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손편지 3000만통, 보낸 아이도 받는 아이도 삶이 바뀌었다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희망편지쓰기대회 15주년

국내 초등생이 보낸 편지
개도국 아동에 희망 전해

세계시민교육 일환으로
2008년 부산지부서 시작
매년 200만명 참여

“저개발국 아이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한 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려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 처지에 공감했대요. 자기 아빠도 외국 나가서 돈 버는데, 그 아이 부모도 딴 나라로 일하러 간 상황이었거든요. 해외에 나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같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 친구 상황에 속이 상했다고 하더라고요. 편지 한 통 보내는 것으로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이만큼 좋은 교육이 있을까 싶어요. 편지를 받는 아이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편지를 쓰는 아이들에게는 ‘세계시민 의식’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어려운 개념을 심어줄 수 있어요.”

굿네이버스의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희망편지쓰기대회’에 매년 참여하는 신화영(60) 부산 강동초등학교장은 경쟁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희망편지쓰기대회는 초등학생들이 저개발국 빈곤 아동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편지에 적어 보내는 나눔인성교육 사업이다. 공교육이 NGO와 협업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금까지 전달한 편지는 2952만통이 넘는다. 굿네이버스는 매년 전 세계에 있는 해외사업국에서 도움이 필요한 해외 아동을 발굴·선정한다. 학생들은 사연이 담긴 영상을 가족과 함께 시청하고, 희망편지를 써 주인공인 해외 아동에게 보낸다. 선정 과정을 거친 수상작은 외교부·보건복지부 장관상 등을 받으며, 메타버스 전시관에 오른다.

2015년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인 잠비아 소년 루푸타가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찾아보고 있다. /굿네이버스
2015년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인 잠비아 소년 루푸타가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찾아보고 있다. /굿네이버스

공교육·NGO 협업으로 이룬 세계시민교육

시작은 2008년 부산에서 했다. 굿네이버스 부산 지부에서 부산지방우정청 후원으로 첫 대회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시민교육’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다. 1990년대에 ‘사랑의 굶기 운동’이나 ‘사랑의 동전 모으기’ 같은 이름으로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교육기관과 NGO가 협업한 활동 중심 교육 방식은 처음이었다. 부산에서 시작한 사업은 이듬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전국 대회가 열린 2009년에만 2037학교 학생 130만여명이 참여했다.

사업 확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각 지역 교육청을 방문해 담당자를 만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배광호 굿네이버스 사업운영본부장은 “세계시민교육을 담당하는 부서가 지역마다 달랐다”면서 “서울·경기는 민주시민교육과에서, 영남 지역은 다문화교육과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제각각이었고, 아예 담당자가 없는 곳에서는 교육 필요성부터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학교 수는 해마다 조금씩 늘었다. 사업 초기 2000곳에 머물던 참여 학교는 2012년 3000곳을 넘었고, 2014년 4000곳, 지난해에는 4905곳으로 늘었다. 누적 참여 학생 수를 살펴보면, 2012년 674만7070명에서 2014년 1134만9274명, 2018년 2061만2314명, 지난해에는 2952만7114명으로 연평균 200만명가량 참여하고 있다. 초등학생 수가 2009년 347만명에서 2022년 266만명으로 약 81만명 줄어든 걸 감안하면 실제 참여율은 매년 높아지는 셈이다.

굿네이버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편지쓰기대회와 별도로 세계시민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강사 양성 과정을 개설하고, 교사용 교육 자료도 제작해 전국 초등학교에 뿌렸다.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을 정부 주도로 펼친다. 다만 국내에서는 이처럼 비영리단체 중심의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민간 교육기관이나 여러 NGO에서도 다양한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배광호 본부장은 “관련 프로그램이 여럿 생기고 있지만 아이들이 세계시민교육을 받을 기회가 여전히 적다고 생각한다”며 “한 사업을 오래 지속하면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로 전보다 효과적으로 교육할 방법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곤부터 기후 위기까지… 부모도 함께 배운다

올해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지원 아동은 탄자니아 슐리마을에 사는 유니스(7)다. 슐리마을은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 중 하나다. 한때 꽃과 나무가 가득했던 이 마을에 지난 몇 년 사이 가뭄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1년에 비가 오는 날이 사흘도 되지 않는다. 우물도 이미 말라 물을 얻으려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마을의 주 수입원인 꿀의 연간 수확량도 2020년 40㎏에서 지난해 6㎏으로 줄었다.

굿네이버스는 매년 빈곤, 아동 노동, 기후 위기 등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키워드를 정해 지원 아동을 선정한다. 올해 키워드는 ‘기후 위기’다. 차혜진 굿네이버스 캠페인사업부장은 “아동 노동 논란이나 글로벌 빈곤 등 그해에 주목받은 사안을 키워드로 선정하면 해외 사업장에서 관련된 지원 대상 마을과 아동을 발굴한다”며 “올해는 세계적 담론으로 떠오른 기후 위기로 피해를 본 저개발 국가 아동의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유니스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지난 2018년 서울 충무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0회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발대식. 2022년 희망편지쓰기대회 지원 아동인 라멕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한 한 어린이가 방글라데시 지원 아동 미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굿네이버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지난 2018년 서울 충무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0회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발대식. 2022년 희망편지쓰기대회 지원 아동인 라멕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한 한 어린이가 방글라데시 지원 아동 미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다. 굿네이버스가 지난 2021년 발표한 ‘희망편지쓰기대회 효과성 연구’에 따르면, 사업 참여 초등학생 515명 중 ‘생각과 태도에 변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 응답한 비율은 74.2%(382명)나 됐다. 또 ‘지구촌 문제를 더 알게 됐다’는 문항에 긍정 응답한 비율은 85.8%(442명)였고, ‘대회 참여 후 다른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에 긍정 응답 비율은 64.4%(331명)로 나타났다.

학창 시절 세계시민교육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부모 세대의 반응도 좋다. 굿네이버스 교육전문위원인 신화영 교장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영상을 보면서 편지를 쓰는 활동은 부모도 세계시민교육을 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단순히 기부 활동으로만 인식하던 부모 세대가 아이와 함께 저개발국의 인권 문제 등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속 아날로그가 살아남는 법

굿네이버스는 아날로그의 상징인 편지 쓰기대회에 디지털 콘텐츠를 접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를 잡으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지원 아동이 사는 마을 상황을 구현하고, 지원 상황도 확인할 수 있게 ‘메타버스 전시관’을 열었다.

올해는 아이들이 세계시민교육의 가치를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증강 현실(AR) 콘텐츠도 도입했다. 굿네이버스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와그작’을 통해 편지에 삽입된 QR 코드를 인식시키면, 지원 대상 아동 캐릭터가 등장해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세계시민교육 영상 시청, 퀴즈 게임 등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다.

지원 아동을 위한 모금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전 모금을 위해 제공하던 저금통과 봉투가 사라지고, 대신 문자와 전화로 정기 후원할 수 있도록 바꿨다. 후원을 희망하는 아이들은 매달 일정액을 해외 아동을 위해 기부할 수 있다. 배광호 본부장은 “전국 4000여 학교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참한 덕분에 15년이나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아이들이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편지 쓰기와 더불어 증강 현실, 메타버스 등 디지털 콘텐츠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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