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제2의 인생설계, 한숨만? 우리는 이렇게 꽃피워요

베이비부머 세대 3인의 재능나눔 이야기
최영식씨_텃밭 가꾸며 지역 예술가와 소통
사회적 기업 회계업무 도와 “시니어 복합문화공간 운영 목표”
정은희씨_20년 간 주부에서 나눔의 리더로
취미로 시작한 퀼트에 봉사 접목 “작은 재능도 용기있는 나눔으로”
박항수씨_막연히 다짐했던 봉사와 나눔
NGO 활동하며 이제야 실현 “세상을 위한 인생 3막 즐거워”

“늘청씨 어디 가요?”

최영식(58)씨는 길에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늘청’으로 불린다. ‘늘 청춘’의 줄임말이다. 최씨의 활동무대는 문래동 대안예술공간 ‘솜씨’. 이곳에서 젊은 작가들과 어울려 차도 마시고, 책도 본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화요일에는 기타를 배우고, 수·목요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한다. 목공수업에서는 이미 중급반이다. 지난해 3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은퇴한 최씨는 “지금 배우는 것들을 토대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8일, ㈔한국자원봉사문화 '앙코르아카데미'에 참여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탄천살리기' 자원봉사활 동을 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제공
지난달 8일, ㈔한국자원봉사문화 ‘앙코르아카데미’에 참여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탄천살리기’ 자원봉사활 동을 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제공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는 현재 약 712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향후 3년 동안 퇴직할 50대 이상이 150만명으로 예상되면서 ‘은퇴 후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개최한 ‘베이비부머 자원봉사 콘퍼런스’에서 ‘나눔’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한 세 명의 베이비부머를 만났다.

최영식씨는 30년 동안 일한 은행을 은퇴한 후 지역문화살리기에 참여하고 있다.
최영식씨는 30년 동안 일한 은행을 은퇴한 후 지역문화살리기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텃밭 가꾸기에 인생을 투자한다, ‘최영식’씨

퇴직을 3개월쯤 남겨둘 무렵부터, 최영식씨는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희망제작소 행복설계아카데미’에서 해피시니어 교육을 받으면서, 인생 제2막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자신이 잘하는 일. 둘째, 재미를 느끼는 일. 마지막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

“문래동에서 20년 이상 살았는데, 동네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요. 주부들은 옆집 아줌마도 만나고, 애들도 키우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쌓지만, 남자는 보통 회사, 집이니깐요. 밖으로 나가려니 시간도 들고, 돈도 들고. 전 ‘동네에서 놀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부터 ‘마을’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최씨는 아파트 게시판 광고를 보고, 문래동 예술촌의 갤러리카페 ‘솜씨’에서 와인수업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가볼까’해서 찾아간 갤러리에서 문래동의 젊은 예술인들을 만났다. 한 작가가 최씨에게 ‘동네텃밭 가꾸기’에 참여할 것을 권했고, 이를 계기로 지역 예술가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라는 사회적기업이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예술활동을 해왔는데,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체계를 갖춰야 할 필요가 생겼지요. 구성원이 거의 다 예술인인지라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회계, 경영, 마케팅 등의 인력이 항상 부족했던 겁니다. 은행에서 30년 동안 쌓아온 저의 노하우로 재무회계를 돕고 있지요.”

그의 목표는 시니어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최씨는 “은퇴 전 삶이 먹고 살기 위한 인생이었다면, 지금은 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먼저 자신의 취미를 갖고 봉사하려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카메라에 관심이 있으면,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을 모아 카메라 교육을 할 수도 있고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NGO, 지역자원봉사센터, 복지관 등 전문기관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정은희씨는 취미로 배운 퀼트를 활용한 봉사로 자원봉사에 발을 디뎠다.
정은희씨는 취미로 배운 퀼트를 활용한 봉사로 자원봉사에 발을 디뎠다.

◇자원봉사 리더로 우뚝 선 인생 후반전, ‘정은희’씨

정은희(48)씨는 주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한 남자와 결혼해, 20여년을 줄곧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왔다. 취미로 퀼트를 배웠고,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며 퀼트 강사도 3년 정도 했다. 정씨는 “그저 취미활동으로만은 재미가 없었다”며 “봉사를 접목해 더 좋은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008년, 서초구자원봉사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이제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정씨는 3년 동안 청소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보낼 퀼트 학용품 주머니 4000여개를 만들었다.

현재 정씨는 (사)한국자원봉사문화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핸즈온(Hands On)’ 프로젝트 리더다. ‘핸즈온’ 프로젝트는 정기적인 봉사활동에 부담을 느끼거나 참여하기 힘든 분들을 대상으로 점심때나 휴일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봉사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리더는 프로그램 기획 및 준비, 현장 진행, 사후관리 등 봉사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지적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화나들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전, 서울대공원에 답사를 가서 산책 코스를 정합니다. 언제, 어디서 쉴 수 있고 화장실은 어느 곳을 이용할 수 있는지 등 세밀하게 살피는 거죠. 봉사 대상자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두는 것은 물론이고, 성격이나 선호도에 따라 짝꿍을 선정하는 것에도 신경을 쓴답니다.”

봉사활동 4년째, 정씨의 가족도 함께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편이 프로젝트 리더 5기 교육을 받았고, 20대인 아들은 봉사자가 갑자기 참여하지 못할 경우 대타 역할도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정씨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이들에게 봉사활동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나누는 삶을 살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저를 경험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이 고민이라고요? 아이들만 키우면서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김장을 잘 담그는 것도, 전을 잘 부치는 것도 충분히 재능이 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박항수씨는 기업CEO 의 경험을 가지고 ㈔ 한국자원봉사문화에 경영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박항수씨는 기업CEO 의 경험을 가지고 ㈔ 한국자원봉사문화에 경영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기업 CEO에서 NGO 이사로, ‘박항수’씨

“집사람이 저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래요(웃음).”

박항수(55)씨는 지난 5월, 20여년 동안 일궈온 사업을 정리했다. 그가 18세에 세운 인생 계획에 따라서다.

“저는 인생을 25년 단위로 4막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1막은 결혼 전 25년이겠지요. 시기마다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2막은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되 돈의 노예가 되지는 말자는 것이었고, 인생의 3막에서는 이 세상을 위해 살자고 다짐했죠.”

10여년 전, 박씨는 경희대에 NGO 대학원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박씨는 “2기로 입학해 5학기 동안 자원봉사학과 시민사회학을 공부했다”며 “NGO 현장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당시 국제구호개발, 인권단체 등 총 성격이 다른 7개 NGO에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8월부터 대학원에서 NGO 실습을 했던 (사)한국자원봉사문화에 상근이사로 출근하고 있다. 회계, 조직 관리 등 경영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박씨는 “매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다”며 “의미 있는 일에 시간과 재능을 쓸 수 있어 기쁘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 여러분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주요 인력이었습니다. 앞으로 시민사회를 이끌어갈 힘도 바로 장년 인력입니다. NGO가 무엇인지,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전문성이 있는지 공부해 보세요. 책을 읽고, 신문을 찾아보고, 좋은 선후배를 찾아 함께 배운다면 멋진 인생 후반전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최태욱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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