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박란희 편집장의 선진 NGO 견학] ①영국의 과학적 모금 현황

기부도 이젠 통계와 포트폴리오, 전략의 승부
자선단체 16만개 경쟁 치열 정부 지원금 줄어들면서 통계와 연구자료 바탕으로 모금별…
연 수입 6400억원 옥스팜 후원 중단 비율 줄이기 주력
비영리 전문 컨설팅회사는 비용 대비 모금액 가장 높은 유산 기부 주목, 연구 진행

미상_그래픽_기부_영국국기_2013

영국의 자선단체 수는 16만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비영리민간단체 1만889개(안행부 등록)의 16배다. 자선단체의 역사도 깊다. 영국 옥스팜은 70년 역사를, 세이브더칠드런은 94년 역사를 지닌다. 옥스팜(Oxfam), 캔서리서치UK(Cancer Research UK), 브리티시 하트 파운데이션(British Heart Foundation) 등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채리티숍이 영국 전역에 20만개로, 1년에 모으는 돈은 130억파운드(약 22조원)다. 영국 자선단체는 어떤 생태계로 움직이고 있을까. 기부와 나눔이 일상화된 나라 영국을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9월 말 한국NPO공동회의가 진행한 6박8일의 ‘2013 영국NPO해외연수:모금마케팅 및 국제개발협력’ 연수를 동행 취재했다. 이번 연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24개 국내 비영리단체들이 함께했다. 편집자 주


영국 옥스팜(Oxfam)의 내부 전경. 외부 인사들의 잦은 사무실 투어에 익숙한지, 직원들은 우리에게 윙크를 하거나 재밌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무실 건물은 오픈된 대신 곳곳에 미팅룸을 수십 개 뒀다. /여문환 JA Korea 사무국장 제공
영국 옥스팜(Oxfam)의 내부 전경. 외부 인사들의 잦은 사무실 투어에 익숙한지, 직원들은 우리에게 윙크를 하거나 재밌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무실 건물은 오픈된 대신 곳곳에 미팅룸을 수십 개 뒀다. /여문환 JA Korea 사무국장 제공

지난달 25일, 영국의 대표적인 NGO인 옥스팜 영국 본부 사무실에 들어서자 일행들 사이에선 “와아~”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렸다. 700명이 근무하는 3층짜리 건물은 외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통유리와 햇살이 내리쬐는 아늑한 건물, ‘이곳이 비영리단체 사무실이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1942년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공격에서 탈출한 그리스인을 돕기 위해 시작된 옥스팜. 현재 옥스팜 영국의 수입은 3억6790만파운드(약 6400억원)이다. 후원자 수는 50만명으로, 옥스팜에서 운영하는 채리티숍은 700개가 넘는다. 채리티숍 수익금은 전체 수입의 22%, 개인 기부와 유산 기부 등이 25%를 차지한다(나머지 44%는 정부 및 자선재단 보조금). 참고로, 우리나라 비영리단체 중 모금액 1위인 월드비전이 지난해 1579억원을 모금했고, 후원자 수는 45만명에 달한다.

후원자 발굴을 담당하는 사라 프라이크 매니저는 “아이들이 고통받거나 배고파하는 모습을 통해 모금하는 것은 옥스팜의 가치와 상충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홍보 영상을 쓰지 않는다”며 “여성 후원자가 직접 옥스팜의 돈이 쓰이고 있는 해외 현장을 찾아 이를 보는 걸 광고 영상으로 쓴다”고 했다.

영국에선 길거리를 가다 보면 몇 분마다 한 번씩 자선단체의 후원 요청을 받는다. 일명 ‘거리모금’이다. 옥스팜은 올해 옥스팜 버킷(물통)을 통해 거리모금을 업그레이드했다. 5파운드를 후원하면 물통까지 아프리카에 보내주고, 2파운드를 후원하면 사업비만 보내준다는 것이다. 사라 매니저는 “거리모금이나 집집마다 방문하는 모금 형태는 새로운 후원자를 발굴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1년 내에 상당수가 후원을 중단하는 단점이 있다”며 “한번 발굴한 후원자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물통 모금을 시도했는데 지금까지 후원 중단 비율이 매우 낮아졌다”고 했다.

