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내 편이 있구나” 진심으로 느낄 때 아이들은 변하죠

비행 청소년 개선 사례
서울 중랑청소년휴카페
가족처럼 밥 먹고 대화하며 연극 가르쳤더니 방황 멈춰
세상을 품은 아이들
위기 청소년 공동체에서 밴드 음악하면서 본드 끊어
트러스트무용단
커뮤니티 댄스 배운 아이들 상처 치유하고 무용가 꿈도

지난 9월 30일 저녁,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망우3치안센터’의 2층 작은 방이 시끌벅적해졌다. ‘중랑청소년휴(休)카페’ 친구들의 수다 소리다. 이상인 중랑경찰서 청소년계 경위(학교전담경찰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라. 밥 같이 먹게”라는 말로 비행 청소년들과 소모임을 만든 게 이제는 매주 월요일 저녁 정기 모임으로 발전했다. 단순히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불과했지만, 지역 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이 붙으며 작은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갖춰갔다. 작년 3월부터 현재까지 77회를 진행했으며, 거쳐 간 인원은 총 920명 정도다. 지역 후원회는 운영비와 식비 등을 지원한다. 이 경위는 “대부분 내 지인이나 친구들”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 82명은 단순 ‘말 상대’부터 노래 강사, 극단까지 다양하다. 현재는 지역의 예술 사회적기업과 연결돼 11월 공연할 연극을 준비 중이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정순길(가명·16)군은 “비누 만들기를 해서 돈도 벌고, 아저씨가 선생님들을 연결해줘서 원하는 아이들은 춤, 노래, 연기 같은 것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상인 경위는 “시설과 전문가가 널려 있어도, 거리의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교감하면서 관계를 쌓아나가면 아이들 스스로 경찰서에 놀러 오는 상황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비행에 빠졌던 아이들에게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천천히 신뢰 쌓으면서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상을 품은 아이들 제공
전문가들은“비행에 빠졌던 아이들에게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천천히 신뢰 쌓으면서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상을 품은 아이들 제공

◇아이들을 제대로 알면, 그들이 원하는 것도 보인다

“본드를 끊은 이유요? 처음 공연을 했을 때 이게 본드보다 몇 배는 좋다는 걸 알았거든요.”

인천·부천 지역은 전국 본드 사범의 40% 정도가 몰려 있는 본드 우범지대다. 전수민(가명·18)군은 부천 지역에서도 소문난 ‘본드쟁이’였다. 전군의 변화는 위기청소년 공동체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품에서 시작됐다. 전군은 “내가 했던 모든 대화는 ‘강요’와 ‘교육’이었지만, (명성진) 목사님과는 사람 대 사람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명성진 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는 “신뢰를 쌓지 못하면 아이들의 니즈나 동기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며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면 원하는 게 보이고, 이를 연결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인다”고 했다. 거의 대표의 재량만으로 꾸려가던 ‘세상을 품은 아이들’은 2년 전부터 지역사회의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위기 청소년 안전망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명성진 대표는 “CYS넷 같은 지역사회 안전망은 필요한 자원을 찾는 데 효과적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있었다”며 “아이들에게 중심이 돼주는 골격이 생기고 나니 외부의 자원들도 더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명 대표는 아이들에게 운동이 필요하면 지역사회의 스포츠클럽을 찾아내 지원받고, 여행을 준비할 때도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등 외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상처에 가려진 재능과 열정에 주목하라

오는 10월 22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는 특별한 무대가 열린다. ㈔트러스트무용단이 준비하는 커뮤니티 댄스 ‘투게더투게더’가 바로 그것.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 거주하는 청소년 8명이 이번 무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 1995년 창단된 ㈔트러스트무용단은 일반인은 물론, 장애인, 소외 계층 등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등, 춤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도모하고 있다. 김형희 ㈔트러스트무용단 대표는 “3년 전부터 청소년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무용 교육, 공연, 워크숍 등을 해왔다”며 “춤으로 대학에 진학해 전문 무용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송영림 ㈔트러스트무용단 실장은 “아이들이 가정 문제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처를 예술로 풀면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다”며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 자신의 능력을 잘 몰랐던 친구가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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