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12가지 핵심과제] ⑥ 환경… 환경 NGO 30년_회원 10만명 시대 만들자

전문화되고 다양해진 환경 NGO… 국민 공감 하는 대안 제시를
공해문제연구소 시초 낙동강 페놀사건 계기로 환경 NGO 대거 등장
건강한 먹을거리 지향 생협운동 등에 비해 환경 NGO 회원수는 정체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 발굴 앞으로 경쟁력 키워야

미상_그래픽_환경NGO_새싹_2012올해는 우리나라에서 환경 NGO가 탄생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설립된 것이 그 시초다. 지난 5월 30~3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한국 환경운동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다가올 30년을 고민하는 환경 NGO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해라도 좋으니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 1982년 5월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서울 혜화동로터리에 민간환경단체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열 당시, 많은 이가 그에게 한 말이다. 환경에 대한 개념은커녕 ‘공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초창기 중랑천·안양천 등 도시와 공단지역의 공해실태를 조사했던 최 대표는 “당시 중랑천에 가보면 물이 단팥죽 끓듯이 부글부글 끓었다”며 “오염된 하천물로 밥을 하면 화공약품 냄새가 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이 연구소는 1985년 ‘온산병 사태’를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알렸다. 중금속 배출공장들이 들어선 울산 온산읍 일대 주민들이 집단괴질에 걸리고, 뼈마디가 쑤시는 병을 앓는 것을 조사했고, 이것이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정부는 결국 집단이주 계획을 세워 주민 3만명을 이주시켜야 했다.

1988년_1982년 최초의 환경 NGO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 이어, 1988년 공해추방을 표방한 단체 3곳이 함께 모여 만든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창립총회. /환경운동연합 제공
1988년_1982년 최초의 환경 NGO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 이어, 1988년 공해추방을 표방한 단체 3곳이 함께 모여 만든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창립총회. /환경운동연합 제공

◇’공해’에서 ‘환경’으로, 이젠 ‘에너지·기후변화’ 문제로

국내에 환경 NGO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환경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을 촉발한 사건은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이다. 1991년 낙동강 유역에 위치한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흘러나왔다. ‘페놀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구토·설사를 하고, 임신부들은 인공유산을 할 정도로 공포분위가 조성됐다. 제품 불매운동, OB맥주 버리기 퍼포먼스 등이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경단체도 대거 생겨났는데, 현재 ‘환경운동 빅3단체’로 불리는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환경정의 등이 90년대 초·중반에 만들어졌다.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1990년대가 공해 피해자 중심이었다면, 1980년대는 물·공기·쓰레기·원자력 등 환경문제가 전국적인 정치·사회적 이슈가 됐다”며 “2000년대엔 먹거리 안전성과 자연생태계 보존, 기후변화와 지구환경 등으로 전문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대 환경 NGO는 여성환경연대, 에너지전환, 환경재단,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으로 분야와 활동형태도 다양해졌다. 문화·환경교육·생활방식 개선 등을 통해 환경인식을 높이거나, 에너지와 기후변화 등 범지구적인 환경문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NGO의 형태도 연구소와 재단, 운동단체까지 분화했다. 현재 국내의 환경 NGO는 500여개에 이른다.

1993년_8개의 민간환경단체가 통합된 환경운동연합 창립총회 모습.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함께사는길 제공
1993년_8개의 민간환경단체가 통합된 환경운동연합 창립총회 모습.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함께사는길 제공
1998년_환경단체들은 1998년 동강댐 반대운동을 벌여, 2000년 6월 5일 정부의 동강댐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다. /함께사는길 제공
1998년_환경단체들은 1998년 동강댐 반대운동을 벌여, 2000년 6월 5일 정부의 동강댐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다. /함께사는길 제공

◇한국 환경 NGO의 현재와 고민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환경 NGO들은 고민에 빠졌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미국에서도 환경운동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는데, 환경이 건강한 먹거리를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운동 등 다른 사회운동과 분리·고립되고 있다”며 “또 언젠가부터 환경운동에는 늘 반대만 일삼는 운동이라는 낙인이 찍혀있는데,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려면 ‘희망’과 ‘대안’을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환경 NGO 회원수는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데 반해, 1986년 시작한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은 점점 회원수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열 대표는 “‘내가 힘을 실어주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회원이 늘고,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으면 회원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1970년대 후반 프랑스의 핵실험을 반대하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우리가 힘을 보태야 한다’며 회원이 급증했다. 우리도 낙동강 페놀사건 당시 정부나 기업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자 국민들이 분노했고, 환경단체가 있어야 안전한 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회원이 늘어났다. 동강댐 백지화 운동 때 33일간 밤샘을 했는데, 사람들이 직접 탕수육도 사 들고 오고 돈도 갖고 오는 등 호응이 대단했다.”

“환경 NGO들의 경쟁자가 생겼다”는 이유도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면 됐지만, 이제는 모두 ‘친환경’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박미경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그동안 지적해온 환경문제들은 제도권에서 다 하고 있고, 국민들은 ‘마을가꾸기’ 등을 통해 환경운동을 하는데, 이런 안팎의 경쟁에서 밀린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2002년_2000년대 이후 환경단체들은 문화와 여성, 에너지·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2002년 환경재단 창립 모습. /환경재단 제공
2002년_2000년대 이후 환경단체들은 문화와 여성, 에너지·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2002년 환경재단 창립 모습. /환경재단 제공
2011년_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국내에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기고 5년째 연장 가동 중인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함께사는길 제공
2011년_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국내에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기고 5년째 연장 가동 중인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함께사는길 제공

◇환경 NGO도 업그레이드 필요

“몇년 전 미국 자연보호연맹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예산만 20억달러(약 2조원)였다. 우리로 치면 동강을 지키기 위해 동강생태계에 관심 있는 인물 30명을 초청해서 관광시킨 다음, ‘동강이 없어질 위기이니 이를 막기 위해 땅을 사야 한다’고 편지를 쓴다. 반달곰 모양을 디자인한 목걸이를 팔아서 500달러, 3000달러씩 모금해 당시 남한면적의 40% 땅을 샀다.”(최열 대표)

자연보호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영국에서 시작된 환경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는 25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고, 프랑스의 핵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197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창설된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현재 40개 지국에 28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 ‘분트’의 회원 수는 50만명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도 아직 10만명 회원 규모를 지닌 환경 NGO가 없다. 국내의 환경 NGO들도 미래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이나 와튼 경영대학원에서는 그 학교 졸업생들이 수입이 적은 NGO에서 일하면 일반기업 연봉과 차액을 교우회에서 대주기도 하는데, 외부인력을 활용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NGO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애 녹색교육센터 이사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하면서, 교육이 거리에서 머리띠 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젊은 층이 환경 NGO에서 일할 꿈을 꾸도록 NGO의 복지문제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병옥 소장은 “시장경제는 사회의 일부분이고, 사회는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환경의 수용능력을 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재용 환경부 환경정책실장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이 이산화탄소 감축을 하지 않으면 세금이 부과될 수밖에 없는 등 환경문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신재생에너지도 환경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되듯이 개발을 무조건 막기보다 적절한 수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재단은 이번 포럼에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상’ 수상자 8명을 초청, 함께 ‘그린아시아포럼’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최열 대표는 “한국이 50년 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환경이 오염되면서, 환경운동도 압축성장했다”며 “이제 그 힘을 갖고 아시아 지역의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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