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토)

‘두더지 땅굴’에서는 은둔청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인터뷰] 이은애 씨즈 이사장

“두더지는 땅속에서 혼자 살지 않아요. 다른 두더지들이 머무는 공간과 땅굴로 연결돼 있죠. 집에서 은둔하는 청년들을 보고 두더지가 떠올랐어요. 집에 웅크린 청년들이 사회와 조금씩 소통하면서 밖으로 나오게 돕고 싶었습니다.”

서울시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만19~30세 고립·은둔(이하 고립 청년) 청년은 전국에 61만명으로 추정된다. 사단법인 씨즈는 이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을 운영한다. 고립 청년들이 다른 청년들과 건강하게 교류하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땅속에서 생활하는 두더지의 모습이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땅굴에서 두더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정책 홍보를 활발히 한다고 고립·은둔 청년의 정책 이용이 많아지지는 않는다”며 “해결책의 범위를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민 청년기자(청세담14기)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정책 홍보를 활발히 한다고 고립·은둔 청년의 정책 이용이 많아지지는 않는다”며 “해결책의 범위를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민 청년기자(청세담14기)

온라인에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청년들을 위한 곳도 있다. 오프라인 모임공간 ‘두더집’이다. ‘점심밥 모임’, ‘동아리’ 등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두더집은 지난 5월까지 1000명 정도가 이용했다. 지난달 12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두더집을 찾았다. 이날도 2명의 청년이 거실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련된 사무실이 아닌 마당이 딸린 다세대 주택인 이곳에서 청년들은 “외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두더집의 외할머니라는 이은애(57) 씨즈 이사장이 취재진을 맞았다.

집에서 닿을 수 있는 소통 창구 ‘온라인’

씨즈는 청년세대 사회혁신가 육성을 목표로 2010년 설립됐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불안 등을 목격하며 그간의 사회혁신 전략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2021년부터는 서울시 청년허브를 위탁 운영하며 467명의 청년을 상담했다. 그러다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고립 청년들을 발견했다. 이후 고립·은둔 문제에 집중하는 다른 단체들과의 회의를 통해 지난해 8월 고립 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을 만들었다. 지난 5월 기준 두더지 땅굴 회원은 980명이다.

-은둔 청년들이 소통할 공간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 만든 이유는?

“청년들을 상담하며 은둔할 때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어보니, 온라인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는 청년이 많았다. 소셜미디어로 다른 이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더 무가치하게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은 외로움과 무료함을 견디는 창구였다. 온라인을 통해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며 지지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두더지 땅굴을 만들었다. 자해와 같은 위험 신호도 청년들끼리는 알아차릴 수 있다. 꼭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고립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얘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사회적 관계망이 가장 중요하다.”

-청년들이 고립을 시작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크다. 취업시장에서 청년을 비정규직으로 많이 뽑으니 좋은 첫 직장을 잡기가 어렵다. 또 다른 원인은 청년 1인 가구의 급증이다. 일본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방에서 은둔하는 외톨이가 많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 간의 세대 갈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의 청년 1인 가구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주거비, 식비 등의 부담이 크다. 식사도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거나 거른다. ‘성공제일주의’ 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가 보기에 번듯한 성공을 강요받다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기는 어렵다. 더불어 팬데믹이 결정타가 돼 사회관계 맺기가 어려워지면서 고립이 증가했다.”

-두더지 땅굴의 온라인 프로그램 효과는 어떤가?

“고립 청년들은 밤낮이 바뀌어 일상의 루틴이 깨지다 보니 영양 섭취가 잘 안 되고 위생 상태도 나빠진다. 이들에게 일상성을 찾아주는 역할을 온라인 게시판이 하고 있다. ‘매일매일 쓰담쓰담’ 등의 게시판을 통해 밥은 먹었는지, 잘 잤는지, 다른 이와 통화했는지 등을 얘기하며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이런 소통이 위로가 됐다는 분들이 많았고 오프라인 대화 모임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매년 두더지 땅굴 운영을 도울 청년을 30명 정도 뽑는다. 고립 생활을 하던 청년이 용기를 내서 콘텐츠 기획자, 게시판 지기, 편집자, 동아리 운영 등을 하기 위해 지원하기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인 만큼 지역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작년까지 467건의 고립 청년을 상담했는데 그중 30% 정도가 지역 청년이었다.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정보가 적다 보니 온라인으로 상담이나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도가 높다. 지역 내에서 계속 만날 수 있도록 고립 청년 간의 커뮤니티도 조금씩 만들고 있다. 농어촌의 경우 서울에 비해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아서 커뮤니티를 더 활성화하고 싶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

지난달 12일 만난 이은애 씨즈 이사장이 고립·은둔을 경험한 청년들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인 '두더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보민 청년기자(청세담14기)
지난달 12일 만난 이은애 씨즈 이사장이 고립·은둔을 경험한 청년들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인 ‘두더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보민 청년기자(청세담14기)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 당사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건가.

“청년세대는 자기 주도성이 보장됐을 때 무언가 해보려 시도한다. 고립 청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문제를 푸는 주인공이 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청년 스스로 변화할 계기를 찾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해를 자주 하던 청년이 한 번 참았다면 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고립 청년 스스로 자기주도적 힘을 발견하면 본인의 생활을 조금씩 변화시키게 된다. 사소한 계기를 통해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난다.”

-두더지 땅굴 외에도 씨즈에서 실시하는 고립 청년 지원책이 있나?

“직접 고립 청년들을 발굴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찾아가는 경우 청년들은 자신이 ‘약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상업 영역에서 고립 청년을 발굴하는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매일 새벽 김밥 사가는 고립 청년으로 보이는 이가 요즘 오는지, 고시원 총무에게 월세 밀리는 청년은 없는지 등의 얘기를 듣는다. 한 번은 상황이 심각한 자매를 발견한 적이 있다. 조현병이 있는 20살 동생을 25살 언니가 회사를 관두고 돌보고 있었다. 부모는 이혼을 하고 자매에게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아 생활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자매를 의료 생협과 정신과에 연결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언니에게는 일자리를 연결해줬다.”

-고립 청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고립 청년을 ‘게으른 청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고립, 은둔이 개인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다.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복합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현재는 청년 고립 문제라고 표현하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전 세대의 고립이 문제가 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공공뿐 아니라 민간, 시민사회도 함께해야 한다. 청년층을 시작으로 다른 세대의 고립·은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사회가 변화하길 바란다.”

김어진 청년기자(청세담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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