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이대로 가다간 발디딜 곳조차 없어질 겁니다”

사진작가 이대성씨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카메라에 담아
“미래의 어느 날 자연도, 그 안의 문화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듯”

지구온난화로 25년 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도 서부 벵골주 해변의 작은 섬 '고라마'의 모습. 작품명 . /ⓒDaesung lee
지구온난화로 25년 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도 서부 벵골주 해변의 작은 섬 ‘고라마’의 모습. 작품명 <사라져 가는섬의 해변에서>. /ⓒDaesung lee

‘지금의 자연환경도 언젠가는 박물관 유물로 전락하지 않을까.’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사막이 되어가는 푸른 초원, 말라가는 강, 높아진 해수면에 잠겨가는 섬…. 사라져가는 것들이 사진에 담겼다. 제목은 ‘미래의 고고학(Futuristic Archaeology)’. 사진작가 이대성(40·작은 사진)씨는 지난 4월 24일, 이 사진으로 ‘2015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개념 사진(conceptual)’ 부문에서 수상했다. 2007년 시작된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진 대회로, 이 대회에서 전문가 부문을 수상한 한국인은 그가 처음이다.

그가 이런 사진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파리에 박물관이 참 많은데, 보면 볼수록 아이러니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물관이라는 게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유물들을 보존하는 곳이잖아요. 문화는 이미 파괴되고 사라졌지만 유물들만 화석처럼 남아서 ‘한때는 이런 시대도 있었다’ 보여주는 거예요. 사실은 그 문화가 그 사회 내에서 잘 보존되는 게 가장 좋았을 텐데, 문화를 파괴한 식민지 국가들에서 전시·보관되고 있다는 게 참 모순된 느낌이었죠.”

미래의 어느 날, 오늘날을 되돌아보면 어떤 작품들이 전시될까. 그의 눈에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들어왔다. “이대로 가다간 자연도, 그 안의 문화도 언젠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운명이겠더군요. 특히 몽골의 유목 문화는 이런 운명이 예견되어 있는 셈이고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3년 가을, 그는 몽골로 날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진행 중인 곳, 남한의 7배가 넘는 땅에서 지난 몇십년에 걸쳐 3000여개의 호수, 강, 하천이 메말랐다. 조언을 구하고 작업을 도와줄 현지 비영리단체를 찾던 와중에 수십년째 몽골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해 힘써온 비영리단체 ‘푸른아시아’와도 연이 닿았다. “사진으로 이런 작업을 하려고 한다며 도와달라고 부탁드리고, 현지 지부 직원들을 많이 괴롭혔어요(웃음). 현장에서 목격한 지난 10여년간의 기후변화를 들으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더라고요. 긴 호흡으로 잘 담아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 '에르덴' 지역에서 이대성 작가가 촬영한 작품 . /ⓒDaesung lee/Courtesy of Sipapress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 ‘에르덴’ 지역에서 이대성 작가가 촬영한 작품 <미래의 고고학>. /ⓒDaesung lee/Courtesy of Sipapress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30분쯤 떨어진 ‘에르덴’ 지역. 에르덴은 몽골에서도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던 지역이었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인 데다, 모래 채취 회사가 사막화에 속도를 더했다. 이곳은 푸른아시아에서 2010년부터 조림 사업을 시작했던 곳이기도 했다. 사막화로 가축들이 죽고 졸지에 ‘환경 난민’이 된 이들을 모아 주민들이 스스로 자립하게 하는 ‘하늘마을’이 만들어져 있었다. 급격한 사막화와 이에 맞서는 주민들의 노력이 공존하는 곳, 이곳이 1년여에 걸친 그의 작업 터가 됐다.

“2013년에는 사전 현지 조사를 하고 그림을 구체화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대형 실사로 인쇄해 현장에 전시해놓은 후 그 모습을 다시 찍는 방식이었는데,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명확한 콘셉트를 잡고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했는데, 주민들과 NGO 활동가 분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사진 촬영이 전무했던 주민들, 아이들과 관계를 쌓고, 원하는 그림을 찍기까지 함께 어울리고 손짓 발짓 해나갔어요.”

지구온난화로 25년 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도 서부 벵골주 해변의 작은 섬 '고라마'의 모습. 작품명 . /ⓒDaesung lee
지구온난화로 25년 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도 서부 벵골주 해변의 작은 섬 ‘고라마’의 모습. 작품명 <사라져 가는섬의 해변에서>. /ⓒDaesung lee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을 담아내고자 한 그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그는 인도 서부 벵골주 해변의 작은 섬, ‘고라마’로 향했다. 도심에서 버스로 5시간, 다시 배로 수 시간을 들어가야 했던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이었다. 1960년대에 비해 절반 크기가 된 이 섬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5년 정도다. 1980년대부터 정부도 나서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미 주민 대부분이 섬을 떠나갔지만, 여전히 3분의 1 가까운 주민이 남아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삶의 터전을 마주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면서 갠지스강으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늘고, 유속도 빨라졌어요. 고라마섬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델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섬 주변이 강물로 계속 침식되고, 또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그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풍경은 정말 아름다운데 머지않아 사라질 곳이고,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만이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더라고요. 무작정 마을 이장을 찾아가 ‘두어 달 머물 건데 잘 곳이 없겠느냐’고 손짓 발짓 해가면서 섬에서 먹고 자고 두 달 남짓 함께 살았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뭍에 나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고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는 생활을 반복해가면서 그는 “기후변화로 파괴된 작은 섬 사람들의 삶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사진 속, 깎이고 깎여 이제는 한 걸음 남짓 되는 크기의 작은 섬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남은 주민들은 우두커니 카메라를 응시하며 ‘대체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그는 이 사진으로 ‘201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현대사회의 쟁점(contemporary issue)’ 부문에서 3위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였다. 그의 작품은 워싱턴 포스트(WP), 르몽드, CNN 등 세계적인 매체에 소개됐고, 여러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도 초대됐다.

기후변화로 사라져 가는 것들. 사진으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구 다른 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가 입는 옷, 일상에서 무심하게 쓰는 물건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손과 땀을 거쳐 우리에게 오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소비를 하는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영향을 줍니다. 사진을 비롯해 예술가들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봅니다. 지금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현재의 시스템에 자꾸만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게 제가 사진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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