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농사 지으면서 태양광 발전 동시에… 개도국 식량안보·기후위기 대응한다

[인터뷰] 윤성 엔벨롭스 대표

“2016년 초대형 사이클론이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를 덮친 적이 있습니다. 기후 관련 국제협력사업의 타당성 분석 연구원으로 지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도심 지역은 일주일에 걸쳐 복구가 됐지만, 농촌 지역이나 낙후 지역 같은 곳은 1년이 지나도록 전력 공급도 안 되고, 물자도 조달이 안됐어요. 건조기후도 장기화되면서 농작물 재배도 되지 않았습니다. 개발도상국이 직면한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농형태양광’ 기법을 개발도상국이 직면한 기후위기, 식량안보 문제 해결에 도입한 스타트업이 있다. 영농형태양광은 농지 위로 4m 높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농작물 재배와 전력생산을 동시에 하는 시스템이다. 신재생에너지 스타트업인 엔벨롭스는 영농형태양광 기술 보급으로 개도국 주민에게 태양광 설치에 따른 임대 수익을 준다. 창업 3년차인 2020년에는 피지에 진출했다. 영농형태양광 사업으로 녹색기후기금(GCF)의 승인을 받은 첫 사례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윤성(41) 대표는 “선진국이 성장하면서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로 기후위기를 초래했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개도국이 떠안고 있다”며 “개도국이 이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2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윤성 엔벨롭스 대표는 "개발도상국은 기후위기로 발생된 피해를 모두 대응하지 못한다"며 "재생에너지 스타트업이 개발도상국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2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윤성 엔벨롭스 대표는 “개발도상국은 기후위기로 발생된 피해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재생에너지 스타트업이 개발도상국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피지를 첫 사업 지역으로 선택했다. 이유가 있나?

“피지가 속한 남태평양 지역은 건조기후가 심화되고 있고, 태양열이 강해 농작물 피해가 심한 곳이다. 제가 있던 오발라우(OVALAU) 지역은 인구가 1만명 정도 되는 피지의 여러 섬 가운데 하나였다. 농작물 생산을 못 해 대부분 본 섬이나 뉴질랜드에서 비싸게 작물을 수입하고, 전기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주민들의 소득은 우리 돈으로 월 2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영농형태양광은 생소한 개념이다.

“영농형태양광은 1981년 처음 등장한 개념이지만 국내에서는 토지의 용도 변경이나 주민수용성 문제 등으로 보급이 잘 되지 않아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개도국 상황은 조금 다르다. 토지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유휴지가 많고 농지의 생산성도 낮다. 또 소음과 매연을 내뿜는 디젤발전을 하고 있어 질 좋은 전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다. 이런 문제를 영농형태양광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실제 사업 진출 과정에서 현지 주민이 영농형태양광 설치를 반겼던 기억이 난다.”

-피지 진출이 어렵지는 않았나?

“스타트업이 다른 국가에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보급하는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지의 경우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고민이 있었다. 또 오발라우 지역 주민들의 경우 값비싼 농작물 수입에 대한 부담도 가지고 있었다. 상황들이 맞물려 잘 진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농형태양광을 설치해 주민들에게 장소 임대료를 주고, 농작물 생산량 감소가 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농작물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나?

“오히려 반대다. 영농형태양광이 설치되면서 남태평양의 뜨거운 태양열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태양광 패널이 빛을 적절히 조절해주는 차양막 역할을 해 작물 생산량이 증가했다. 자급자족이 될 정도로 작물 수확량이 늘어 수입 의존도가 낮아졌다. 잉여 농산물은 지역 협동조합에 판매도 한다. 특히 태양광 발전을 하면서 디젤발전기가 줄고 소음과 매연이 사라지고 있다. 현재 오발라우 지역 에너지 사용량의 약 57%가 재생에너지다.”

윤성 엔벨롭스 대표는 "영농형 태양광 분야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영역은 농작물의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윤성 엔벨롭스 대표는 “영농형 태양광 분야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영역은 쌀, 감자 등 각각의 농작물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해외 사업만 진행하고 있는 건가.

“현재 피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보급하고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해당 국가들과 함께 국가별 특성에 맞춰 실증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국가마다 제도가 달라 특성에 맞게 타당성조사를 진행하는 게 관건이다. 엔벨롭스는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제외하고 단독으로 개발하고 소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관리 부실의 문제가 따르는데.

“개도국에 투입되는 자금의 경우 길어봐야 4년 정도다. 그 이후엔 관리가 잘 안 된다. 에너지 분야는 호흡을 길게 두고 가야한다. 엔벨롭스는 해당 지역이 에너지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전수하고 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피지 관계자 10명을 한국에 초청해 재생에너지 관리와 농업에 대해 교육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태양광으로 전력을 얻으면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쌀, 감자, 토마토 등 농작물마다 실증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재배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7개 정도의 작물 데이터를 확보했다. 또 태양광 패널의 각도를 조절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기존엔 태양광 패널이 고정돼 있어 날씨 등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해 실시간 기후 데이터와 결합한 후 각도를 조절한다면 각 농작물에 맞는 광포화점을 조절할 수 있고, 기후에도 실시간으로 대응이 가능해진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