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배움의 꿈 지켜주세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북한을 이탈한 여성과 중국을 포함한 제3국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미성년자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만, 법률상 북한이탈주민에 속하지 않는다. 특히 서툰 한국말로 버거운 학업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8년 2월 한국에 들어온 A(15)군은 북한이탈주민 어머니를 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다. 입국 당시인 열세살에 처음 한글을 접했다. 이후 3년 만인 지난 5월,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했지만 대학 진학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A군은 “중국 출생은 북한에서 태어난 친구들과 달리 별다른 지원제도가 없어 대학에 가는 게 엄청 어렵다”면서 “기술을 배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비교적 경쟁이 덜한 전문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B(17)양의 고민도 비슷하다. 그는 중국에 거주하던 당시 어려운 형편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2018년 12월 입국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교내 장학금을 받고 있다. B양은 “미디어 전공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복잡한 입시 제도만 생각하면 막막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꿈을 향한 도전 가로막는 대학 진학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인 ‘한꿈학교’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수시모집 전형을 찾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과는 달리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을 위한 전형은 거의 없다.

제3국 출생 학생들은 탈북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은 ‘북한이탈주민 지원법’에 따라 정원외 대학 특례입학 제도가 적용된다.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끼리 경쟁하면 된다. 하지만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 2019년부터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도 특례입학 제도 대상이 되었지만, 정원‘외’가 아닌 정원‘내’ 특례입학을 허용했다. 이마저도 대학의 자율성에 맡겼고, 이를 반영한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한 국가장학금 제도도 부실하다. 김영미 한꿈학교 교장은 “북한 출생 청소년은 ‘교육보호대상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공립대학 등록금 면제, 사립대학 반액 보조 혜택을 받지만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의 경우 대학 입학금 일부 지원이 전부”라며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 여성에게 자식의 대학 진학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했다.

지난 2016년 한국에 들어온 C(25)씨는 학력 인정 대안학교를 졸업했다. 북한 출생이라 담임교사의 지도에 따라 2017년 정원‘외’ 특별전형으로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중국어가 능숙한 강점을 살려 중국문화학과로 진학했고,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아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의 한 교육센터에서 통일프로젝트 팀장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제3국 출생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C씨는 “운 좋게 북한 출생이라 여러 지원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제3국 출생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공백 속 한국인으로 살아갈 아이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의 수를 앞지르며 빠르게 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608명이던 제3국 출생 학생은 2019년 1549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북한 출생 학생은 1073명에서 982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그러나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여전히 정부 교육지원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제3국 출생 청소년이 한국에 입국할 당시 평균 나이는 만14~16세다. 그전까지 중국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 자리 잡기 위해 먼저 떠나간 엄마 없이 유년기를 보내고, 가난한 형편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는 사례가 많다. 엄마가 자녀를 한국으로 불러들이면,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고 문화생활을 접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김영미 교장은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당장 헤쳐나가야 할 게 산더미예요. 난생처음 접한 한국어를 익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초등,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취업을 하거나 대학을 가야 해요. 남학생들의 경우 군대도 가야 하고요. 북한 출생 탈북청소년처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지 않으니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죠.”

김영미 교장은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을 두고 “북한이탈주민 엄마를 뒀지만 탈북청소년은 아닌,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인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건 청소년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적응하려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중국도 알고, 북한도 알고, 한국도 아는 이런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아이들이 계속 꿈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합니다.”

윤규랑 청년기자(청세담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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