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소외된 미래, 다문화 아이들] “공동체 만드는 밀착 멘토링, 전국으로 확대를”

총괄멘토·전문가·이웃멘토 참여하는
‘삼각 멘토링’으로 다문화 가정 교류

이랜드재단, 현장 지원조직 돕는
온라인 플랫폼 ‘에브리즈’ 7월 출범

최근 민간조직에서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발굴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장기간 밀착 관리가 필요한 심리·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공통점은 다문화 가족 구성원에게 친구이자 멘토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언제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핵심이다.

포천하랑센터는 다문화 청소년에게 ‘또래 공동체’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다문화 청소년 2명을 짝으로 연결하고, 여기에 성인 자원봉사자 1명이 동행해 매달 1~2회 만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영화관이나 놀이동산 등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돕는다. 박승호 포천하랑센터장은 “학교에서 위축돼 있던 아이들이 또래와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민을 나누고 유대를 쌓게 된다”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아이들이 점차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센터에 나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멘토링을 지원하는 서울 강서구 화평교회의 오정은 사모가 아이들과 책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 /화평교회
다문화 가정 멘토링을 지원하는 서울 강서구 화평교회의 오정은 사모가 아이들과 책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 /화평교회

아이들만큼이나 다문화 가정의 부부에게도 친구는 필요하다.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A(35)씨에게는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한국인 부부가 있다. 매주 아이들과 함께 만나 식사도 하는 가족같은 사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편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정부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실 정도였다. 이른바 ‘멘토 부부’를 만난 이후에는 삶이 달라졌다. 한국어도 배우고,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도 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종종 중국 요리를 대접하기도 한다.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해 1월 서울 강서구에 있는 화평교회의 ‘이웃사촌형 삼각 멘토링’에 참여하면서다.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인 가정과 교육·심리 전문가들이 한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A씨는 초등학생 남매를 둔 부부와 멘토 결연을 맺었다.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면 될지, 육아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책읽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언어와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A씨는 더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노려보던 아이들은 이제 작은 농담에도 깔깔 웃는다. A씨는 “늘 아이들을 두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한국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면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화평교회에서 삼각멘토링으로 지원하는 다문화 가정은 A씨 가족을 포함해 4가구다.

공동체 네트워크를 확산하려면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학습이 가장 우선 과제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수년을 살아도 한국어를 못하는 이주민들이 많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친구가 없으니 한국어가 늘지 않는 악순환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는 2017년부터 매년 총 100명 규모의 ‘또래누리 멘토링’을 운영한다.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게 하는 방법이다. 대학생은 고등학생에게, 고등학생은 중학생에게, 중학생은 초등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까워진다. 필리핀 출신 어머니와 함께 사는 B양(20)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게 됐다. 4년 전 학교폭력 트라우마로 학교를 그만뒀지만, 당시 고등학생 언니와 멘토 결연을 맺고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올해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에서 진행하는 ‘또래누리 멘토링’ 현장. 중학생 멘토가 다문화 가정의 초등학생 멘티에게 언어 교육을 하고 있다. 멘토링이 진행될수록 멘토와 멘티 사이도 가까워진다.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에서 진행하는 ‘또래누리 멘토링’ 현장. 중학생 멘토가 다문화 가정의 초등학생 멘티에게 언어 교육을 하고 있다. 멘토링이 진행될수록 멘토와 멘티 사이도 가까워진다.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를 돕는 ‘플랫폼형 지원조직’이 등장했다. 이랜드재단은 민간조직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화평교회의 ‘이웃사촌형 삼각 멘토링’을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욱 이랜드재단 본부장은 “다문화가정의 이웃이 될 지역 교회 멘토단을 발굴하고 양성해 지속가능한 모델로 발전하고 확산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재단을 중심으로 병원, NGO, 기업 등을 연계해 이들이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다음 달에는 다문화 가정 지원 플랫폼 ‘에브리즈’를 출범한다. 당사자를 직접 지원하거나 이들을 돕는 소규모 기관들도 지원할 수 있게 연계하는 게 핵심이다. 정영일 이랜드재단 대표는 “다문화가정을 돕는 현장전문기관과 돕고자 하는 교회, 기업, 단체 등을 연결하기 위해 플랫폼을 구상했고 첫 번째 결과물을 곧 선보일 것”며 “국내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외되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