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박란희 편집장, 미국 비영리를 해부하다] ② 기부자에게 믿음 주려면… 비전과 핵심 가치에 충실하라

박란희 편집장, 미국 비영리를 해부하다 (2)핵심 가치에 집중하라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 “빈곤·보건·교육문제 해결되면 문 닫을 것”
국경없는의사회 – 기부자 90%, 사용처 지정 않고 믿고 맡겨
시애틀재단 – 1600여 단체 지원… 공동체 살리는 허브

“우리는 50년 안에 기금을 모두 사용하고 난 후 재단이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의 코디네이터 마리아 레나(Maria Rena)씨의 말이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이곳은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세운,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재단이다. 한 해에 사용하는 기금이 무려 34억달러(3조4000억원·2012년)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회공헌 총지출 액수가 3조원가량이니, 이와 맞먹는다.

'시애틀 캠퍼스'로 불리는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본부는 V자 모양의 대형 건물 2개 동과 방문자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 누구에게나 오픈되는 방문자센터를 만들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목소리 갤러리'는 재단의 수혜자와 파트너들, 재단의 설립자 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다. /박란희 기자
‘시애틀 캠퍼스’로 불리는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본부는 V자 모양의 대형 건물 2개 동과 방문자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 누구에게나 오픈되는 방문자센터를 만들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목소리 갤러리’는 재단의 수혜자와 파트너들, 재단의 설립자 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다. /박란희 기자

한 해 13만명이 방문한다는 재단의 방문자센터(2012년 오픈) 입구에는 빨간색 팻말로 이곳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빈곤·보건·교육을 위해 일하는 단체를 지원한다.”

“재단에는 빈곤·보건·교육 파트별로 전담 직원이 있어, 어떤 NGO가 분야별로 가장 잘하는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자금을 지원합니다. 우리가 모든 걸 다 할 수 없으니까요.”(레나씨)

“문제를 해결하고 언젠가 사라지겠다”는 과감한 도전장에 이어, 재단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며 끊임없이 ‘협업과 혁신’을 강조한다. 방문자센터 곳곳에는 “당신이 이런 재단을 운영한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를 적는 IT기기가 많았다. 또 재단과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선 파트너 단체 1만1300개의 리스트를 모두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레나씨는 “저개발국의 가족계획을 위해 제약회사와 협력해 3개월 동안 피임 효과를 지속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며, 아이가 아플 때 스스로 휴대폰을 이용해 진단해볼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 중”이라며 “오지(奧地) 주민을 위해 30일 동안 백신을 냉장 보관하는 아이스박스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만 1500명인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은 과연 35년 후 임무를 다하고 사라질 수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계적 투자가 워런 버핏은 “300억달러(30조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정한 후 매년 10억달러(1조원)를 지원금으로 보내고 있으며, 빌 게이츠 부부가 출연한 출연금 402억달러(40조원)의 기금 수익도 안정적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에는 대형 세계지도 위에 현장 전문가들이 진출해 있는 곳이 표시돼 있다. /박란희 기자
미국 뉴욕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에는 대형 세계지도 위에 현장 전문가들이 진출해 있는 곳이 표시돼 있다. /박란희 기자

