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시각장애인 도서 대출 이젠 좀 쉬워질까

국립장애인도서관 ‘드림’서비스 明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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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 김헌용(29)씨는 책 한 권을 읽으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느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이 많다는 시각장애인도서관은 전부 회원으로 가입해서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야 한다. ‘지도 없는 보물찾기’다.

겨우 원하는 책을 찾았다 해도 끝이 아니다. 오·탈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페이지 표기조차 안 된 ‘꽝’ 도서가 버젓이 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보니 이런 책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요즘 점자 책은 거의 안 읽어요. 녹음 도서나 데이지 파일(txt 파일을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게 음성 재생한 파일)을 선호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로 육성으로 읽은 녹음 도서를 이용하는데, 소장 도서관만 알면 전국 어디에서나 책나래(장애인 도서 대출 택배 서비스)를 통해 테이프나 CD를 대출받을 수 있어요.”

◇드림 서비스, 장서 47만권 목록 제공… 중복 도서 제작도 방지

김씨와 같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획기적인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용 도서(일명 ‘대체 자료’)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는 허브 ‘드림(DREAM)’이 만들어진 것. 올 1월 국립중앙장애인도서관이 첫선을 보인 드림 서비스는 현재 전국 19개 시각장애인 전용 도서관의 장서 47만권(일반 도서, 시청각 자료 19만건 포함)의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

드림 서비스 이전에는 각 도서관끼리 정보 공유가 안 돼 대체 자료를 중복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드림에 검색해 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41건이나 나온다. 이제는 드림에서 누구나 대체도서 종류별로 장서 목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중복 제작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편리한 드림에도 문제가 있다. 목록만 있고 원문을 보려면 일일이 해당 시각장애인도서관에 가입한 뒤 별도의 대여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드림에 직접 원문 자료를 제공하는 도서관은 국립장애인도서관, 국립특수교육원, 서울점자도서관, LG상남도서관 단 4곳뿐이다. 김씨 역시 드림 서비스에서 찾은 고병권 작가가 쓴 ‘니체의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빌리기 위해 송파인성장애인복지관에 복지카드를 보내고 아이디를 새로 발급받았다.

◇문제는 시각장애인도서관 ‘교부금 기준’

좋은 서비스가 생겼는데 왜 도서관들은 원문은 고사하고 장서 목록조차 제공하지 않을까. 원인은 시각장애인도서관 교부금 기준이다.

시각장애인도서관의 홈페이지 접속 횟수, 회원 수는 모두 이용자 통계, 즉 교부금과 직결되는 실적에 반영된다. 실적 평가 기준이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드림 서비스 참여만을 종용할 경우 각 지역의 시각장애인복지관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도서관들이 국립장애인도서관의 덩치와 규모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다.

연간 80만건의 대체 자료 대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A시각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규모가 큰 도서관은 별도 복지관 사업을 하거나 대체 자료 제작을 용역받는 등 방도가 있지만, 교부금 의존도가 큰 소규모 지역 도서관은 생존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드림 서비스 활성화하려면… 중앙은 ‘대출 서비스’, 민간은 ‘도서 프로그램’

전문가들은 시각장애인도서관 교부금 기준을 바꾸고, 국립장애인도서관과 민간 시각장애인도서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상훈 경남점자정보도서관장은 “이용자 편의를 위해 장서 목록 공유 등 도서 대출 서비스는 통합으로 가는 것이 맞다”면서 “대출 서비스가 국립장애인도서관으로 모이는데 민간 도서관이 힘을 보태는 만큼 독서 교육 프로그램 등 지역 민간 도서관만 할 수 있는 별도 사업에 국립장애인도서관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드림 시스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민간 도서관과의 소통도 과제다. 지난해 말 드림 서비스 참여 도서관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사전 통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탈락하거나 아예 드림 서비스가 시행되는 것을 몰랐던 도서관이 있었던 만큼 국립장애인도서관과 민간 도서관을 잇는 ‘징검다리 리더십’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민혜경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사무국장은 “장서 목록 공유는 자본과 기술의 한계에 부딪혀 민간 도서관이 해결하지 못했던 숙원 사업이기 때문에 목록 제공만이라면 당장의 실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드림 서비스에 참여하려는 도서관이 많을 것”이라면서 “민관의 활발한 논의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에 김영일 초대 관장 이후 반년 넘게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이 빈자리로 남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올해 11월 2차 참가 도서관 모집 전에는 미참여 도서관을 모두 방문해 드림 서비스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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