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민둥산에서 산림녹화 성공한 韓… 아세안 6억명에게 희망 되길

아시아산림협력기구 하디 수산토 파사리부 사무총장 인터뷰
1960~70년대 녹화 이끈 한국 새마을운동
기술 배우고자 아시아산림협력기구 출범
현지 기후·기술 상황 등 고려해 사업 진행
“협력 기구로서 든든한 가교 역할 할 것”

하디 수산토 파사리부 사무총장
하디 수산토 파사리부 사무총장

“한국의 산림 황폐화는 고질적이라서 치유 불가능하다.”

1969년 이뤄진 유엔의 평가다. 불과 13년 만인 지난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선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한국의 조림 녹화 사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세계와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가 있다. 2009년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제안, 2011년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산림 전문 국제기구인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이하 아포코)’다.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개소한 지 2년째를 맞은 아포코의 하디 수산토 파사리부(Hadi Susanto Pasaribu) 사무총장<사진>을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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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10개 국가 전체 면적의 약 60%가 산림이에요. 급속한 산업화, 기술이나 지식 부족, 열악한 경제 환경 등 때문에 너무 빠른 속도로 산림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현재 아세안 지역에서 매년 100만헥타르(㏊) 상당의 산림이 줄어들고 있어요. 거대 규모의 벌목이 가장 큰 원인이죠. 사람들도 나무를 공유재로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베어 땔감 등으로 쓰기도 하고, 화전(火田)도 여전히 횡행합니다. 그렇게 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파괴되는 경우도 많고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아포코 사무국에서 만난 하디 사무총장의 말이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세안 10개국의 산림면적은 모두 2억1300만헥타르(㏊). 한반도 전체 면적의 10배에 달하고, 전 세계 산림면적의 20%를 차지한다. 브라질 열대우림이 지구의 허파라면, 아세안 산림은 아시아의 허파와도 같은 셈. 생물 다양성도 뛰어나, 세계 생물종의 40%가 아세안 지역에 서식한다. 문제는 이런 산림과 생물자원이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다는 것. 열대림 훼손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도 상당하다. 10여년 넘게 인도네시아 산림부 개발청에서 근무했던 하디 사무총장은 “많은 아세안 국가가 산림 보존과 녹화를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1960~70년대 이룩한 한국의 노하우와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며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벌였던 새마을운동이 가장 가능성이 큰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산림녹화를 이룬 나라다. 1950년대, 온통 붉은 흙색이던 한반도엔 나무 한 그루 찾기 어려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온 국토가 황폐해졌기 때문. 헐벗은 산들은 물을 가둘 수 없어, 조금만 가물어도 하천과 계곡이 말라 가뭄이 오고 작은 비에도 산사태와 홍수가 논밭을 휩쓸었다. 척박한 땅과 빈곤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됐던 셈이다.

‘붉은 땅을 푸르게 가꾸자’는 모토로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조림 사업이 시작됐다. 1961년 산림법을 제정하면서 산림녹화 사업이 시작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산림녹화에 박차가 가해진 건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연계한 ‘산림녹화 10개년 계획’과 함께 지역사회와 마을을 조직하면서, 온 국민이 나서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와 농가 소득 증대가 함께 추진되고, 농촌 땔감을 위한 별도의 연료림도 조성됐다. 산림 보호를 위한 기술과 관리 방법도 체계를 갖춰나가자, 민둥산에 점차 숲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1962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에 심은 나무는 총 108억 그루다.

산림조성 및 토지복구사업이 진행되던 1970년대 한국의 모습. /아포코 제공
산림조성 및 토지복구사업이 진행되던 1970년대 한국의 모습. /아포코 제공

하디 사무총장은 “한국 주도로 아포코가 설립된 이래 지난 2년 동안, 아세안 각각의 국가사업 외에도 캄보디아·라오스 등 여러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메콩강 일대나, BIMPS(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등 곳곳에서 산림 및 생태계 복구·관리, 주민 및 공무원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며 “정부와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도록 교육과 단계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되, 건·우기로 나뉘는 현지 기후나 기술 상황, 경제수준을 고려해 현지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녹화사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아포코는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실행 중심의 조직'”이라고 강조하며 “국가 간 협정 등을 통해 추진했으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일들이 ‘국제기구’를 통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한 국가에만 해당하지 않는 지역 전반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훨씬 더 힘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아포코가 만들어진 지도 2년. 이제는 아세안 10개 국가를 넘어 다른 국가로도 확장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부탄, 몽골, 카자흐스탄, 동티모르 등에서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 아세안을 넘어, 명실상부 ‘아시아’의 산림 협력을 총괄하는 기구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는 셈이다. 하디 사무총장은 “아포코 활동에 한국의 역할이 정말 크고 중요하다”면서 “한국 역시 기후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고, 과거 한국의 경험도 전수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매년 축구장 400개 면적 산림이 사라지고 있는 북한의 산림녹화에도 기여하는 등 아시아 지역 환경 분야의 선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오래 산 분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풍광에 무척 감탄합니다. 이번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던 인도네시아 장관 역시도 ‘겹겹이 산맥이 닿아있지 않은 곳이 없고, 풍광이 정말 아름답다’며 극찬하더군요. 산이 국토의 70%를 이루고, 나무와 숲이 우거진 조화가 정말이지 아름답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건, 오늘날의 이런 결실을 보기까지 수십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죠.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가꾸는 동시에 놀라운 경제발전도 이뤄냈고요. 아세안 국가들은 바로 이 점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면서도 산림을 잘 가꾸고 보존해온 가장 좋은 선례(先例)이기 때문이죠. 한국 경험이 잘 전수된다면, 6억 아세안인에겐 희망이 될 겁니다. 산림 협력의 국제기구로서, 아포코가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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