◇국경없는의사회, 비전에 충실한 모금 방법이 성공

지난 6월 17일부터 26일까지 한국NPO공동회의가 주관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한 ‘2014 미국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둘러본 미국 비영리단체들의 공통점은 ‘비전과 핵심 가치에 충실하다’는 점이었다. 단체의 대표들은 우리 일행에게 2시간 중 30분 이상을 지루할 정도로 비전과 핵심 가치를 강조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미국 국경없는의사회'(MSF USA)가 대표적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 나이지리아 내전으로 인한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의사와 언론인이 함께 설립한 단체로,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70여 개국에서 3만여 명이 활동하며, 전체 모금액 12억3700만달러(1조2300억원가량) 중 미국은 1억8900만달러(1900억원가량)를 모금한다. 소피 델로네이(Sophie Delaunay) 상임이사는 “우리 단체는 긴급한 구호현장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초점이기 때문에, 중립성과 독립성, 윤리적인 부분(책임성과 투명성)을 가장 중시한다”며 “미국의 경우 기부금의 91%가 개인이 낸 돈이고, 정부 기금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기부받을 때의 원칙도 확고하다. ‘비지정 기부금’이다. 기부자들이 후원금을 쓸 곳을 지정하는 게 아니라, 단체를 믿고 맡기는 것이다. 이 비율이 무려 90%다. 기부자들의 후원 유지 기간 또한 7년씩이나 된다(한국은 통상 2~3년이다). 개인 기부자가 줄어드는 추세임에도 이곳은 평균 14%씩 매년 증가한다.

비결은 뭘까. 토머스 쿠먼(Thomas Kurmann) 모금당당 국장이 한 사례를 들려줬다. 2004년 말 인도네시아 쓰나미 긴급 모금 당시 현장에서 필요한 금액 이상으로 후원금이 모였다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기부자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후원금 중 남은 금액이 얼마인지 알리고, 이를 환불받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 사업에 써도 되는지 물어봤다. 기부자 중 1%만이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쿠먼 국장은 “가장 혁신적인 모금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기관의 미션에 가장 부합하는 모금 방법만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시애틀재단은 매년 5월이면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온라인 기부 프로젝트인 '기브빅(GiveBIG)' 행사를 열어 일반인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들은 시애틀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기브빅 메뉴를 선택, 기부하고 싶은 비영리단체를 찾아 직접 기부할 수 있다. /출처 seattle aquarium.org
시애틀재단은 매년 5월이면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온라인 기부 프로젝트인 ‘기브빅(GiveBIG)’ 행사를 열어 일반인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들은 시애틀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기브빅 메뉴를 선택, 기부하고 싶은 비영리단체를 찾아 직접 기부할 수 있다. /출처 seattle aquarium.org

◇시애틀재단, “지역공동체 살리자” 목적에 충실

1946년 설립된 미국 최대 지역재단 중 하나인 시애틀재단(The Seattle Foundation)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은 시애틀 지역공동체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 허브 역할을 하는 중간 지원 조직이다. 자산은 8억달러(8000억원)인데, 여기서 나오는 기금을 운용해 지난해에만 6570만달러(677억원)를 배분했다. 이 돈은 1600개 이상의 풀뿌리 비영리단체들에 배분돼, 교육·환경·복지 등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인다. 시애틀재단은 빌게이츠재단뿐 아니라 보잉, 스타벅스, MS, 지역 은행 등 지역의 많은 기업과 부자, 시 정부를 끌어들여 지역의 비영리단체와 연결해준다.

실 에릭슨(Ceil Erickson) 공동체프로그램국 국장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비영리단체를 돕기 위해 시애틀 지역의 가족재단, 기업재단이 함께 모여 ‘빌딩 리질리언스(Building Resilience·회복력을 키우자)’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5년 동안 펼친 민관협력 교육 프로그램 ‘페어런트차일드홈(Parentchildhome)’도 마찬가지다. 에릭슨 국장은 “기업에서는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직원의 질이 좋아지고, 시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의 복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윈윈이었다”고 덧붙였다.

고액 기부자는 재단에 최소 10만달러(1억원)부터 최대 2500만달러(250억원)까지 기부한다. 물론 고액 기부자들에게 “이곳에 돈을 써야 한다”고 전략을 세워주는 시애틀재단의 전문가가 있기에 가능하다. 게이브 애슐리먼(Gabe Aeschliman) 어드바이저는 “은행, 변호사, 자산전문가, 회계사 등 100여 명의 자문 인력이 우리를 돕는다”며 “고액 기부자들에게 세금 혜택도 받고 좋은 일도 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은 영리기관 못지않은 노력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애틀·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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