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문화의 다양성 가르치는 필리핀 레아 선생님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 아닌 소통의 시작점 되도록 설득할 것”
메콩강 인접 6개국의 사회문제… 문화 예술 통해 개선 목표…
예술가 초청, 3주간 역량 교육… 문제 해결 위한 네트워크 조직·공연…

미상_그래픽_문화_다양성_2010“우리의 다양성을 축하하기로 해요.”

26개국에서 모인 35명의 서로 다른 종교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레아 에스팔라르도(41)씨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3일까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주관으로 열린 교원 연수 과정에서다. 유네스코 평화센터에서 이뤄진 이 강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역사 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평화적인 대화를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열렸다.

레아씨는 메콩강 인접 6개 국가의 문화 예술가들을 육성하는 ‘메콩 프로젝트’의 총감독이면서 얼마 전까지는 록펠러재단 동남아시아 사무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녀가 요즘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메콩 프로젝트는 메콩강에 인접한 6개의 국가(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그리고 베트남)의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문화 예술을 이용해 개선시켜보자는 것이다.

“2002년부터 메콩강 유역의 국가들이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의해 경제적으로 한 권역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급속한 개발이 벌어지고, 이 개발 속에서 소수민족 간의 갈등, 정치 난민과 이주 노동자의 발생, 성의 상업화나 인신 매매 같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레아씨의 강의는 언어의 다름과 국경을 초월해 몸짓과 마음으로 전달된다.
레아씨의 강의는 언어의 다름과 국경을 초월해 몸짓과 마음으로 전달된다.

레아씨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6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녀는 1년에 한 번씩 6개 국가에서 23~28명 정도의 프로 예술가들을 초청해 3주간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술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의 메시지를 공연이나 작품과 결합시키는 방법, 이 작품을 이용해 지역사회 내의 토론을 조직하는 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파장을 만들어내는 법 등을 포괄적으로 교육하는 일종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엔 후천성면역결핍증(HIV)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품을 구상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이 자리에 참여했던 각국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지역사회에 맞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냈죠.”

미얀마의 예술가는 그림자 인형극을, 베트남의 예술가는 전통 오페라를 그리고 캄보디아의 예술가는 서커스를 기획했다. “지역사회마다 서로 다른 문제 해결의 방법들이 있는, 그게 바로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배출된 예술가들이 6년간 1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지금 자신의 지역에서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공연을 만들고 있다. 록펠러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시작되었던 메콩 프로젝트는 이제 국제적인 NGO인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본부까지 나서서 힘을 보태고 있다.

“18살부터 시작한 연극이 지금까지 저를 채워 온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해 그녀는 ‘트로이의 여인들(Trojan Women)’이라는 작품에서 코러스를 맡았다. 혹시 대사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레아씨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대신 그녀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던 느낌은 확실히 기억해냈다. “제 자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극이 내 안에 있는 강함을 끌어내고 있었죠.” 첫 무대를 경험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무대를 경험하면서 그녀의 마음속엔 확신이 싹텄다. “연극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게 그 당시 저의 믿음이었습니다.”

색색의 털실을 통해 마음을 이어주는 끈을 표현하고 있다.
색색의 털실을 통해 마음을 이어주는 끈을 표현하고 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레아씨는 연극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제들을 만났다. 메콩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필리핀의 여성보호센터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며 성폭력 피해 아동과 피해 여성 그리고 이들의 보호자들을 위한 연극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것은 의학적이고 전문적인 치료는 아니었다. 다만 그런 프로그램의 과정에서 “대본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에 쓰인 대사를 연기하는 듯한” 체험을 했고, 이를 통해 “일상적인 말로는 좀처럼 표현되지 않는 경험과 느낌들이 연극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표현되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아씨는 이를 바탕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던 이들을 연극적으로 치유하는 과정의 모듈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예술에 대한 관점도 생겼다. “예술은 자기 내면의 인간애를 만나게 합니다.”

‘연극의 힘’ 덕분에 암울했던 마르코스 독재와 빈곤, 여성 학대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는 레아씨. 그녀는 이제 “서로 다른 문화가 전쟁과 충돌의 시발점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큰 숙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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