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Cover Story] 꿈으로 여는 메달 ② 수영선수 이인국군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마음의 문 닫았던 소년, 이젠 매일 세상을 향해 헤엄칩니다
자폐 치료하려 시작한 수영비장애인 대회 출전은 물론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은메달 사회성·생활습관도 좋아져
“심리 불안한 자폐 선수… 맞춤형 교육과 감독 필요”

커다란 현수막이 발길을 붙들었다. ‘2013 몬트리올 장애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배영 100m 2위 이인국’. 이인국(17·안산 단원고2·사진)군은 이미 이곳의 자랑이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올림픽 수영장’. 10여 개의 레인을 뒤져 찾아낸 이군은 이마에 빈 캔을 올려놓고 배영 연습 중이었다.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초·중·고교 수영선수들이 훈련받는 이곳에서 이군은 유일한 장애인(자폐성장애 2급) 선수다. 김정임(37·안산시 수영연맹) 코치는 “체격이 좋고 승부욕, 유연성, 부력이 뛰어나다”며 “비장애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기대주”라고 했다.

지난 9월 12일, 안산 올림픽수영장에서 만난 이인국(17)군은 수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영은 개인운동이자 단체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어 자폐나 발달장애인의 정서 함양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제공
지난 9월 12일, 안산 올림픽수영장에서 만난 이인국(17)군은 수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영은 개인운동이자 단체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어 자폐나 발달장애인의 정서 함양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제공

이군은 세상과 단절된 아이였다. 돌 무렵에도 입을 떼지 못했다. 원인을 처음 안 건 일곱 살 때였다. 병원에선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군은 소풍을 가도, 운동회를 해도 혼자만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머니 배숙희(49)씨는 “행여 아이의 사회성 회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언어치료, 인지치료를 비롯해서 악기, 운동을 닥치는 대로 배우게 했다”며 “수영도 그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배씨는 아이 손을 이끌고 수영장을 찾았다.

“물을 무서워하는 증상이 특히 심했어요. 세수도 제대로 못했고, 머리도 못 감았죠. 목욕이라도 시킬라치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어요. 씻길 때마다 집은 전쟁터가 됐죠.”

처음 한 달은 수영 선생님 품에 안겨 물에 동동 떠다니기만 했다. 두 달이 지나자 아이는 물안경을 낀 채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2년째가 됐을 때, 걷는 것보다 헤엄치는 게 더 편한 아이가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경기도 대표로 뽑혀 비장애인 학생들이 겨루는 전국소년체전에 나갔다. 장애인 수영 선수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던 중3 때부터는 적수가 없었다. 당시 참가했던 전국 장애인 학생체전에서 5관왕을 차지할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올림픽 기대주가 나왔다”고 떠들어댔다. 실제로 지난 8월 ‘2013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며 1위와 0.09초 차이로 은메달을 따냈다. 내년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도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14인천장애인 아시안게임조직 위원회 제공
2014인천장애인 아시안게임조직 위원회 제공

하지만 정작 이군과 가족들의 목표는 세계대회 정상이 아니다. 배씨는 “인국이가 수영이라는 관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이군은 수영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동네 산책 한번 데리고 나오기 힘들었던 아이는 매일 수영장에 나와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배씨는 “수영은 개인 운동이자 단체 운동”이라며 “반복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면서, 숨기만 하려는 성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먹는 음식도 김치찌개밖에 없었는데 단체 생활을 하며 친구들을 보고 다른 음식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의존적인 성격, 불규칙했던 생활 습관도 개선됐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8년째 이군을 지도하고 있는 김정임 코치는 “처음 만났을 때는 말을 걸면 화를 낼 정도로 말하는 걸 싫어했는데, 계속 만나고 얘기를 건네면서 소통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며 “인국이가 하나하나 표현해 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형용 대한장애인수영연맹 상임부회장은 “연맹에 등록된 선수 600명 중에 자폐나 발달장애가 300명이 넘는다”며 “수영은 기초 종목이기 때문에 몸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집중력이나 정서 발달에도 도움을 주고, 사회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웠던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줄곧 일반인 지도자에 의해 비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받고 있다. 장애인 전문 수영코치가 없는 데다, 자폐성 장애의 특성상 자주 지도자가 바뀌는 것은 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씨는 “자폐아들은 사람과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새로운 선생님에게 적응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임 코치는 “일반 아이들에게 한 번 설명하면 될 것도 인국이에게는 같은 말을 100번 이상 해야 겨우 알아들었다”며 “그만큼 적응이 어려웠고, 서로 힘든 시간을 오래 견뎌내야 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세계선수권대회에 가보니 외국 팀은 마치 박태환 선수에게 하듯, 선수 한 명에 전문 코치가 3~4명 붙어서 움직이더라”며 “인국이의 경우, 내가 따라붙지 않으면 의사소통조차 원활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관리시스템 부재는 큰 무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열린 ‘2012 런던패럴림픽’에서 예선 1위의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한 이군이 어이없는 실격을 당했다. “제시간에 대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감독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이군을 돌보다 결승 시간을 놓쳐 발생한 일이다. 김정임 코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무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황당한 사건”이라고 했다.

배씨는 “한 달, 두 달씩 단기적으로 감독이 배치되는데 이조차 대회 때마다 계속 바뀐다”며 “대회 전에 짧은 소집과 일괄적인 훈련원 합숙도 자폐성 장애인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말했다. 자폐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장애 증상에 맞는 교육을 해줄 수 있는 지도 체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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