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가족 목소리로 동화 들려주니… 다문화 아이 표현력이 자랐네요

국내 최초 ‘스토리빔'(영상그림책)을 만든 김지영 알로하 아이디어스 대표
친구 고민에서 영감 받은 ‘스토리빔’ 1년 만에 400억 매출… 동남아 진출도
다문화 가정 등 독서 소외계층 위해 목소리 직접 녹음하는 ‘담뿍이’ 개발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김지영대표_2014

2011년 10월, 홈쇼핑에서 2초당 1대씩 팔리던 교육 상품이 있었다. 엄마들 사이의 입소문을 타고, 1년 만에 400억의 매출을 올렸다. 웅진씽크빅이 출시한 영상그림책 ‘스토리빔’ 이야기다. 스토리빔은 스토리텔링과 빔프로젝터의 합성어로, 벽과 천장 등 빛을 비출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동화 속 인물들이 전문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영상그림책이다. 1년 넘게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혁신제품 개발에 매달렸던 웅진은 스토리빔으로 동남아 진출까지 성공, 2년 동안 총 10만대를 팔았다. 그 중심엔 5개월 만에 이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여성이 있었다. 바로 김지영(46·사진)씨다.

“목감기에 걸린 제 친구가 밤새도록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라는 이야길 듣고, 천장에 동화책이 재생되면 엄마와 아이가 같은 곳을 보면서 함께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수많은 학부모를 만나 그룹 인터뷰를 하고 제품 구상에 들어갔죠. 빔프로젝터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 혼자 중국을 누비고, 생산 단가를 맞춰보니 최소 6000대가 팔려야 회사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더군요. 고민 끝에 상품성 확인을 받으려고 홈쇼핑 MD(상품기획자)를 찾아갔는데 ‘1만대를 우리가 사겠다’면서 방송판매까지 약속받았습니다. 그 길로 바로 대표님 승인을 받아 제품을 출시했죠.”

이랬던 그녀는 지난해 돌연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다문화·시각장애 등 독서 소외계층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사회적기업 ‘알로하 아이디어스’를 차린 것. 계기는 스토리빔 출시 1년을 기념한 사회공헌 활동에서였다.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녀가 회사에 스토리빔을 소외 가정에 기증하자고 제안한 것. 다문화 가정을 만난 김 대표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하던 엄마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어눌한 아이의 발음을 들을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면서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정말 스토리빔이 필요한 다문화·장애인 가정, 조손·한부모 가정에서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요.”

김 대표는 생산 단가를 낮추면서도 다문화·시각장애 가정을 위한 맞춤형 제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상그림책을 좀 더 단순화한 리딩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광학 렌즈, 블랙박스, 빔프로젝터 등 관련 제작 업체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제품 구상에 들어갔다. 개발비만 10억을 달라는 업체도 있었고,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도 많았다. “한 제조업체 사장님이, 취지가 좋다며 흔쾌히 저렴한 비용에 제작해주셨어요. 예비 사회적기업육성사업 지원금에 부족한 비용을 대출받아 제품 라인을 만들고, 본격 제작에 들어갔죠.”

(왼쪽부터)① 스티커를 붙인 동화책을 제품에 갖다대면, 미리 동화책 내용을 녹음해둔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리딩북 '담뿍이’ 의 모습. ② 지난 10월부터 독서 소외계층을 위해 아나운서, 성우 등 유명 인사들의 목소리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① 스티커를 붙인 동화책을 제품에 갖다대면, 미리 동화책 내용을 녹음해둔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리딩북 ‘담뿍이’ 의 모습. ② 지난 10월부터 독서 소외계층을 위해 아나운서, 성우 등 유명 인사들의 목소리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지난 2월, ‘담뿍이’가 만들어졌다. “담다의 ‘담’과 책(Book)의 합성어예요. 제품 안에 사람도, 마음도, 동화도 듬뿍 담자는 뜻에서 만들었어요.” 김 대표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얀색 플라스틱 제품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담뿍이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파란색 담뿍이 스티커를 동화책에 붙인 뒤, 제품 센서에 가까이 갖다대자 음성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김 대표는 녹음 버튼을 누른 뒤 동화책을 읽어내려갔다. 다시 버튼을 누르자 ‘띠’하는 소리가 났다. “이제 다 됐어요.” 김 대표가 동화책에 붙여진 스티커를 담뿍이 센서에 가까이 가져가자, 방금 녹음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담뿍이에 장착된 메모리엔 도서 500권을 담을 수 있다. 담뿍이를 구매(시중가 13만9000원)하면 스티커 100장이 함께 제공된다.

“동화책 하나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문 성우의 목소리보다 아이에게 더 정감 있고 친숙할 테니까요. 담뿍이 스티커를 책 표지에 붙여두면, 부모의 도움 없이 아이 혼자서도 충분히 책을 담뿍이에 접촉해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고요.”

지난 6월 담뿍이는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펠로상’을 받은 데 이어, 2014 소셜벤처파트너스에서 최우수 창업팀으로 선정되는 등 기술성과 혁신성을 인정받고 있다. ‘아이스버킷챌린지’로 떠들썩하던 지난 10월, 그녀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목소리 후원자 발굴 프로젝트 ‘보이스버킷 챌린지(Voice Bucket Challenge)’를 시작했다. 김현욱 아나운서, 김수정 아나운서, 손오공·장화 신은 고양이로 유명한 김용준 성우, 이상헌 성우 등이 참여해 목소리를 기부했다. 연말엔 서울에 있는 다문화 가정 20곳과 다문화 도서관 10곳에 유명 인사들의 목소리가 담긴 담뿍이와 도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실제로 담뿍이를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표현이 풍부해졌다는 피드백이 많습니다. 평소 ‘운다’고 말하던 아이가 ‘펑펑 운다’고 하거나, ‘열이 난다’를 ‘열이 펄펄 난다’로 표현하는 등 어휘력이 늘고 있다고요. 최근엔 회사 일 때문에 밤늦게 퇴근하는 아빠들로부터 구매 요청이 늘고 있어요. 미리 아빠 목소리로 동화책을 녹음해뒀다가, 평소 아이들이 들을 수 있게 선물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요. 독서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담뿍이를 통해 가족의 즐거운 추억이 쌓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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