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꿈으로 여는 메달 ③ “불치병이라는 말을 듣자 울음이 왈칵 쏟아졌어요”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꿈으로 여는 메달 ③유도선수 김무영군
앞은 못 봐도 너쯤은 메친다, 이 좌절아
저는 요샛말로 ‘엄친아’였죠 4개 국어와 운동을 잘해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어느날 눈이 캄캄해졌죠 병명은 ‘시신경 위축증’…
친구 따라 유도관에 갔다가 올해 꿈나무 선수 됐어요
내년 아시안게임에 나가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예요

전남 광양에 사는 김무영(17·서울맹학교·시각장애1급)군은 ‘엄친아’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종격투기’를 배우며 몸을 단련했고, 영어·일본어·중국어를 모두 구사할 만큼 외국어에도 능숙했다. 일찌감치 ‘외교관’이란 꿈도 품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1년도 안 돼 전교 수석을 차지했다. 11월의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예고도, 징후도 없이 찾아온 시력 저하였다. “마치 가운데 검고 큰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구멍은 급속도로 커졌다. “처음에는 주먹만큼 안 보였다면, 2주 사이에 3배 정도까지 커졌다”고 한다. 황망한 마음에 인근 병원을 찾았지만, 검사 결과는 ‘원인 불명’. 앞도 막막하고 미래도 막막했다. 수업도 불가능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엎드려만 있었다. 전교 1등의 돌발 행동에 선생님도, 친구들도 의아해했다.

갑작스러운불치병으로1급시각장애인이된김무영(하얀도복입은이)군은지난8월시각장애인유도우수꿈나무로선발됐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제공
갑작스러운불치병으로1급시각장애인이된김무영(하얀도복입은이)군은지난8월시각장애인유도우수꿈나무로선발됐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제공

이듬해 4월, 김군은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정밀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시신경 위축증’이라고 했다. 김군은 대뜸 “어떻게 하면 돼요?”라고 물었다. 어떤 병인지 밝혀졌으니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의사는 말을 잇지 않았다. 김군은 “그때 순간적으로 ‘못 고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원래 멀쩡했으니 나을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5개월을 버텨왔어요. 불치병이라는 것을 안 순간 그 시간들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정말 열심히 해보려는 찰나에 왜 하필….”

이후 김군은 모든 것을 내려놨다. 어느 날은 그저 멍하니 있고, 또 어느 날은 종일 펑펑 울기도 했다. 학교는 아예 발길을 끊었다. 삶의 동기를 잃은 그에게 친구가 추천한 것이 ‘유도’였다.

“시각장애인 유도라는 것이 있다고 소개하더라고요. 잘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 친구를 따라 동네에 있는 ‘광양유도관’에 가봤어요. 그때가 처음이었죠.”

동네 체육관에서 유도를 배우던 김군은 꿈나무를 찾아 전국을 누비던 박노석 대한장애인체육회 유도 전임지도자에게 포착됐다. 박노석 지도자는 “시각장애인 유도 선수들이 너무 노령화돼서 꿈나무를 발굴해야 하는데, 장애인 유도협회에서는 찾을 길이 없었다”며 “일반인 도장에 혹시 시각장애인 친구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는데 마침 전남에서 김무영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8월 12일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이뤄진 ‘2013 장애인 꿈나무·신인선수 캠프’에서 김군은 시각장애인 유도 종목으로 선정된 4명의 선수 명단에 포함됐다.

그 사이 김군은 거주지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맹학교’로 옮겼다. “점자 등을 체계적으로 배워 다시 뭔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생긴 변화다. 현재 김군은 서울맹학교의 수업과 함께, 방과 후나 주말 등을 이용해 유도 훈련에도 매진하고 있다. 오는 11월에 예정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김군은 “유도는 투지와 근성, 승부욕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나와 잘 맞다”며 “국제대회에서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운동에 ‘올인’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일단 다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공부만 하다가 배신당한 아픔이 너무 커서, 하나만 파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요. 내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고를 목표로 할 거예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박노석 감독은 “명색이 우리나라 장애인 스포츠를 이끌어 갈 꿈나무 선수인데, 개인 도복 하나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이번에 신인 우수 선수로 선발된 이들에게는 거주 지역의 전임지도자 파견, 해외 전지훈련, 훈련용품 등의 지원이 약속됐지만, 3개월이 다 되도록 시합용 도복조차 지급되지 않고 있다. 훈련 여건도 열악하다. 주말에는 인근 선린중학교 유도부 합숙 훈련장에 가서 도움을 받고 있지만, 평소에는 서울맹학교의 조그만 실내체육관이 유일한 연습 장소다. 박노석 지도자는 “여기 유도 매트는 스펀지에 비닐을 씌운 정도에 불과해 선수들은 마루에 떨어지는 것과 똑같은 충격을 받는다”며 “일반인 유도라면, 동네 체육관도 이보다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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