘S3(허리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 등급)’ 경기의 주인공은 단연 조군이었다. 조군은 이 대회에서 (비공식) 세계신기록 2개를 포함 3관왕에 올랐다. 조군을 지도했던 박문배 사회복지법인 SRC재활센터 운영팀 과장은 “같은 등급의 외국 상위 랭커들은 90% 이상이 중도 장애”라며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선수가 이 정도 기량을 내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라고 했다.

조산으로 태어난 조기성군. ‘배밀이’도 못하고, 보행기도 못 타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그저 “늦되나보다”고만 여겼다. 아들이 뇌성마비인 걸 처음 안 건 13개월째. 조군의 어머니 김선녀(44)씨는 “태어날 때 작은 뇌혈관들이 터져 하반신 기능이 마비됐다고 했다”며 “실감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조군에게 세상은 ‘두려운 곳’이었다.

하반신마비를 앓고 있는 조기성 선수는 상체 힘만으로 하루 1만m를 헤엄친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 제공
하반신마비를 앓고 있는 조기성 선수는 상체 힘만으로 하루 1만m를 헤엄친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 제공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어떤 여자애가 저랑 ‘짝꿍하기 싫다’며 떼를 쓰는 거예요. 나보고 ‘더럽다’고 했죠. 결국 그 여자애는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렸어요. 상처가 많이 됐죠.”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말수도 줄었다. 김씨는 “기성이가 뇌에 문제가 있다 보니, 아예 말을 못하는 아이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며 “사람을 멀리했고, 대화도 안 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1일 오후,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SRC재활센터 수영장. 운동을 마친 조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들이 제가 신기록 세운 거 못 믿겠나 봐요. 어제 제 기록이 나온 기사를 보여줬는데, 당황하더라고요. 오늘도 인터뷰가 있다고 하니, 부러워하는 눈치였어요. 한편으론 뿌듯하더라고요.”

조군은 그새 수다쟁이가 돼 있었다. 운동을 한 후 생긴 변화다. 조군은 원래 물속에서 하는 물리치료의 일종인 수(水) 치료를 진행하다 재활체육을 하게 됐다.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20분 동안 물속에서 울다가 나온 적도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7개월째 됐을 무렵, 센터에서 작은 수영대회가 열렸다. 장애 아동들이 모여 재미 삼아 진행됐던 것. 김씨는 “참가만 하면 다 상을 주는 조그만 대회였는데, 거기서 박수 받으며 메달을 목에 건 이후 아이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태어나 처음 받아본 박수, 처음 느껴본 성취감이었다. 수영을 대하는 조군의 자세는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기성이가 혼자 운동하러 못 가기 때문에 꼭 데려다 줘야 했어요. 하루는 작은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정비소에 맡긴 적이 있었는데, 사정이 그런데도 가야 한다고 우기더라고요. 실랑이 끝에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수영장에 갔어요. 아이의 열정이 느껴졌죠.”

조군이 하루에 수영하는 거리는 1만m 정도다. 상체 힘만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운동량이다. 조군은 “재활 때는 몰랐는데, 나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수영이 정말 재밌고 즐거운 일이 됐다”며 “어릴 적에는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무서웠는데, 수영을 통해 나도 똑같은 사람이란 걸 느꼈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미 세계적인 기대주로 성장한 조기성군. 조군은 스스로 “희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국제대회에 나가서 메달 하나라도 더 따낼 겁니다. 그런 걸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이 저를 장애인이 아닌, 친구로 봐주기 시작했던 것처럼요. 나 같은 아이들이 몸은 불편해도 운동하기는 편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요.”

지난달 말, 조군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장애청소년경기대회’에서 평영 종목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박문배 과장은 “큰 대회를 준비할 때는 선수들이 모든 레인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선이지만, 지자체 지원이 운영예산의 10% 내에 그치고 있어 좋은 시간대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영·헬스반 등의 수익 사업을 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선수들의 운동량이 부족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군이 운동하는 SRC재활센터 수영장에는 현재 장애인 선수 총 13명이 운동하고 있지만, 훈련 시간은 하루 평균 두 시간을 넘지 못한다.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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