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본드에 중독돼 방황하던 아이들 이젠 무대 오르는 게 더 좋다네요”

음악으로 위기 청소년 보듬은 명성진 목사
위기 청소년 공동체 ‘세상을품은아이들’

6년 전, 부천 예수마을교회 명성진(44) 목사는 거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트럭 밑에서 두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차 떠나면 어떡할 거야?”, “죽을 거야?” 한 명을 설득해 교회로 데리고 왔다. 밥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갔다. “아버지세요? 오면 뭐해. 또 나갈 건데.” 체육 교사의 말에 명 목사는 화가 났고, 실망했다. “괜찮아. 너희 그릇이 특별해서 학교가 담질 못하는 거야.” 그렇게 진무(18·가명)는 예배당 한편에서 보금자리를 찾았다. “또 가출하더라도 잠은 여기서 자.” 위기 청소년 공동체인 ‘세상을품은아이들’의 시작이었다. “애들이 진무를 독립군이라고 불러요. 워낙 가출을 자주 해서 생긴 별명이에요. 진무 친구들이 줄줄이 들어왔습니다. 하도 지갑을 털어가서 장발장이란 별명을 가진 애도 오고…. 부천 지역의 잘나가는 ‘양아치’ 30여명이 다 모였습니다.” 처음엔 고민이었다. 지난 2005년, 명 목사가 만든 ‘세상을품은아이들’ 공동체는 위기 청소년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범생 청소년들이 대상이었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품은 미래 지도자들을 길러내겠다’는 생각에 몽골·캄보디아 등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진무를 비롯한 비행 청소년들이 한둘씩 공동체로 몰려들자 기존 청소년들의 발걸음은 뚝 끊겼다. 전혀 의도치 않은 변화였다.

지난해 2월, 부천 복사골아트홀에서 열린 '세상을품은아이들'의 엠지밴드 공연 모습과 명성진 목사(맨 왼쪽). /세상을품은아이들 제공
지난해 2월, 부천 복사골아트홀에서 열린 ‘세상을품은아이들’의 엠지밴드 공연 모습과 명성진 목사(맨 왼쪽). /세상을품은아이들 제공

밥 먹듯 가출 일삼고 본드 흡입하던 청소년들
명 목사가 음악 가르쳐주자 달라지기 시작해

2008년 가을부터 ‘세상을품은아이들’은 위기 청소년들의 보금자리로 완전히 전환됐다. 교회의 소예배실을 주거공간으로 개조했다. 처음엔 교인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10여명이 공부·음악·미술·스포츠 각 분야에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언행에 적응하지 못한 교사들도 점차 떠나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공동체를 들락날락했고, 가출과 폭행도 여전했다. “애들이 안 들어오면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요. 건물·공원 등 구석구석을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지요. 근데 보니깐 얘들 중 90% 이상이 본드를 흡입하더라고요. 본드를 흡입하면 뇌가 단세포적으로 변합니다. 사칙연산도 못 하고, 기억력도 떨어지죠. 아이큐(IQ)가 65까지 떨어진 애도 있어요. 중독되면 시각·언어·운동 장애가 옵니다. 일진짱이었던 한 녀석이 하루는 얼굴이 괴물처럼 부어있었어요.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자기 안에서 자기를 때리라고 했다’는 겁니다. 100대도 넘게 때렸대요. 정신분열 증세까지 일어난 거죠.”

명 목사는 심각하게 본드에 중독된 이들을 온종일 데리고 다녔다. 본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혹에 이기지 못한 이들은 결국 공동체를 떠났고 더 심각한 본드 중독에 빠져버렸다. 또다시 경찰서에 잡힌 애들을 찾으러 가는 것도 명 목사의 몫이었다. 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중독 치료와 관련된 서적·논문 등을 읽으며 연구하고, 상담 전문가를 만났다. 결론은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된다’는 것. 다른 것에 몰입되기 전에는 중독된 것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 목사는 “청년 시절 기타리스트로 밴드 활동을 하고, 공연 기획 관련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이 떠올랐다”며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던 와이프와 함께 예전 인맥을 동원해 수준 높은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엠지(MG·Miracle Generation)밴드를 결성해 음악으로 아이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본드신이라고 불리는 경민(18·가명)이가 있어요. 지금까지 흡입한 횟수만 해도 1000번이 넘을 걸요? 아버지가 얘가 집 밖에 못 나가도록 문에다 대못을 7~8개 정도 전동 드릴로 박고 나갈 정도였으니깐요. 근데 어느 날, 예배 시간에 음악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는 거죠. ‘넌 드럼이다. 그 리듬감 아무나 나오는 거 아니야’ 그랬죠. 경민이가 반응이 왔어요. 하루 9시간씩 드럼 연습을 하더라고요.”

2010년 12월, 한 교회의 성탄 콘서트에 초청받은 엠지밴드. 250명의 관객 앞에서 공식적인 첫 무대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1년에는 1388전화(헬프콜 청소년전화로, 청소년 유해 환경 신고, 정보 제공 등의 상담 서비스를 제공)를 통해 정신병원·경찰 및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어 지역기관과 연계도 가능해졌다. 엠지밴드의 이야기도 점차 알려지면서 청소년 축제, 지역 행사 등에도 초청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2월에는 부천의 복사골아트홀에서 ‘엠지밴드 리본(Reborn)’이라는 자체 공연을 열었다. 미상_사진_위기청소년_밴드_2013

“네 리듬감, 아무나 나오는 거 아니야” 칭찬하자
하루 9시간씩 연습하고 공연… 곳곳에서 초청도
노인 시설에 공연 봉사 하면서 자존감도 되찾아

“애들이 중독에서 빠져나오려면 ‘최고가 되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의상·메이크업·무대 모두 최상의 것으로 준비하기로 하고 제작비 총예산을 2000만원으로 잡았습니다. 지인, 교인들이 도우면서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모금에 성공했어요. 일개 청소년 밴드 공연에 사람들이 오겠나 싶었는데 무려 450명이 왔어요. 무대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이었고요. 공연이 끝나자 애들이 다 뒤집어졌어요. 첫 공연만 하더라도 ‘공연이 좋으냐, 본드가 좋으냐’ 물으면 ‘본드가 좋다’고 말하던 경민이가 드디어 이젠 ‘공연이 좋다’고 말을 했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명 목사가 그 순간을 회상하며 격양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세상을품은아이들’에서 운영하고 있는 밴드는 엠지밴드를 비롯해 모두 4개다. 명 목사는 “아이들이 무대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며 “스스로가 바이러스 같다며 세상에 들어가기를 꺼리던 이들이 노인 시설도 찾아가 봉사 활동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아이들이 또다시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을 건져내는 일을 하길 원한다”는 명 목사의 꿈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본드 중독 청소년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먼저, 중독이 되면 빠져나오기가 정말 힘들어요. 본드에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톨루엔이라는 성분이에요. 대표적인 본드인 오공본드는 헥산이라는 물질로 대체했는데, T업체·H업체 등 영세한 기업에서 나온 본드들은 수익률 때문에 톨루엔을 쓸 수밖에 없대요. 그렇다면 함량 자체를 10% 이하로 낮춰버리면 되거든요. 기술표준원에 기준을 바꿔달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소비자용으로는 0.1% 이하로 톨루엔 함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애들은 소비자용이 아니라 공업용을 사용합니다. 구매하기도 너무나 쉽고요. 유해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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