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더나은미래 논단] 생애주기별 복지가 중요한 진짜 이유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재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생애주기별’ 복지다. 보건복지부의 정책 설명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다. 생애주기별 복지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생의 단계에 따라 필요할 수 있는 복지 욕구를 사회적으로 적절히 해결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영·유아기에는 돌봄, 아동기에는 건강한 성장, 청장년층에는 취업, 노년층에는 노후 생활 보장과 의료 등 각 생애주기에 특화돼서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가 있다. 생애주기별 복지는 이러한 특화된 서비스를 생애주기별로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지칭한다. 하지만 생애주기별 복지를 이렇게 평면적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개념이 중요한 ‘진짜 이유’를 자칫 놓칠 수 있다.

생애주기별 복지의 보다 입체적인 의미는 예방적이고 투자적인 복지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삶의 주기에서 앞선 주기의 복지 욕구를 얼마나 적절히 해결하느냐가 뒤에 오는 주기의 복지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생애주기별 복지의 이론적 근간이다. 영·유아 시기에 부모와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아동기에 사회성과 정서 발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아동기에 사회성과 정서 발달이 뒤처지면 성인기에 다양한 정신 건강 문제가 나타날 확률이 크다.

복지 욕구는 생애주기마다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연결되며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복잡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린 시기에 가족의 경제적 여건의 차이로 발생한 작은 발달상의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 더욱 큰 격차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생애주기별 복지의 핵심은 예방적인 접근에 있다. 뒤에 오는 생애 주기의 복지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은 앞의 주기의 복지 욕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예방적 복지는 투자적 복지다. 왜냐하면 미리 선제적으로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중에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과 노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성인기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서 영·유아 시기에 건강한 애착 관계 형성을 지원하는 것은 훨씬 비용 효과적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는 영·유아기와 아동기다. 이때의 복지 욕구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뒤에 오는 생애 주기에서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에서 행해진 장기적인 종단연구들에서 아동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성인기까지 가져오는 사회적 편익이 작게는 투입 대비 2배, 크게는 약 17배까지 이른다는 사실은 아동기 투자의 사회적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21세기 복지정책의 최우선 분야를 아동에 대한 투자로 제시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가장 확실한 사회적 투자는 아동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최근 발표된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30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방과 후 나홀로 아동의 비율이 전체 아동의 20%에 이른다. 아동결핍지수로 본 아동의 복지 상태도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이다. 가구 소득에 따른 아동의 발달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생애주기별 복지의 핵심인 아동복지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때다. 흔히 아동은 선거권이 없기 때문에 복지 자원의 배분에서 항상 우선순위가 밀린다고 이야기한다. 아동에 대한 복지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정책적 의지와 결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부실한 아동복지는 후에 엄청난 복지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나중에는 가래로도 못 막는 우(愚)는 피해야 한다.

을미년 청양의 새해가 밝았다. 한 해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는 첫 출발이 중요하다. 복지에서도 첫 출발이 중요하다. 생애주기별 복지에서 아동복지가 중요한 이유다. 2015년이 우리나라가 아동복지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린 해로 기록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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