◇통계·연구 조사 통한 과학적 모금 시대 열려

16만개나 되는 자선단체들이 존재하는 영국은 우리보다 훨씬 경쟁이 치열했다. 자선단체를 위한 기부를 촉진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재단인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 연구조사에 따르면, ‘영국 자선센터의 6분의 1이 올해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얘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데이비드 홉킨스 카프 후원·보조금 개발 담당 선임매니저는 “정부의 지원금이 줄어들면서, 올해 많은 자선단체가 문을 닫거나 합병했다”며 “380억파운드(66조원)에 달하는 자선단체 수입 중 자발적인 기부나 정부·재단보조금이 줄어든 대신 자체 수익 사업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영국의 자선단체들은 통계자료와 연구조사를 통한 ‘과학적인 모금의 시대’를 열고 있었다. 모금의 ROI(투자 대비 수익)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한번 후원자가 된 이들을 붙잡아 후원 중단을 막고 ‘열렬한 팬’으로 만들지, 또 유산기부·고액기부·기업기부·개인소액기부 등 다양한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모금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신의 단체에 맞게 활용하는 전략을 짜고 있었다.

벤 아이어 카프 개인 고액기부 담당 매니저는 “주요 부동산을 제외한 자산이 100만파운드(17억원)가 넘는 부자들이 영국에는 30만명가량 되는데, 이 고액기부자들이 1년 동안 기부한 총액이 93억파운드(16조원)에 달한다”며 이들의 10가지 트렌드를 분석했다. ▲15년 전만 해도 유산 상속으로 부자가 된 이들이 75%였지만, 최근엔 자수성가한 부자가 더 많으며 ▲고액 기부자들의 나이가 점점 젊어지고 있으며 ▲사후에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기부액이 어떻게 쓰이는지 지켜보는 걸 즐기며 ▲사회적 투자나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자선단체에 투자하는 형태) 등 혁신적인 방식의 기부를 선호한다는 내용이다.

◇단체별 펀드레이징 포트폴리오를 구성

“여러분 기억하세요. 기부자들은 절대 기부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기부를 요청하는 펀드레이저(fundraiser)가 피곤해 할 뿐입니다. 기부자들은 소비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쓰던 소비자들이 삼성의 갤럭시를 소비하듯이 말입니다.”

지난 9월 24일, 비영리 전문 컨설팅회사인 엔에프피시너지(nfpSynergy) 조 색스턴 대표의 말에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에프피시너지는 옥스팜, 유니세프 영국, 세이브더칠드런 등 비영리단체를 위한 연구조사, 모금,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조 색스턴 대표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영국 설문조사에서 펀드레이징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가로, 세로축으로 그려진 ‘펀드레이징 포트폴리오’를 우리 일행에게 보여줬다. 시간과 모금 비용 투입 대비 모금액이 그려진 도표였다. 색스턴 대표는 “채리티숍은 운영비가 매우 많이 들어 비용 투입 대비 모금액이 가장 낮은 반면, 유산 기부는 시간과 비용 대비 모금액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특히 영국에선 최근 유산 기부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조 색스턴 대표는 “소규모 단체의 경우 기업이나 정부기금 등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단체를 지지하는 고액 기부자층을 넓혀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예전에 자선단체와 후원자 관계는 ‘기관’ 대 ‘개인’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의사결정이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이뤄지거든요. 사람들끼리 얘기할 수 있는 거리를 주고, 전염성 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져, 결국 이들을 우리 단체의 강력한 후원자로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옥스팜, 존 루카스 매니저)

영국의 고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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