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SUV 타려면 ‘기후요금’ 내라… 프랑스, 차량 클수록 주차료 할증

최근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온실가스 감축 규제 대상으로 잇따라 지목됐다. 경차나 소형 세단에 비해 연비가 낮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상대적으로 많은 SUV와 같은 큰 차량이 도심 운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다.

극심한 도심 교통난을 겪는 프랑스 파리에서 SUV와 같은 무거운 차량을 운행하는 차주는 내년부터 주차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극심한 도심 교통난을 겪는 프랑스 파리에서 SUV와 같은 무거운 차량을 운행하는 차주는 내년부터 주차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시의회는 SUV에 주차요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내용의 조례를 지난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차량 무게에 따른 요금률 등 세부사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내년 1월1일부터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큰틀의 합의는 이뤄졌다. 이번 조례를 발의한 프레드릭 바디나-서페트 녹색당(EELV) 의원은 “주차 공간은 한정된 반면 SUV 등 ‘비만 차량’이 대폭 늘면서 대기오염이 심화하고 있다”며 “파리시가 SUV 차주에게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파리 내 SUV 차량 수가 60% 늘었고 그 결과 전체 자동차 중 SUV 비중은 15%에 달했다. 다비드 벨리아르 파리시 교통담당 부시장은 “비포장 도로와 산길이 없는 파리에서 SUV를 타는 건 자원 낭비에 가깝다”며 “이번 조례를 통해 경차 수요가 증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거주자 우선 주차제도에 따라 주차요금을 별도 납부해야 한다.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리옹의 경우 월 20유로(약 2만8000원)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이번 조치는 이러한 주차요금을 차량의 무게나 내연기관 유무에 따라 달리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5월 프랑스 리옹시는 내년부터 내연기관차량(무게 1000~1725kg)이나 하이브리드차량(1900kg 이하)의 주차요금을 월 30유로(약 4만2000원)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무거운 차량을 소유한 차주는 월 45유로(약 6만3000원)를 주차요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반면 전기차 또는 경차(1000kg 이하)를 소유하고 있거나 다자녀가구와 취약계층 차주에게는 월 15유로(약 2만1000원)으로 할인해준다. 이번 정책은 프랑스 기후시민회의(CCC) 등이 제기한 차량 무게에 따라 석유 소비와 탄소 배출이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CCC는 지난 2019년 10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기구로 시민 위원 150명이 9개월간 파리기후협약 이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SUV 3억3000만대가 2022년 배출한 탄소량은 약 10억t이다. 이는 지난해 영국과 독일의 탄소배출량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동차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SUV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기준 31.4%에 달한다. 전체 자동차 대비 SUV 비율이 약 25%라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이다. IEA는 SUV가 높은 무게와 낮은 연비 등으로 일반 차량보다 연료를 20% 많이 소비한다고 평가했다. 2021~2022년 SUV의 석유 소비량은 매일 약 8000만L씩 증가했다. 이는 전체 석유 소비량 증가분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SUV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0.5% 감소한 반면 SUV 판매량은 3% 늘었다. 이에 따라 SUV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20%에서 2022년 46%로 두배 이상 상승했다. SUV 판매량 증가로 전기차의 탄소 배출 감축 효과가 무효화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IEA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SUV 판매 비중이 증가하면서 탄소배출량이 큰 폭 늘었고 이에 따라 전기차 증가로 인한 석유 소비 감소량(하루 635만6000L)이 상쇄됐다.

줄리아 폴리스카노바 유럽운송환경연합(T&E) 이사는 “자동차 업체들이 이윤을 위해 SUV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는 환경 오염은 물론 소비자 부담을 심화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UV 특별세 등을 제정해 경차 수요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백승훈 인턴기자 poja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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