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흠집 있고 못생겨서 버려지던 시대는 갔다!…소비자 만날 기회 느는 ‘비규격품’ 농산물

“가정용 복숭아 시중가 30%에 판매합니다.”

복숭아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최근 들어 온라인 농산물 장터와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가정용’ 복숭아를 판매한다는 게시글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 ‘가정용’ 복숭아는 흠집이 있거나 색이나 모양이 고르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져 정상 유통이 불가능한 ‘비규격품’ 복숭아를 뜻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국내 비규격품 농산물은 전체 물량의 10~20% 수준. 복숭아 100알을 수확하면 이 중 10~20알은 출하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aT관계자는 “비규격품 농산물은 맛이나 영양 측면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들에게 ‘불량품’으로 인식돼 폐기되거나 헐값에 판매되는 등 유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최근 이 같은 비규격품 농산물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대형 할인점, 스타트업 등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탐앤탐스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비규격품 딸기 유통활성화 업무 협약’을 맺어 농가로부터 비규격품 딸기를 공급받고 있다. 사진은 비규격품 딸기로 만든 탐앤탐스의 생딸기 음료. ⓒ탐앤탐스

마트는 판촉전 열고 스타트업은 가공식품 개발

지난 1월 aT는 국내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 탐앤탐스와 ‘비규격품 딸기 유통활성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그동안 비규격품 딸기를 규격품 가격의 20% 수준인 1kg당 2000원에 팔아야 했던 딸기 농가들은 탐앤탐스에 1kg당 3000원에 팔 수 있게 됐다. 농가는 비규격품의 판로 걱정을 더는 동시에 수입도 1.5배 늘고, 탐앤탐스는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딸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비규격품 딸기 유통에 이어 aT는 여름 대표 과일 수박의 비규격품 유통 판로 개척에도 힘쓰고 있다. aT 관계자는 “수박 농가에 안정적으로 비규격품을 납품할 업체를 중개해주는 것과 더불어 포장재·홍보물 제작을 지원하거나 거래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등 비규격품 농산물 유통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할인점과 슈퍼마켓, 편의점 등 일상에서 비규격품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늘고 있다. 농협하나로마트는 2016년 우박 피해를 당한 사과를 판매하는 ‘보조개 과일 특별 판촉전’을 시작으로 매년 비규격품 농산물 판촉전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속형 소비자를 겨냥해 다양한 비규격품 농산물 판촉 행사를 준비 중이다. GS슈퍼마켓과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지난해 가을 비규격품 사과에 핼러윈 포장을 입힌 ‘핼러윈 착한 사과’를 선보였고, 롯데마트는 ‘폭염과 가뭄 피해 과일 250톤 특별 기획전’을 진행했다.

국내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가 냉해를 입거나 멍들고 까진 양파를 가공해 만든 ‘못생긴 양파크림 수프’. ⓒ지구인컴퍼니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신선한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파머스페이스’는 농가와 식품 가공업체를 연결해주는 F2B(Farm to Business) 서비스 ‘도와줘’를 운영하고 있다. 가공업체가 파머스페이스 홈페이지의 ‘도와줘’ 플랫폼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과 용도를 입력하면 파머스페이스는 48시간 안에 가장 적절한 농가를 매칭해준다.

‘지구인컴퍼니’ 는 전문 셰프들과 손잡고 비규격품 농산물을 재료로 한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해 비규격품 농산물의 가치를 높였다. 양파 수프, 사과 피클, 귤 스프레드 등이 대표 제품이다. 지난해 지구인컴퍼니와 거래하는 농가 12곳 모두 농산물 재고량 ‘0’을 기록했다. 지구인컴퍼니는 더 많은 비규격품 농산물을 구해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거래 농가를 늘리고 있다.

네덜란드의 레스토랑 ‘인스톡’은 버려질 뻔한 농산물을 활용해 매일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사진은 인스톡이 선보인 구운 채소 요리. ⓒ인스톡

높은 가성비 덕에 ‘구매 쟁탈전’ 벌어지기도

해외에서도 비규격품 농산물 유통 활성화를 위한 획기적인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임퍼펙트 프로듀스(Imperfect Produce)’는 비규격품 농산물 꾸러미 정기 배송 서비스를 운영한다. 소비자는 배송 주기, 원하는 농산물 꾸러미 구성 등을 온라인으로 등록하면 된다. 예컨대 격주로 채소와 과일이 결합한 꾸러미를 받겠다고 신청하면 2주에 한 번씩 매번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배합된 꾸러미가 집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레스토랑 ‘인스톡(Instock)’은 버려질 뻔한 음식물을 재료로 근사한 한 끼를 만든다. 매일 아침 대형 유통체인점 ‘알버트하인(Albert Heijn)’으로부터 전날 만든 빵과 판매되지 않은 농산물을 공급받는다. 날마다 들어오는 물품이 다르기 때문에 인스톡의 요리사들은 들어오는 재료에 맞춰 다양한 창작 요리를 선보인다. 지난 5년 동안 인스톡이 폐기 위기에서 구해낸 농산물 양은 약 710톤에 이른다.

옥션, 지마켓 등 온라인 직거래 쇼핑몰이나 ‘맘 카페’ 등 커뮤니티에서도 비규격품 농산물 거래가 늘고 있다. 아예 비규격품 농산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쇼핑몰도 여럿 생겼다. 저렴한 맛에 시험 삼아 비규격품 농산물을 구매해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최근 비규격품 농산물 전용 쇼핑몰에서 가정용 사과 5kg을 구매한 30대 주부 A씨는 “상태가 많이 나쁘면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품질이 좋아서 매일 아침 한 알씩 깎아 먹고 있다”며 “가격, 품질 모두 만족스러워 앞으로도 종종 구매할 생각”이라고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구매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17일 회원 44만명을 거느린 농산물 직거래 카페 ‘농라’에 가정용 복숭아 12상자를 시중가의 절반 수준에 선착순 한정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주문 요청 댓글 100여개가 달리며 1분 만에 매진됐다.

 

[이예진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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