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모두의 칼럼] 휴전선 너머 가족 잇는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김정은 집권 이후 국경 경비가 강화된 데 이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탈북 경로가 거의 막힌 상황이다. 어렵게 탈북에 성공하더라도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여정은 목숨을 건 위기의 연속이다. 탈북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중 자녀를 낳게 되고, 일부는 한국행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공안에게 붙잡혀 북송된다. 남겨진 자녀는 한순간 어머니를 잃을 뿐 아니라 한국 국적자임을 입증할 방법도 묘연해진다.

의뢰인은 탈북민 어머니와 중국 동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강제 북송된 이후 아버지와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아버지가 탈북민과 재혼하면서 계모의 자녀로 주민등록됐고 한국인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지속된 계모의 학대에서 벗어나고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판결을 받으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아침에 무국적자가 되자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불안의 날들이 이어졌다.

의뢰인은 국적을 얻기 위해 국적판정신청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담당자는 어머니가 없는 상황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없다며 서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이러한 의뢰인의 사정이 전해지면서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법인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 법무법인 바른 등에서 지원 변호사단을 구성해 북송된 어머니를 피고로 한 ‘친생자관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준비과정에서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친모의 고종사촌을 찾게 됐다. 기쁨도 잠시, 고종 5촌 관계는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했지만, 5~6촌 관계까지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검사 방법을 개발 중인 회사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심은 어머니의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생존 여부조차 알지 못해 인적 사항 특정이 되지 아니하므로 부적법하다는 각하 판결을 내리면서 소송의 롤러코스터는 다시 하강 국면을 맞았다.

전열을 정비하여 1심 판결을 다투는 동시에 그동안 모은 증거 등을 기반으로 법무부에 다시 국적판정 신청했다. 1년여 기간 의뢰인이 북한 주민의 자녀인 점을 입증하고, 설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최근 드디어 의뢰인에 대한 국적 판정 결정이 이뤘졌다. 한국에 온 후 겪었던 많은 어려움, 특히 국적 문제로 수년간 소송을 진행하며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국적 판정만으로 위로가 될까 싶지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한 것 같았다.

증거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송을 시작할 때부터 국적 판정을 받은 지금까지 여러 고비를 넘어온 건 주변의 많은 도움 덕분이었다. 얼굴도 처음 보는 먼 친척 조카를 위해 법정에 직접 출석하고 발로 뛰며 도운 탈북민, 의뢰인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 유전자 검사 연구 회사와 박사님들, 개인사가 담긴 자신의 사건을 공유하고 확인해준 유사 사건 당사자와 관계자, 의뢰인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성의를 다해준 담당자 등 많은 이들의 노력과 도움으로 이룬 결과였다.

처음에는 무모한 소송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나씩 증거가 모이고 위기의 순간마다 실마리가 풀리면서 방법을 찾고자 애쓰면 진실함과 간절함이 길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국적은 얻었지만 아직 친모와의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사건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이 인용된 사례는 없다.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남북한 교류 단절로 생사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가족의 끈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의뢰인과 북한에 부모를 두고 홀로 입국한 자녀들의 간절한 염원이 법원에 닿기를 바란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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