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그녀의 50년 간호 노하우, 말라위 의료의 희망으로

대양누가간호대학장으로 나눔 전하는 김수지 박사
대양누가간호대학 세운 간호사 백영심씨 인연으로
2011년 학장으로 부임해 간호·지역사회 교육 나서
에이즈로 가족 잃은 청년들, 간호 공부에 관심 높아
영양부족 학생들에게 계란·고구마 먹이며 가르치고
시계가 없어 지각하자 한국에서 기부받아 선물도
“교과서 비싸 8명이 책 1권으로 공부… E러닝 계획”

김수지 박사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김수지 박사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한국 간호학계의 대모(代母)는 은퇴 직후 아프리카로 떠났다. 50년간 쌓아온 간호 지식과 노하우를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평균 수명이 39세에 불과한 나라. 말라위(Malawi)에서는 하루에 160여명의 임산부가 산후 처치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다. ‘한국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김수지(71) 박사가 말라위의 ‘대양누가간호대학’ 학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유다.

“2010년 12월 이태석 신부님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접했습니다. 펑펑 우느라 다음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좌석에서 일어나질 못했죠. 그때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 활동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로부터 한 달 뒤 저는 말라위 간호대학 강단에 서 있었습니다.”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박사는 이화여대 간호대학 교수, 대한간호학회장, 한국정신보건전문간호사회장, 서울사이버대총장 등을 지냈다. 2004년에는 연세대, 이화여대 간호학과 교수를 하면서 밤에는 서울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학생이 바로 총장이 되는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수상 경력도 많다. 2001년 국제간호대상을 받았고, 2007년엔 간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記章)’을 공동 수상했다.

가관식에 앞서 나이팅게일 촛불을 받아 든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가관식에 앞서 나이팅게일 촛불을 받아 든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서울사이버대총장 임기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릴 무렵 누군가 김 박사를 찾아왔다. 말라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간호사 백영심(50)씨였다. 백씨는 20년 동안 말라위 의료 취약 지역을 다니며 진료를 하고 있었다. 2008년에는 180병상의 ‘대양누가병원’을 설립해 한 달에 2500여명의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난해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2회 이태석상’도 받았다. 병원을 설립한 백씨의 고민은 환자를 간호할 인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2010년 ‘대양누가간호대학’을 설립했지만, 대학 교육을 끌고 갈 전문가가 절실했던 것. 김 박사는 “백 간호사가 내 이름으로 예약된 말라위행 비행기표를 건네는 열정과 믿음을 보고 동참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때부터 3년째 함께 쉴 틈 없이 달리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간호대학에 대한 말라위 청년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30명을 선발하는데 무려 1400명이 몰려왔다. 47대1의 경쟁률이었다. 김 박사는 “청년들에겐 그만큼 간호 교육이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말라리아, 에이즈 등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교사로 일하던 36세 입학생은 에이즈로 일가친척 모두를 잃고, 간호사로 꿈을 바꿨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는 학생 모두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곁에서 아픔을 지켜봤기 때문인지 학생들의 마음은 더 따뜻했어요. 첫 수업 때 종이를 나눠주고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30명 중 26명이 ‘마을에 돌아가 헬스클리닉을 짓고,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적더군요. 주변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보고 모두 훌륭한 간호사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대양누가병원에서 임상실습 중 휴식 시간에 학생들의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대양누가병원에서 임상실습 중 휴식 시간에 학생들의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말라위의 의료, 교육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국제 간호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인근 병원과 연계해 실습수업도 마련했지만 문제는 자원이었다. 체온계, 혈압기, 청진기 등 의료 기구를 구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으니 말라위 최대 국립병원에서도 하루에 30~40명의 환자가 죽어갔다. 말라위는 1인당 국민소득이 37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다. 옥수수죽이 하루 끼니의 전부인 상황이라 학생들의 건강 상태도 나쁠 수밖에 없었다. “첫 실습수업 때 학생 2명이 쓰러졌어요. 영양 부족이었어요. 헤모글로빈 수치가 ‘7’도 안 되더군요. 한국 성인 평균 수치가 11~12 정도인데, 수치가 7이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거든요. 그때부터 매일 학생들에게 계란과 고구마 1개씩 먹였습니다.”

학생들의 시간 개념도 문제였다. 대부분 수업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등교했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달간 원인을 찾던 김 박사는 “학생들이 게으른 게 아니라 시계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다들 해의 방향을 보고 수업에 들어오다 보니 등교 시간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라위에 간 지 한 달 뒤 고신대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말라위 학생들 이야길 했더니 간호학과 학생들이 ‘돕고 싶다’며 그 자리에서 시계를 풀어서 주더군요. 다음 날엔 광주 기독대학 간호대 학생들이 시계 60개를 모아줬습니다. 말라위로 돌아가 교수, 학생들에게 시계를 나눠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5분 지각에 한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다’고요. 다음 날부터 그 누구도 지각하지 않았습니다. 느릿느릿 걷던 학생들이 이젠 뛰어다닙니다.”

지역사회 보건소에서 체중을 달고 있는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지역사회 보건소에서 체중을 달고 있는 모습. /대양누가간호대학 제공

대양누가간호대학에는 19명의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박사는 3년제로 설립됐던 간호대학을 4년 과정으로 바꾸고, 학생들이 부족 마을로 가서 환자를 돌보는 지역사회 교육과 조산 교육도 도입했다. 농사를 짓는 법과 적정 기술도 가르친다. 졸업 후 마을로 돌아간 학생들이 주민들의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건강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김 박사는 “현재 총 158개 마을 중에서 68곳의 보건소가 인력이 없어 텅 비어 있다”면서 “간호사가 된 학생들이 1차 의료 기관인 보건소부터 3차 기관인 대학병원까지 곳곳에 퍼져 나간다면 1, 2, 3차로 연결되는 의료 시스템이 확립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전했다. 이를 위해 김 박사는 전자책, 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공부하는 ‘E러닝’을 시도할 계획이다.

“말라위는 내륙 국가라 운송비가 비싸기 때문에 미국에서 24달러인 교과서가 여기선 50달러나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학생 8명이 교과서 1권을 돌려보고 있어요. 게다가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교과서 없이 공부해온 터라 책을 보는 데 익숙지 않더군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어요. 반면 노트북에 자료를 넣어 공부하게 하니 흡수가 훨씬 빠르더군요. 아쉽게도 지금은 한국의 한 독지가가 보내준 낡은 노트북을 두고, 학생들이 시간을 정해 돌아가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말라위는 전기가 자주 끊기기 때문에 데스크톱 컴퓨터는 금방 망가집니다. 학생들이 말라위의 훌륭한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건강이요? 걱정 마세요. 할 일이 많은 만큼 아플 겨를도 없을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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