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장병들 음식 많이 남기죠? 저개발국 아이들 6초에 한 명씩 굶어 죽어”

군부대 세계시민교육 나선 황의돈 월드투게더 회장

질병·성 불평등 주제로 군부대서 세계시민교육
강연 듣고 난 간부들 앞다퉈 후원하겠다 나서

“우리 군인들은 특별히 단돈 만원에 모십니다!”

황의돈 월드투게더 회장이 익살스러운 말투로 정기후원을 독려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빈곤, 질병, 빈부격차, 성 불평등, 기후변화, 전쟁 등 무거운 주제의 강연 분위기가 일순간 누그러진다. 황 회장은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행복의 조건을 연구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나눔의 기쁨이 가장 크다고 나왔다”며 “어려운 사람을 직접 도와보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황의돈 회장은 “꿈꿔왔던 생활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의돈 회장은 “꿈꿔왔던 생활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전, 육군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하 제30사단)에서 열린 ‘세계화 시대의 대한민국 군(軍)’ 강연. 군부대를 대상으로 한 ‘세계시민교육’으로 80여명의 지휘관급 간부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황예은 대위(제30사단 정훈교육장교)는 “우리 부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명사를 초청해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 ‘필승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교육은 그 일환으로 열린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교육을 맡은 강사는 지난 2010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황의돈 월드투게더 회장이다. 35년 군생활을 마친 그는 올 3월 국제개발 NGO 회장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을 바꾼 건 지난 2004년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부대 초대사단장으로 파병된 경험이었다. 당시 ‘신화 같은 작전수행’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명망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명망뿐이 아니었다.

“쿠르드(Kurd)족 아이들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가난, 질병, 전쟁의 상처를 안고 마음이 피폐할 뿐 아니라 지뢰에 손발이 잘리고 태어날 때부터 암과 심장병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았죠. 귀국해서도 아이들 얼굴이 오래 잊히지 않았어요.”

황 회장이 월드투게더 회장직을 맡은 후부터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교육이다. 황 회장은 “미국은 초등학교에서도 세계시민교육을 하지만 우린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내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로 여겼다”고 한다. 지난 5월 ’13공수부대’를 시작으로 이날 제30사단까지 총 22차례 교육을 통해 사병과 간부를 포함, 5620명의 군 장병에게 나눔을 전파했다.

‘1달러 미만으로 생존하는 인구가 전 세계 12억명’, ‘화장실이 없는 사람이 11억명’, ‘에이즈 고아 1500만명’ 등 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춰낼 때마다, 객석에서는 무거운 탄식이 터져나온다. 이날 이뤄진 나눔교육 내내 황 회장은 군 간부들에게 ‘세계시민’을 강조했다. 황 회장은 “세계화 시대에 산다고 다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비로소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장병들 음식 많이 남기죠? 지금 저개발국의 어린이들은 6초에 한 명씩 굶어 죽고 있어요. 병사들에게 음식을 남기는 것이 간접적인 살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가르쳐줘야 합니다.”

강연을 마치자 간부들은 앞다투어 월드투게더 후원약정서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교육을 준비했던 황예은 대위는 “강연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진지하고, 열기가 높을 줄은 몰랐다”며 “다음 교육에도 나눔에 대한 내용을 준비할 필요를 느낀다”고 했다. 임천수 제30사단 정보통신대대장은 “개인적으로 군생활 후 남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교육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며 “군생활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도 큰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정신교육이나 병영체험 시간에 장병들에게 전파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준호 제30사단 소위(정훈교육장교)는 “오늘 들었던 말 중에 ‘교육이 자립을 만든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전역하면 초등학교 교사로 가게 되는데 오늘 강연이 앞으로 교육 인생에 큰 지침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유성식 제30사단장은 “현역으로 계실 때 우리 군과 후배들의 지표가 되어주셨던 분이 이제 국경을 넘어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니 큰 존경심이 든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우리 국군은 대한민국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조직”이라며 “지금까지 우리 군 정신교육의 방향이 민주시민의식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세계시민의식을 갖는 것으로 가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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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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