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Cover Story] 꿈으로 여는 메달 ①휠체어테니스 선수 임호원군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여덟살, 장애로 축구선수의 꿈은 꺾였지만… 열다섯, 지금 나는 국가대표 꿈꾸는 테니스 선수
사고로 휠체어 타게 된 뒤 운동은 못 할 줄 알았어요
많이 우울하고 힘들었는데 휠체어 테니스 배우면서
장애인 된 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었죠
유지곤 감독님 도움으로 국가대표랑 같이 받는 훈련… 올림픽 금메달도 꼭 따야죠
“운동할 때 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아… 늘 더 잘하고 싶죠”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 42개국, 6000여명의 장애인 선수가 참가하는 축제의 장이다. 2002년 부산장애인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이후 10여년 만이다. 하지만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은 그대로다. 지난해 열린 ‘런던패럴림픽’에서 영국 장애인 육상의 인기스타 조니 피콕(20) 선수가 치른 100m 결승전 경기는 630만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영국 단일 스포츠 경기 사상 최고기록이다. ‘더나은미래’는 내년에 치러지는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앞서, 향후 10년간 국내 장애인 스포츠를 이끌어 갈 미래의 ‘수퍼스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침대가 서서히 의자 모양으로 접히자, 상체 아랫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3개월 만에 시선이 닿은 곳. 하지만 소년의 엉덩이 끝에는 다리 대신 철제 보조기구가 달려 있었다. 엄마는 펑펑 울었고, 아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여덟 살 소년의 꿈도 그날 함께 날아가 버렸다.

2006년 여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임호원(15·수원 칠보중3)군은 여름방학을 맞아 경남 함양의 외갓집을 찾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임군은 여느 때처럼 밖에서 축구공을 갖고 놀았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빠뜨린 공을 주우러 뛰던 임군에게 승용차 한 대가 벼락같이 들이닥쳤다. 임군은 그 길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겨울이 될 때까지 누워만 있었다. 병원을 나올 때는 휠체어를 타야 했다.

지난 8월 1일부터 이천 장애인종합훈련원에서 합숙하고 있는 임호원군. 임군은 이번 합숙에 참여하고 있는 6명의 선수 중 가장 어리다.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제공
지난 8월 1일부터 이천 장애인종합훈련원에서 합숙하고 있는 임호원군. 임군은 이번 합숙에 참여하고 있는 6명의 선수 중 가장 어리다.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제공

“이젠 뭘 할 수 있지?”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했던 임군은 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갑자기 소리지르고, 이유 없이 화내는 날이 잦아졌다. 분을 이기지 못해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어머니 전효심(39)씨는 “상냥했던 아이가 주위 사람들을 눈치 보게 하는 아이로 변해갔다”고 했다. 우울증도 심해져 6개월간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육체에 이어 정신까지 피폐해져 갔다.

임군은 재활치료차 다니던 병원에서 장애인 스포츠를 처음 알았다. 사고 후 2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휠체어를 탄 채 병원 침대 사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임군에게 환자 한 명이 테니스 라켓을 선물하며 운동을 권했다. 임군은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엄마를 졸라 경기도 오산에 있는 ‘에이스클럽’을 찾았다. 휠체어 테니스 동호회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임군은 “휠체어를 타고 앞뒤로 움직이면서 공을 쫓고, 상대방이 없는 곳으로 쳐내는 게 너무 재밌어 보였다”고 했다. 임군은 그곳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하루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렸다. 취미에 불과했지만 생활이 달라졌다. 웃음이 많아졌고, 화내는 일은 줄었다. 전씨는 “가슴속에 맺혔던 것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임군은 “장애인이 된 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며 “내일 또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고 웃었다.

“좋아! 그렇지!”

지난 8월 27일 오후, 경기도 ‘이천 장애인 체육 종합훈련원’ 테니스코트가 시끌벅적했다. 휠체어 끄는 소리, 공 치는 소리, 정필교 코치(달성군청)의 외침까지 이리저리 뒤섞였다.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의 합숙 훈련 현장이다. 빨간 휠체어에 앉아 노란 라켓을 휘두르는 앳된 선수, 임호원군이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임군은 코트를 날랜 속도로 휘저으며 정 코치가 건네는 공을 반대편 코트로 날려보냈다. 임군은 꿈나무 육성 차원에서 훈련원에서 합숙한다. 5년 만에 국가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임군의 재능을 알아봐준 지도자와 체계적인 관리 덕분이다.

임군을 처음 만난 유지곤 스포츠토토 실업팀 감독(한국휠체어테니스협회 전무이사)은 “식당에서 탁자를 짚고 의자 사이를 뛰어넘어갈 정도로 민첩한 것이 눈에 띄었다”며 “큰 선수가 될 조짐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유 감독은 방학 때마다 임군을 프로팀 합숙 훈련에 참여시켰다.

휠체어 테니스 꿈나무 임호원군.
휠체어 테니스 꿈나무 임호원군.

투어시합도 데리고 다녔고, 경기용 휠체어 같은 용품도 후원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휠체어테니스부로 유명한 삼일공고 교장에게 임군을 추천하는 등 진학문제에도 적극 나섰다.

국가대표만이 입성할 수 있는 훈련원에서 운동하는 것도 유 감독의 배려다. 임군은 올 6월에 열린 ‘대구오픈국제휠체어테니스대회’에서 복식 우승을 차지하는 등 상반기 3개 대회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어른들과 경쟁해 이룬 결과다. 임군은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라며 “운동하는 순간만큼은 결코 힘들지 않다”고 한다. “목표는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했다.

“호원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운동부 기숙사비가 들어가기 시작해요. 해외투어 경비도 지속적으로 필요할 거예요. 몸이 계속 크고 있어 경기용 휠체어도 몸에 꼭 맞게 자주 교체해야 합니다. 현재 1년에 50일 정도만 할 수 있는 합숙훈련 일수도 더 늘릴 시점이고요.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인맥과 협회의 도움 등으로 버텨왔지만 한계가 있어요.”

유지곤 감독은 “해외 선진국들은 대회 때마다 많은 유소년 선수를 대동하는 등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지만, 우린 가능성 있는 유소년들이 방치되고 있다”며 “장애인 꿈나무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춰나가야 한다”고 했다. 휠체어테니스의 경우, 전문코치가 국내에 5명뿐이다.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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