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반값 생리대로 여성 위생 인식을 바꾸는 소셜벤처 ‘29days’

대학가가 ‘반값 생리대’로 들썩이고 있다. 동덕여대, 서울여대, 조선대 등 몇몇 대학교에서는 최근 총학생회 주도로 29days 생리대를 공동구매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오는 2학기에 공동구매가 예정돼있는 대학교도 4~5군데에 달한다. 반값 생리대에 열광한 건 대학뿐만 아니다. 지난해 연말 이뤄진 와디즈의 크라우드펀딩에서, 이 생리대는 펀딩 개설 10시간 만에 목표금액(200만원) 100%를 달성했고, 최종적으로 568%를 달성해 1136만8500만원을 펀딩받았다. 후원자들 덕분에 무려 2304팩의 생리대가 경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됐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반값 생리대를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동덕여대에서 진행된 29days 반값 생리대 행사 현수막 ⓒ29days

 

◇여성용품을 만드는 남성 CEO

 

‘대한민국 1호 반값생리대’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내건 ‘29days 생리대’를 만든 곳은 소셜벤처 (주)29일이다. 회사를 이끄는 이들은 젊은 두 남자다. 홍도겸(CEO), 심재윤(COO) 대표는 사회적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인 ‘언더독스’를 통해 만나서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왜 하필 여성의 생리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물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제약회사·전시기획사 등에서 근무했던 홍도겸 대표는 “소비자로서 여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왜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생리대 가격이 비쌀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셜리퍼블릭 창립멤버이자 ‘우리들의 작은 전시회’ 대표를 맡기도 했던 심 대표는 사회문제를 조사하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생리대 문제를 한꺼번에 듣게 됐다고 한다.

“처음 5분 정도는 민망해하던 여성들이 한 시간 넘게 생리대에 대한 문제점을 수십 가지씩 쏟아내더라고요. 가장 근본적인 생리대의 가격구조를 들여다봐야겠더라고요.”(심재윤 대표)

29days의 홍도겸(좌), 심재윤(우) 대표가 반값생리대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유민

생리대 한 개당 가격은 미국과 일본이 181원인데 반해, 한국은 331원으로 2배 가량 높았다. 이뿐 아니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소비자 물가지수가 10.6% 오르는 동안, 생리대 가격은 25.6%나 올랐다. 그 이유는 바로, 복잡한 유통단계와 과다한 마케팅비용 때문에 생산원가에 비해 소비자 가격이 부풀려져 있는 것이었다.

홍 대표는 “여성들의 생리대 구입비용이 월 2~3만원인데, 1년이면 30만 원 이상이 든다”며 “특히 취약 계층의 ‘깔창 생리대’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합리적인 가격과 믿을만한 품질을 동시에 가진 생리대가 필요하다는 미션을 확고히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깔창 생리대’ 사건이란,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아 신발 깔창을 사용했다는 사건을 말한다.)

 

◇공장 찾느라 1설문조사 참여 인원만 2000여명

 

이들은 회사 이름을 여성의 생리주기를 의미하는 ‘29일’로 지었다. 이제 남은 도전은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좋은 생리대를 제작하는 것. 하지만 남성 대표 2명이 착한 생리대를 만드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주변 지인·가족·여자 친구의 도움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들은 거리로 나갔다. 최종 제품 출시까지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한 총 인원이 2000여명에 달한다.

“생리대는 의약외품이거든요. 여성의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니, 매우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다뤄야 합니다. 지방에 있는 이름 없는 공장에서 생산을 할 수는 없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해외 공장에서 생산할 수도 없었어요. 불량품이 생기거나, 품질이 나쁠 때 피드백을 바로바로 할 수가 없으니까요. 가격대를 맞추면서, 근거리에서 품질 관리를 할 수 있는 공장을 찾느라 1년이 걸렸어요.”(홍도겸 대표)

동덕여대에서 진행된 29days 반값 생리대 행사 모습 ⓒ29days

패키지 디자인 또한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다.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구매하면, 알바생들이 항상 검은 봉지에 싸주는 게 매너처럼 여겨지는 게 당연한 문화다. 두 CEO는 이 같은 관행에 의문을 가졌다. ‘왜 꼭 그래야 하나. 생리대 제품 포장은 왜 꼭 생리대처럼 보여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리대 그림만 없으면, 이게 화장품인지 생리대인지 남자들은 잘 모르거든요. 생리대를 사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요. 겉포장에 생리대 정보를 조금만 넣은 채 여성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바꿔보려고 시도했어요.”(심재윤 대표)

그 결과, ‘29days 생리대’는 화이트 컬러에 초록색 이파리로 디자인을 해 기존 생리대 포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가격 문제 개선.. 시중제품의 딱 반값

 

물론 ‘29days 생리대’가 가장 집중한 것은 가격이었다. 이미 국내 기업의 생리대 가격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저소득층은 물론 막 성인이 된 대학생들에게도 생리대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깔창 생리대’ 이슈 덕분에, 원플러스원(1+1) 생리대 후원·기부 형태는 이미 많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격 구조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개선하면 ‘반값 생리대’가 나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유통과정을 단순화했어요. 중국·동남아 등의 해외 생산은 생리대 단가를 가장 많이 낮출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저렴한 단가로 근거리에서 관리할 수 있는 생산업체를 찾았습니다. 마케팅 비용을 줄인 점도 가격 인하에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는 생리대 홍보를 전혀 하지 않는 대신 크라우드펀딩을 개설했어요.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이 나오면, ‘입소문 마케팅’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홍도겸 대표)

이같은 노력 끝에 이들은 울트라슬림 제품 1팩(16개입)당 2500원이라는 가격을 제품가로 내세울 수 있었다. 5000~6800원까지 하는 타사 생리대의 절반 가격이다.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마케팅 비용 없이 수많은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위생 문제문화적 인식

 

올 하반기에는 ‘청결 티슈 결합형 생리대’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좁은 공공 화장실에서 생리대 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공간적으로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청결 티슈 결합형 생리대는 낱개 포장지에 청결 티슈가 결합된 형태다. 생리대 교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청결 티슈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기부를 통한 문화 인식 개선도 놓치지 않았다. 국내외 취약계층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소비자가 한 팩을 구입하면 2~3피스를 29days가 대신 기부해 주는 형태다. 오는 10월을 목표로 홈페이지 리뉴얼도 준비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판매량·기부량을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홍도겸·심재윤 대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여성 위생 문화 모습이다. 29days는 그런 인식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Trigger(방아쇠)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희는 단지 방아쇠일 뿐이고, 사회 구성원들 그리고 결국엔 여성분들이 바꿔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저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게 29days의 목표입니다.”(심재윤)

 

이유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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