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4일(금)

작년엔 대강당, 올해는 도서관… 고액기부자들이 말라위 명문사학 만들다

필란트로피 클럽이 만든 기적

건물 3동으로 문 연 학교
10년 만에 12동으로 확장

기부자들 꾸준한 후원에
유치원·초등학교 건립

말라위 릴롱궤의 '희망중고등학교'는 고액 후원자들의 꾸준한 지원으로 지역의 명문 사학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지난달 1일(현지 시각) 학교를 방문한 기아 대책 고액 후원자 모임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들의 모습. /기아대책
말라위 릴롱궤의 ‘희망중고등학교’는 고액 후원자들의 꾸준한 지원으로 지역의 명문 사학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지난달 1일(현지 시각) 학교를 방문한 기아 대책 고액 후원자 모임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들의 모습. /기아대책

말라위 수도 릴롱궤. 도심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비포장도로를 20분쯤 달려 24구역(Area 24)에 진입했다. 흙먼지 일으키며 도착한 곳에 커다란 흰 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외벽에 페인트로 쓰여 있는 ‘릴롱궤 희망학교’. 철문이 열리자 다른 세상이 나왔다.

학교 안은 깔끔하게 정돈된 길과 서구식 조경, 반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흙벽돌로 지은 집이 즐비한 담장 밖 풍경과 사뭇 달랐다. 말라위에서 보기 드문 잔디 운동장도 갖췄다. 릴롱궤 희망학교는 한 울타리 안에서 유치원부터 초등, 중고등학교까지 학제를 밟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이다. 교육의 질은 높지만 학비는 일반 사립학교의 절반 수준. 그렇다 보니 인근 10여 마을에서 학생들을 보내려고 줄을 선다. 개교 10년도 채 안 된 기간에 말라위의 명문 사학으로 거듭난 희망학교를 지난달 1일(현지 시각) 희망친구 기아대책 고액 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작년엔 대강당, 올해는 도서관… 고액기부자들이 말라위 명문사학 만들다

후원자들이 만든 명문 사학

시작은 단출했다. 10년 전인 2013년 당시 국제구호개발 NGO 기아대책은 기아자동차와 해외 사회공헌사업 ‘그린라이트프로젝트(GLP)’로 도심 외곽에 부지를 얻고 중고등학교(secondary school) 공사에 들어갔다. 이듬해 교실 1동, 행정실 1동, 화장실 1동이 완공되면서 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NGO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생기자 금방 소문이 났다. 교실은 좁은데 학생들이 몰렸다. 개교 첫해 40명 남짓 되던 학생은 3년 만에 500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정원 900명에 야간 학교 600명을 더해 총 1500명이 됐다.

학교를 키운 건 고액 후원자들이다. 기아대책의 고액 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들은 해마다 건물을 하나씩 짓기 시작했다. 현재 릴롱궤 희망중고등학교는 총 12동의 건물이 있다. 그중 절반을 김진만 후원자가 세웠다. 그는 2017년 교실 1동을 시작으로, 이듬해 대강당 김진만홀을 건립했다. 2019년에는 교실 3동을 추가로 지었고, 지난해에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특히 김진만홀은 우리나라의 수능 격인 말라위 대입시험 MSCE를 치르는 공식 장소로 쓰일 정도로 지역사회의 랜드마크가 됐다. 김진만씨는 “말라위에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온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매년 현장을 찾고 기부도 하고 있다”며 “젊은 후원자들도 많은데 환갑이 넘어 시작한 기부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보탬이 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사이 다른 후원자의 도움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생겼다. 조철휘 후원자는 말라위를 비롯해 전 세계 개도국에 유치원만 33채 지었다. 그는 필란트로피 클럽 발족 회원으로 10억원 이상 기부한 초고액 후원자 모임인 라운드테이블의 회원이기도 하다. 조철휘씨는 “30년 전부터 기부할 통장을 따로 만들어 두고 꾸준히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돈을 보내왔다”라며 “특히 학교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기 어렵고 여러 후원자의 마음을 모아 만드는 기적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2018년에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초등학교가 8개 교실로 문을 열었다. 이날 희망참빛초등학교 증축 기공식이 열렸다. 초등학교 입학 대기자가 늘면서 교실을 2동 추가로 짓기로 한 것이다. 이번 건축은 고액 후원자 8명이 교실 한 칸의 건축 비용을 모아 건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실 4개가 들어가는 건물 1동의 건축비는 약 5000만원이다. 지역 추장인 에반스 쿠잘라는 “초등학교 증축으로 더 많은 아이가 교육받게 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말라위 릴롱궤의 희망중고등학교 전경. /기아대책
말라위 릴롱궤의 희망중고등학교 전경. /기아대책

교육은 유일한 희망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2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말라위 인구는 2020만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인 500만명이 초등학생이지만 중등학생은 40만명 정도에 그친다. 중등학교 진학률이 10%를 밑도는 상황이다. 낮은 진학률의 원인은 값비싼 학비다. 말라위의 학제는 한국과 동일한 12년 학제지만 초등학교 8년, 중고등학교 4년 과정으로 구성된다. 1년은 3학기로 나누어지며 학비도 세 번에 나눠 낸다.

희망중고등학교의 한 학기 수업료는 6만5000콰차다. 일반 사립학교는 이보다 두 배 많은 14만콰차 수준이다. 인근의 네덜란드 NGO가 운영하는 학교도 10만콰차를 받는다. 현지에서 학교의 대소사를 맡고 있는 김성걸 선교사는 “몇 년 전만 해도 희망중고등학교 학비가 타학교에 비해 20~30% 낮은 수준이었는데 여러 학교에서 학비를 급격히 올리는 바람에 지금은 두 배까지 차이 나게 됐다”라며 “현지 월 최저임금이 5만콰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이 되는 금액이라 매해 저소득 가구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중고등학교는 연간 장학생 180명에게 수업료를 지원한다. 후원금으로 조성한 기금을 통해 장학생들은 거의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학교는 성적 우수자를 포함해 저소득 가정의 학생을 선발한다. 특히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의 학생을 집중적으로 발굴한다. 프로스퍼 사칼라(41) 희망참빛초등학교 교장은 “국가에서 치르는 초등 졸업 시험에서 전체 2위를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학비 부담으로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희망중고등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거나 다른 학교에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발탁돼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은 “후원자들의 선한 마음이 모여 마을 하나를 일으키고 지역 사회를 다시 뛰게 만든다”라며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의 리더를 키우는 일이 결국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자 교육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릴롱궤=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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